당신을 사랑해서 나 역시 친절했다
김시헌 신작 시.
당신을 사랑해서 나 역시 친절했다.
나에게 멀기만 했던 길도
당신의 손을 잡으면 모자란 길이 되었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날들 속에서도
당신의 냄새를 맡으면 깊은 꿈을 꾸었고
무릎 위 같은 자리, 같은 모양의 흉터는
전생에 우리가 하나였다가
둘로 나뉘어 환생한 증거라고
당신이 말해준 것에 나는 행복했다.
나는 바다를 좋아하고
당신은 산을 좋아해서
한 번은 바다로 한 번은 산으로 나들이를 갔다가
나중에는 바다가 보이는 산에서 데이트를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당신이 좋아하고
당신이 좋아하던 것들을 내가 좋아하게 되는 것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헤어졌다.
한 번도 싸우지도 않았고
사랑이 식은 것도 아니었지만
사랑은 그것만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함께 약속했던 많은 시간들은 오지 않았지만
한 번도 우리가 생각해 본 적 없는 시간은
이미 우리를 싣고 떠나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헤어지며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서로의 방법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우리는 헤어졌지만
헤어진 후에도 즐거웠던 기억만을 떠올리며
나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당신은 항상 친절했고 내가 물으면
내가 좋아서 더 친절해진다고 말해주었다.
당신이 나에게 준 친절에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