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절 수술과 전환장애와 건강염려증

질병에 대한 고찰

by Yuie Coree

한 달 반쯤 전부터인가, 오른쪽 고관절에 담이 생겼다. 짚이는 이유라고는 한동안 태블릿을 정면에 두고 데스크톱 모니터를 오른쪽에 둔 탓에 상체를 비틀거나 무게중심이 쏠려서 해당 부위에 압박이 가해지는 자세를 유지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부담이 누적됐을 거라는 것이다. 왼쪽과 차별하냐고, 오른쪽 고관절이 '불공평한 삶에 염증을 느낀다'며 화를 내는 건가.


당신은 당신의 세포들에게 비밀이 없다. 그들은 당신에 대해 당신보다도 훨씬 많이 안다. 각 세포들은 저마다 완전한 유전 암호, 즉 당신 몸의 취급 설명서를 구비하고 있어서 자신의 역할뿐만 아니라 당신 몸속의 다른 모든 역할에 대해서도 꿰고 있다.

You have no secrets from your cells. They know far more about you than you do. Each one carries a copy of the complete genetic code−the instruction manual for your body−so it knows not only how to do its job but every other job in the body.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p.371**

물건을 사면 사용 설명서를 안 읽고 제멋대로 쓰다가 망가뜨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세포님들은 안 그러겠죠...ㅎㄷㄷ



내 몸의 세포들과 기관들은 분명 나보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어디까지가 건강을 위한 것인지, 어디서부터 무리인 건지. 그들의 고차원적 언어를 감히 내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에, 그들은 알기 쉽게 '통증'이라는 신호로 내게 전해준다. 과연 내가 그들의 주인일까. 내 몸을 이루는 원소들은 저마다 머무를 만큼 머무르고 나면 미련 없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 태초부터 이 몸에 이르기 전까지 누구와 어디를 거쳐서 와 주었을까. 어쩌면 내 영혼 또한 그럴지도. 내가 선택해서 세상의 규칙 속에 놓인 것이 아니듯, 원소들 또한 자신들이 정하지 않았을 어떤 원칙에 따라 대물림하며 지어 놓았을 육신, 그 몸에 내 영혼이 마찬가지로 어떤 질서에 의해 전용으로 세 들어 살게 된 건 아닐까.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임대료가 될 것이다. 내 행위가 값질수록 나는 비싼 집에 사는 것이겠지. 물론 그 행위의 가치라는 건 단순히 내가 가시적으로 혹은 세상의 가치관으로 얼마를 벌고 쓰는가 하는 식의 피상적 차원에서 매겨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똥이 약으로 쓰일 수도 있고 금덩어리가 흉기로 변할 수도 있는 거니까. 내가 내는 임대료가 얼마인지 혹은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인지, 나도 궁금하다. 온 우주 속에서 나 외의 것들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산다면 나도 하나의 세포가 되는 걸까, 그냥 기생충으로 끝나고 말까. 유익한 미생물 정도는 될 수 있을까.


뒤늦게 모니터도 정면에 다시 두었지만 여전히 스트레칭을 하면 전처럼 안 되고 뻐근하게 아프다. 고관절에 안 좋다는 3종 세트-의자 위 양반 다리, 다리 꼬기, 한쪽 발목을 반대쪽 무릎 위에 올리거나 아래에 깔고 앉기-를 수시로 하면서 저질 시력도 가세하여 허리는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니 자꾸만 책상 앞에 앉는 자세부터가 글러먹게 된다는 핑계도 곁들여보지만, 결론은 운동부족과 노화의 콤보 효과인지도. 청소도 수리도 꾸미기도 게을리하는 주제에 새집으로 이사 가면 쾌적하겠지, 같은 생각이나 하면서. 한심하여라.







그런데 이 무슨 타이밍인지. 고모가 약 한 달 전 고관절 골절로 수술을 받았다.


고모는 기저질환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도 십여 년 전 뇌수술 이후 혈전방지제를 복용 중이라 출혈 시 피가 잘 멎지 않으니 바로 수술을 받을 수는 없었다. 해당 약을 끊고 누운 채로 며칠 기다려야 했고, 수술 직후 간호간병통합병실로 옮기기 전까지는 24시간 간병도 필요했다. 그 며칠의 절반 이상을 간병한 나는 거의 좀비가 됐었다.


