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가장 먼저는? 그 이유는?

Q12. 난이도 극하

by Yuie Coree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이 제일이라"는 말은 사도 바울이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13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으뜸은 ○○입니다.

1 Corinthians 13:13
Trust, hope, and love last forever—but the greatest of these is ○○○○.


하지만 넌센스 힌트는 예수의 말씀에서 떠오르네요.


마태복음 19: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Matthew 19:30
But many of the first shall be last, and the last first.


실은, 저는 본고를 쓰기 전까지 바울을 싫어했습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조용히 있으며 오직 복종하라는 망언을 해서요. 그럴 거면 그냥 교회에 안 가면 되지 웃기시네. 당시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그런 함부로 일반화시킨-예수도 언급한 적이 없는- 말을 권위에 버무려 남용하다니. 돌들이 대신 예배를 드리며 외치겠지. "고매한 척해봤자 가식 덩어리 꼰대구만?" 차라리 따로 베스트셀러를 내서 그 인세로 복지에나 쓰지, 성경에 그의 서신을 잔뜩 무임승차시킨 게 대체 누구냐며 속으로 투덜대기도 했죠. 그래서 이번 퀴즈의 아이디어가 임했나 봅니다. 관련 자료를 뒤지다가, 그의 말 중 앞뒤가 안 맞는 생뚱맞은 부분들은 필사 과정에서 멋대로 덧붙여졌다는 공신력 있는 정보를 찾았거든요. 그렇다면 바울만 괜한 누명(?)을 써서 억울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몰랐던 약 20년쯤 전, 한 친구가 저에게 "너 바울 같아"라고 했을 때 제 표정은 아마 딱 이랬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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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라고 물었더니- 이유인즉슨, 다른 게 아니고, 원래 바울은 크리스천을 마구 박해한 인물이었는데 어느 날 예수를 영접하고는 갑자기 뙇 크리스천이 됐기 때문이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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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 박해씩이나 했다고...



그러고 보니 무교 시절엔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몇 번 다녀온 후, 술 한 방울 마시지 않고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런 말들을 늘어놨었습니다.


"기독교인 중에는 좋은 사람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은 것 같아. 높은 자일수록 낮은 자가 되어 섬기라더니만, 겉으로는 다 같은 척 형제님, 자매님, 하면서도 계급을 나누어서 우열을 가려 행세하고 싶어 하고, 본인도 못 알아듣고 아무한테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이상한 소리만 뇌까리는 방언을 맹인이 맹인을 끌고 가듯 목청껏 피로披露하는 사람은 피로疲労하고, 사랑의 종교니까 피 끓는 독신篤信独身자들 연애하러 오는 건 자연스럽다 쳐도, 사업 홍보 때문에 오는 외식外飾外食자도 많고(라이온스 클럽도 봉사는 명분이고 장사가 목적인 사람이 은근히 많은 것처럼), 가족은 제대로 돌보지 않고 진짜 소외된 사람들에겐 관심도 없으면서 예배랑 전도에만 열심이면 천국행인 줄 아는 경이로운 사람들까지. 그러면서 비신도들을 마치 계몽해야 할 존재인 것처럼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면 불쾌한데 우스워. 십중팔구는 아직 자기도 구원을 못 받은 것 같은 사람들이 더 그러거든. 물론 안 그런 신자들은 논외지.
옛날엔 더했잖아.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면서, 십자군들은 뭐 적들을 사랑해서 200년 넘게 전쟁질을 했나? 아니, 백 보 양보해서 유대교나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등이랑 싸우는 건 그렇다 쳐. 가톨릭이랑 개신교는 둘 다 예수를 인정하면서 왜 그런대? 같은 기독교면서 조폭처럼 무슨 파 무슨 파 나뉘어선 답도 없는 문제들로 심심하면 배틀이고. 이론이나 방식이 서로 다르다 해서 예수의 어록에 대한 가치가 달라져? 예수를 믿는다기보다는 교회든 성당이든 신을 들먹이면서 정작 '사람'들의 집단에 소속되어 인정받고 자기 자리를 챙기고 싶은 쪽 아니야? 뭣이 중헌디...예수라면 당장 눈앞에 있는 사람이 바리새인 기준으로 손 모양 좀 틀렸다고 성체성사 못하게 하겠어? 그라면 과연 손 모양을 정하기나 했을까? 민망함의 극치 프랑스 종교전쟁만 봐도- 초엘리트만 모아놨을 왕가나 귀족이며 교황까지- 시민들이 싸우면 말려도 모자랄 판에- 36년 동안 단체로 정신이 외출했대? 성경책을- 아니, 예수의 말을 그냥 무시하고 화장실 휴지보다 무의미하게 만든 거 아닌가? (적어도 화장실 휴지는 똥을 닦아서 살신성인으로 사람 몸을 깨끗하게 해주는 엄청난 일을 하잖애. 휴지에게도 신앙이 있다면 그거야말로 순교 아닐까-) ...옛날 일이라고? 흠. 원주민 대학살 시대부터 전쟁을 일으키거나 21세기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대 미국 대통령이랑 푸틴도 일단은 크리스천이라는디?"


