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우울증 발생 원인 및 발생 조건
첫아이를 임신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마음의 상처를 안은 채 결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제야 그의 행동들이 어딘가 의심스러웠다는 것도 알 것 같았지만, 그는 언제나 끝까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믿어야만 한다고,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속이고 있었다.
그는 결혼 전부터, 그리고 결혼 후에도 늘 휴대전화에 잠금을 걸어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했던 그때의 내가 떠오르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를 탓하고 싶어서라기보다, 그만큼 그 시절의 내가 참으로 안타깝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첫아이를 임신한 터라 태교에 특히 많은 신경을 썼다. 하지만 전남편은 일찍 귀가한 날이면 폭력적인 장면이 가득한 영상을 큰 소리로 틀어놓고 늦은 밤까지 보곤 했다. 태교에 좋지 않다며 아무리 말해도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연애 시절 아이를 무척 좋아한다고 말하던 그의 말과는 너무도 대조되는 행동이어서, 나는 그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전남편은 첫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중에도 또다시 여자 문제로 의심을 받았지만, 그는 끝까지 아니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그대로 믿고 넘어갔다. 그때의 나는 태교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기에, 사실관계를 따져 볼 여유도, 콩인지 팥인지 가려낼 눈치도 없었다. 하지만 훗날 알게 된 사실은, 그 무렵 이미 내 주변의 일부 사람들은 전남편의 일탈을 알아차리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의 일탈 사실을 알고 있던 지인들은 나를 두고 ‘보살 같다’고 말했었다. 당시에는 내가 임신 중이었기에, 그 말을 돌려서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라고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그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임신 중이어서 그 정도로밖에 말하지 못했고, 이미 알고도 그냥 넘어가는 사람인 줄 알아서 보살 같다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었던 나는 그 말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흘려보냈다. 경험이 전무했던 나에게 그들의 말은 놀아본 적이 있거나 관심이라도 있었어야 알아챌 수 있었을 말이었어서 의미조차 짐작하지 못했고, 그저 아니라는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던 것 뿐이었다.
‘보살 같다’는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전남편이 나와 사귀던 시절 어린애 같던 나를 두고 들었던 말이었다. 그는 연애하는 내내 과할 만큼 다정했지만, 그 다정함이 훗날 나를 가장 깊이 상처 입히기 위한 예고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사랑처럼 보였던 시간이 사실은 긴 괴롭힘의 서막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의심을 나 혼자의 착각으로 남겨두기에는, 지금의 현실이 그 결과를 말해주고 있어서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이 때의 나는 씩씩하게 내 아이에게 도움되는 음식만 먹고, 안좋은 음식을 자제하고, 태교를 위한 좋은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를 졸라서 하고 싶던 만삭 사진을 무료로 찍고, 가기 싫어하는 그를 설득해서 태교여행도 고르고 골라서 내 비상금으로 다녀오기도 했었다. 그래서 이런 모습만 아는 남들은 사는게 좋아보였을 수도 있을것 같다. 지금의 나와는 다르게 그 때의 나는 삶이 힘들어도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열정이 넘쳤고 그의 말을 무조건 믿기 위해 노력 했었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출산 후 그는 산후조리원에도 담배 냄새 찌든 상태로 와서는 술약속이 있다며 다시 나가기도 했다. 사귀는 내내 함께 있을 때면 담배는 일절 손에 안대던 모습과는 너무 비교가 되었다. 철저한 외로움 속에서 내가 버틸 수 있던건 사랑스런 아기 덕분이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던 그 때, 나는 내 온 마음과 사랑을 내 아이에게 모두 쏟아부었다.
태어난 아기와 집에 와서도 그가 술먹고 늦는건 여전했다. 나는 아이와 단둘이 집에 갇힌 듯한 신세가 되었고 그는 항상 일 때문에 바쁘다고 했고 밤에는 술 먹고 늦는게 일의 연장선이라고 했기에 그가 시간이 될 때 병원에 같이 가고, 마트에 가고, 그의 일을 돕는 것이 내 외출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는 가끔 미역국을 한 솥 끓여주고 맛있는 음식을 해줬다. 나는 그런 그가 고마워서 족욕을 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나는 그가 달래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마음을 풀었다.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그래서 남들은 그가 잘해준 순간만 알았기에 내 처절한 외로움을 알지 못했다. 나는 그가 대인관계가 넓어서, 일하느라 바뻐서, 매일 같이 술 마시고 늦어서 속상하다는 정도로만 말했기 때문이다.
그 때의 나는 아직 어렸고 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기에 내 스스로에게도 가스라이팅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지나고 보니 알게된 현실은 신혼초에도 임신중에도 육아중에도 그에게는 여자가 끊임없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좋았던 순간이 분명 있었을텐데 이제는 기억조차 흐려져 회색 빛으로 바랜 사진처럼 느껴진다. 판도라상자의 충격과 현재 전남편의 행동들로 인해 좋은 감정은 전혀 남아있지 않아 지우고 싶은 과거가 되어버렸다.