우리 집 사람들은 대체로 웬만큼 아픈 정도로는 징징거리는 일이 없는 편이다 보니, 일가 내에서 고모는 옛날부터 챔피언급 엄살로 유명하다. 넘어진 뒤로 계속 아프다며 편히 앉지도 눕지도 못하고 끙끙대며 우는 모양이 심상찮아서 구급차를 불러야겠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만 해도, 심한 담에 걸렸거나 아주 심해 봐야 금이 갔을 가능성 정도만 생각했다. 고모는 생애를 통틀어 식탐이 골고루 출중했고 적당히 유연하고 활동적인 편이며 요령과 힘 조절이 부족해 물건을 잘 부수는 탓인지, 그의 뼈도 튼튼할 거라는 편견이 있었던 걸까. 바닥에 넘어지는 장면을 본인 외에 본 사람이 없어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는지도. 새벽에 실려간 탓에 담당의를 아직 정하지 못하고 응급처치만 하고 기다리던 중, 응급실 간호사가 예상외로 '반쯤 부러진 것 같은데요'라고 했을 때도 놀랐지만- 후일 집도의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입이 떡 벌어졌다. 엑스레이상으로는 골절이 확연하게 보이지 않아서 그나마 덜 심한 거려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골다공증이 심해서, 똑 부러진 대퇴부 경골이 구멍 숭숭한 비구 쪽으로 처박힌 상태였던 것이다. 겹쳐진 골절 단면이 그제서야 뚜렷이 보였다. 아는 만큼만 보인다더니. 불행 중 다행인지, 그나마 뚝 떨어지지 않고 박힌 덕에 통증이 덜했을 수도 있다고. 골절된 부분끼리 마찰이 생기니 외려 더 아팠을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게다가 고관절 골절은 자연 회복이 어려워서 현재 기술로는 이런 경우엔 인공관절 치환술 외에 답이 없다고 한다.


...


나라면 아마 꽤 오랜 기간 변기에 앉거나 목욕을 할 때마다 절로 인생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예상대로, 고모는 이번 병원에서도 금세 의료진과 주변 분들에게 엄살꾼으로 분류된 듯하다.


본인은 억울하겠지.


그래도 오래전 어느 의사분께는 전환장애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 r/o 표시가 붙었었는지도 모르겠는데, 진단명을 보자마자 바로 납득했기 때문에 확진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r/o은 rule out의 약어로, 가진단/추정진단/잠정 진단, 즉 진단 가능성이 고려되지만 아직 확정하기는 어려울 때 진단명 앞에 붙는 표시다.


전환장애conversion disorder는 쉽게 말하자면 정신적 스트레스가 기질적 원인은 확인되지 않음에도 신체적 증상으로 전환되는 병이다. 언뜻 보면 엄살이나 꾀병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당사자는 실제로 고통을 느낀다.


그런 고모가 실로 큰 병치레 또한 선두주자로 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좀 운명의 장난 같기도 하다. 매일 한 주먹씩 어쩔 수 없이 먹는 약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그래도 그 약들 덕에 보다 편안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으니 고맙기도 하다. 어쩌면 엄살이라기보다는 통증에 대한 민감도가 남다른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나는 어릴 땐 웬만큼 다친 걸로는 치료도 않고 걱정도 안 했는데, 근년 들어서 공황 증상과 건강염려증 증상이 역치 미만으로 이따금 나오는 듯하다. 치과 신경치료 정도로도 잔뜩 긴장해서는 '무사히 살아나가게 해주소서...'라고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어처구니가 없어지는가 하면, <닥터 하우스>에서 대사에 병명이 언급될 때마다 툭하면 '혹시 나 저거 아닌가. ...휙 죽으면 어쩌지? 방이 너무 개판이라 이대로 죽기 민망하잖아.'하고 곰곰이 추리를 하면서 설렁설렁 청소를 하기 일쑤다. 그도 그럴 것이, 원인 불명의 자가면역계 질환에 수시로 다른 증상들이 가볍게라도 동반되다 보면 이 병이나 저 병이나 어느 정도 증상이 겹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급기야 보아가 무혈성골괴사증 진단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면서조차 '설마 내 고관절도...?' 하는 생각이 스친다.

자가면역계 피부염이 생긴 후로, 동네 의원부터 대학병원까지 지금껏 찾았던 어느 의사에게서도 속 시원한 원인 규명이나 해결책을 살 수 없었다. 심지어 견해는 조금씩 다른데, 그래봤자 처방은 하나같이 만능 해결사 스테로이드제고, 스테로이드는 이제 싫다고 하면 일시적 효과만 보이기는 마찬가지인 대체제 정도를 처방받을 뿐이라, 병원 가는 것도 포기한 지 오래다. (무혈성 골괴사증의 원인 중 하나가 스테로이드제의 남용이라는 정보에도 뜨끔.) 하우스한테 진료받고 싶다. 이 답답함을 말끔히 해결해 준다면 그 특유의 독설쯤이야 받아줄 수 있는데...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서 병원비가 병보다 무섭겠다.



무지는 양날검 같다. 어릴 땐 스스로 '무식이 용감!'이라며,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니 그저 뭐든 부딪혀보고 판단하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세상은커녕 삶에 대해서조차 모르는 게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다른 결과를 낳는지도 모른다. 부딪혀 본 사람이 꼭 더 잘 알게 되는 것도 아닌 데다가 오히려 편협한 경험이라는 우물 속에 빠질 위험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도 있겠다.


아, 등잔 밑이 어둡다고, 내 세포들이야말로 답을 알고 있으려나.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BgxW16t3e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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