(물론 이렇게 속사포랩을 한 건 아니고 그때 그때 한두 마디만 던졌던 걸로 기억합니다. 자기 교회에 같이 가자는 말이 안 나올 때까지요. 크리스천이 있으면 그냥 거기가 교회고 저마다 가치를 두는 보물이 있는 곳에 자연히 마음이 따라가는 거지 뭘 자꾸 얽매여서 매주 매번 특정 교회를 강박적으로 가야 하는 것처럼 그러는지...)


... 그랬던(팩폭으로 박해했던?-_-?) 제가, 불신지옥만을 외치며 비신도들을 자꾸 설교지옥으로 못 떨어뜨려 안달인 듯한 끈질긴 교회인들의 황당한 논리전개에 질려서 오류들을 정면으로 다 논박해 주겠다고 비기독교인 교수님들이 강의하는 기독교개론을 비롯한 관련 수업들과 함께 성경책을 창세기부터 차례로 읽기 시작한 지 2년쯤 뒤(논리적 오류와 맹점을 쓸어 담아 두며 이제 누구든 걸리기만 하라고 자신했는데...), 그만 예수에게 반해서(형님으로 모시고 싶어서-_-;;) 크리스천이 되어봐야겠다고 결심해버렸지 않겠습니까. 그 친구가 보기엔 신랄하던 제가 어느 날 갑자기 신앙을 고백하니 바울이 떠올랐던 모양입니다.



다만 저 팩폭들은 지금 생각해도 유효합니다(저것도 현 관점에 맞춰서 다듬은 거고요). 있는 그대로를 말한 거니까요. 제가 무조건 따르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분이나 선뜻 값없이 큰 도움을 주신 분들 중에도 크리스천은 많았고, 그분들의 선함이나 훌륭함 역시 있는 그대로 인정하듯이요(그분들께 입은 은혜가 없었다면 오늘의 저는 구성성분이 아마 지금보다 좀 많이 구렸을 겁니다). 사실 제가 진정 종교라는 것을 갖고 있는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고,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크리스천과 같은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쉬운 예로,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호모포비아 크리스천은 그 자체로 모순인 것 같은데, 그분들로서는 호모섹슈얼을 혐오하는 일이 크리스천으로서 당연한=예수를 따르는 길이라고 믿는 것 같거든요. 유대교나 무슬림이 그러면 납득이라도 하겠는데...


글쎄요. 다만 저로서는 바로 다음의 단순 명료한 말씀이 크리스천이 될 가능성을 인정한 시작점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3:34-35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John 13:34-35
34 A new command I give you: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
35 By this everyone will know that you are my disciples, if you love one another.


이 말씀은 곧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비유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포도주는 묵은 게 비싸다지만, 저는 새 부대니까 제 안에는 새 포도주=새 계명만을 담아서 묵히기로 한 거죠. 어쩌면 바리새인들은 싫든 좋든 터지는 게 두려워서 묵은 계명을 계속 마실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새 부대로 바꿀 수 있음을 알더라도 어쨌든 세상에서는 묵은 포도주를 값비싸게 쳐주니까 굳이 바꾸지 않는지도 모르고요.


그리고 이후, 모든 선택의 기로와 굳게 잠긴 문 앞에서 고민될 때는 바울의 다음 말이 열쇠가 되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이번 꼭지를 쓰기 전까지 언제부턴가 이것도 예수가 한 말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어요. '자기 자신과 같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사람이 한편으로 차별적인 망언을 했다면 위선이고 모순이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요.

갈라디아서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너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Galatians 5:14
For the entire law is fulfilled in keeping this one command: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다른 모든 구구절절한 인간의 법칙이나 규율이 분해되고 재구성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무엇이 사랑인가. 내가 하려는 행위는 사랑인가, 만용인가, 오만한 judging인가, 교만한 간섭인가. 상대를 사랑한다기보다는 나와 같은 사고방식을 갖도록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상대만을 위함도 나만을 위함도 아닌 서로에게 최선인가. 상대가 사랑인 줄 몰라도 유효한가. 한 손의 일을 다른 손이 모르는 게 나은 경우인가. 간과하거나 오해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남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도 사랑하고 있는가'와 같은 고찰이 끝없이 이어질 뿐.





흠...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오늘 퀴즈의 답은 이미 다들 아실 테지요.




답: 사랑. (사랑이 셋 중에 제일 마지막에 열거됐으니까. 사랑은 올인원인 고로 일석삼조니까...)








참고로 제 개인적 느낌으로는 이런 소리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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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가게에) 도우랑 치즈랑 피자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으뜸은 피자입니다.






BGM:

https://www.youtube.com/watch?v=Anq8usJgKc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