전남편에게 아기가 태어난 것은 분명 기쁜 일이었지만, 그는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크게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부담감을 책임감으로 이어가기보다는, 매일 밤 술을 진탕 마시며 현실을 회피하는 길을 선택했던 듯하다. 그러다 가끔 정신을 차리고 나와 아기를 챙기던 순간들이 있었기에, 나는 힘들었던 그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고, 그래서 그와의 정을 완전히 놓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쉽게 무너지지 않으려 애썼다. 임신 중이던 그때부터 앞날을 고민하며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찾아 나섰다. 작고 사소한 일에서 시작했지만, 그렇게 쌓인 시간들은 자연스럽게 내 업무의 범위를 넓혀 주었다.
배 속에 아이를 품은 채로도, 출산 직후의 혼란 속에서도 나는 늘 일감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더 단단해 보인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지치고 불안했음에도 삶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애쓰던, 유난히도 열정적인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어쩌다보니 갖게된 둘째, 둘째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이혼했을지도 모르겠다. 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으며 전남편에 대한 기대는 절반 이하로 내려앉았다.
그와 동시에 삶에 대한 열정도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첫째를 돌보는 와중에 신생아까지 보살펴야 했기에, 둘째 때는 깊은 산후우울증에 빠질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잠만 푹 잘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매번 나를 내버려두는 그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거나 나에게 왜 그런 식으로 대하는지 물으면 그는 늘 불만은 없다고 말했다. 반대로 난 그에게 불만이 전혀 없던건 아니지만 내가 그에게 바란 것은 결코 크지 않았다. 외박하지 않을 것, 여자 문제를 만들지 않을 것, 늦어질 때는 미리 연락할 것, 술을 마실 때는 전화 정도는 받아줄 것.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함께 대화하고, 함께 추억을 만들어 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품고 있기도 했다. 그것이 과연 큰 욕심이었을까?
돌이켜보면 다툼의 시작은 늘 같았다.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나는 그의 잦은 약속과 늦은 귀가에 대한 서운함을 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관계를 함께 살아내기보다, 말없이 곁에 존재하기만 하는 인형 같은 역할을 내게서 원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알고 보니 산후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지만 심한 산후우울증은 모두가 다 겪는건 아니었다. 나는 첫아이를 임신한 당시 이미 경증 우울증이 걸린 상태에서 임신을 했고, 출산후 거의 방치된 삶을 살았기에 심한 산후우울증에 걸린거였던거 같다.
(※ 전문의가 아닌 개인적 정리이며, 의학적 진단 기준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구나 호르몬 변화로 인해 산후우울감을 겪을 수는 있겠지만, 첫아이를 가졌을 때의 나처럼 심한 산후우울증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산후우울증이 발생하는 이유
1) 호르몬이 출산 직후 급격히 떨어지므로
임신 동안 높았던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이 출산 직후 갑자기 수직 낙하하듯 떨어진다.
이런 급격한 변화는
감정 조절에 직접적인 영향을 줘서
→ 평소 멘탈이 강한 사람도 갑자기 감정이 흔들릴 수 있다.
2) 수면 부족 + 육아 스트레스로 인해
신생아 케어는 밤낮이 없다.
수면 박탈은 우울증을 촉발시키는
가장 강력한 요인 중 하나로
→ 감정조절의 기복이 발생될 수 있다.
3) 몸의 회복 과정에서 오는 통증과 피로
출산 후 회음부/복부 통증, 모유수유 문제, 호르몬성 탈모, 관절통 등이 생긴다
→ 육체적 피로가 정신적 피로를 2~3배로 증폭시킬 수 있다.
4) “좋은 엄마여야 한다”는 압박
외부의 기대와 비교,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라는 죄책감
→ 특히 민감한 사람일수록 더 부담스럽게 느낄 수 있다
5) 사회적 고립감
출산 후 외부활동이 줄어들어 주변과 단절되는 느낌
→ 정서적 지지 부족은 우울감의 큰 요인이 된다
하지만 모든 여성이 산후우울증을 겪는 건 아니다. 호르몬 변화는 모두에게 일어나지만, 체질·성격·지지체계·환경에 따라 영향이 크게 달라진다.
산후우울증의 발생 조건
산후우울증이 특히 잘 생기는 경우는 임신 전이나 임신 중 우울감이 있었던 경우이다.
출산 후 수면이 극도로 부족한 경우
배우자·가족의 지지가 부족하면
경제적·육아 환경이 불안정할 때
완벽주의 성향이 강할 때
난산, 조산, 입원 등 힘든 출산인 경우
난 조산이었고 위 모든 상태에 해당되었기에 심한 산후우울증이 올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나보다.
이처럼 누구나 산후우울증이 생기지만, 극심한 산후우울증을 모두가 겪는 건 아니다.
즉, 어느 누구도 '나는 절대 안 와'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출산은 신체·감정·환경이 모두 크게 흔들리는 사건이다. 결론은 산후우울증의 강도 차이가 있을 뿐인거 같다.
극심한 산후우울증은 감정에 민감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그 부담을 혼자 감당하게 되면서 고립감을 느끼기 쉬운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