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서 바람피는 사람의 태도

내가 겪은 우울증의 5단계 증상과 특징

by 사라

<새해부터 금요일 연재 약속을 지키지 못해 기다려주신 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씀 먼저 전합니다. 2026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전남편은 나에게 무수히 많은 상처를 준 사람이지만 나는 그의 행동을 내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일이 힘들어서 그랬을꺼야, 술을 많이 마셔서 그래, 누구 때문에 힘들었나보다, 처음부터 이런 사람은 아니었어, 싸워봤자 어차피 함께하는 시간만 줄어들잖아, 참는게 최선이야,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등 내 자신을 설득해갔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에게 대화를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돌아온 건 모순 가득한 답변과 어느새 대화 흐름은 주제에 벗어나있기 일수였다. 그래서 결혼 4년차부터 그와의 다툼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외박을 해도, 늦는다는 연락이 없어도, 수없이 말해도 어차피 도돌이표였으니까 내 스스로에게도 그의 외박은 그저 지인이 많아서 술 마시는걸 좋아해서라며 합리화 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나는 어느순간 그를 의심했었던 사실마저 잊고 살았었다. 과거와 직면하고 나서야 이 사실을 인지했으니 말이다. 아마도 그랬으니 그를 사랑한다고 믿으며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나는 무수히 많은 노력을 해봤다고 생각했고 달라지는건 없었기에 그에게 기대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겪었다.


나를 위 아래로 내려보며 경멸스럽게 쳐다보는 눈빛. 싸우면서 날 밀치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그가 원하는 비싼 제품을 선물로 사주지 않는다며 침묵으로 피말렀던 시간들, 갑자기 운동을 한다며 늦는다고 하고, 못보던 옷과 속옷이 보이기도 했었다. 그 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뒤늦게 알게된 사랑한다면서 바람피는 그의 태도의 진실이 그저 단순히 궁금할 뿐이다. 무조건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 했던 그 때문에 얻은 후유증이랄까.


판도라상자를 열고 난 이후 알게된 사실로 인해 그에게 그때쯤 상간년도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정 여자에게 받은 선물내역, 그 여자의 이름은 그가 가끔씩 말했던 여사친의 이름이었다. 이혼하기 직전에도 그는 그 여자와 통화를 했다. 과연 그녀는 그와 어떤 관계였을까?아직까지도 의문이다.


이쯤 나는 그를 나르시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먼저 나에게 나르시스트가 뭔지 아는지, 가스라이팅이 무엇인지 알려준 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처음들었던 말이어서 찾아보다가 아무래도 그가 내현적 나르시스트인 것 같아 오열하듯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나르시스트에게 바람은 필수적인 사항인데 아쉽게도 이 사실을 몰랐고, 그 땐 그가 날 사랑한다면 그가 나르시스트여도 상관없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다. 우습게도 그는 나만 사랑한다고 항상 말했었기 때문에 그의 사랑을 의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때의 나는 어린 두 아이들을 데리고 이혼할 결심하기에 단단하지 못했고 그를 절절히 사랑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가 나르시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이혼을 결심하기에 나에게 그와 아이들은 내 인생의 전부였다.


그렇게 내게 삶의 열정이 거의 사라지고 있던 어느 날, 돈만 많이 벌 수 있다면 그와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이 들었다. 그 때의 불행은 전부 부족한 돈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내가 돈을 많이 벌기만 하면 연애하던 시절처럼 웃을 수 있고 우리는 다시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돈을 벌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찾아 헤매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현실을 마주하기보다는 바쁘게 움직이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나는 현실을 외면한 채 남아있던 열정을 불태우며 우울증에 벗어난 삶을 잠시나마 살 수 있었다.


그 시간들 동안 전남편이 일에 취해, 돈맛에 취해 일탈 최고의 순간들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채..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었지만 각자의 가치관에 맞는 삶을 살아가며 서로 전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그랬기에 만약 그의 바람이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면, 나는 전남편을 좀 더 단속하지 못한자신을 원망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바람에 대한 증거들이 아무리 눈앞에 있어도 그때의 나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이미 오래전 그의 바람은 시작되었기에 날 자책하진 않기로 했다.


슬프게 어리석었던 나의 무지의 시간은 나를 무너뜨리기보다, 오히려 조금씩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지금은 능력이 출중하지는 않지만, 이혼을 했어도 내 아픔을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전가시키지 않고 두 아이를 책임지고 있는, 조금이나마 기댈 수 있는 엄마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 세월을 원망하기보다 서로 원하는 삶의 방향성이 달랐을 뿐이라며 조용히 나를 다독여본다.



만성 우울증 상태에서 남은 열정을 쏟아붓는 행동은 우울증의 ‘반대’가 아니라, 우울증이 오래 지속될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방어 반응일 수 있다.


우울증의 단계를 교과서식이 아니라, 실제 내가 겪었던 흐름을 기준으로 정리해보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의 나는 3단계인 만성·고기능 우울 단계 초기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전문의가 아닌 개인적 정리이며, 의학적 진단 기준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1단계. 초기 우울 단계 (경고 신호 단계)

[심리 증상]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음

예민해짐, 짜증 증가

사소한 일에 쉽게 상처받음

‘좀 지친 것 같다’는 느낌


[신체 증상]

잠이 늘거나 줄어듦

소화 불량, 잦은 체기

만성 피로


[이 단계의 특징]

본인은 ‘우울증’이라고 생각하지 않음

환경 탓, 성격 탓으로 넘김

주변에서 먼저 눈치채는 경우가 많음


2단계. 중기 우울 단계 (기능 저하 시작)

[심리 증상]

흥미·즐거움 감소(무쾌감)

의욕 저하

자기비난 증가

미래에 대한 비관적 사고


[신체 증상]

아침에 특히 힘듦

몸이 무겁고 늘 피곤함

두통, 근육통

성욕 감소


[이 단계의 특징]

‘내가 예전 같지 않다’는 자각

하지만 참아보려는 시도가 강함

이 시기에 치료하면 회복이 비교적 빠름


3단계. 만성·고기능 우울 단계

[심리 증상]

감정이 무뎌짐 (슬픔도 기쁨도 옅어짐)

공허함

감정보다 책임감으로 삶을 유지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압박


[신체 증상]

자율신경 증상 시작

(심계항진, 어지럼, 위장장애)

수면의 질 저하

만성 긴장


[행동 패턴]

오히려 과하게 바빠짐

일·돈·성과에 집착

쉬면 불안해짐


[이 단계의 특징]

겉으로는 잘 버티는 사람처럼 보임

주변에서는 '괜찮아 보인다'고 말함

실제로는 신경계가 가장 위험한 상태


4단계. 붕괴 단계 (번아웃 + 신체화)

[심리 증상]

아무것도 하기 싫음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짐

감정 폭발 또는 완전 차단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생각 반복


[신체 증상]

자율신경실조증 본격화

공황 증상

만성 통증

이유 없는 호흡 곤란


[이 단계의 특징]

더 이상 의지로 버틸 수 없음

몸이 강제로 멈추게 함

이때 병원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음


5단계. 회복 초입 단계

[심리 증상]

오히려 무기력 증가

아무것도 하기 싫음

감정 기복 심함


[이 단계의 특징]

우울증 치료 이후 나타나는 이 상태는 악화 신호가 아니라, 신경계가 처음으로 쉬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이 시기의 무기력은 회복의 시작일 가능성이 높다.



이때의 나는 3단계 상태로 회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태우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비로소 5단계의 문턱에 들어선 것 같다.


우울증은 게으름이나 나약함,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계와 감정 조절 시스템이 소진되어 가는 과정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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