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은 나를 변화시켰다
난임.
나에게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 단어였다.
결혼을 30대 중반인 35살에 하긴 했지만, 그동안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나는 결혼하면 마음만 먹으면 문제없이 아이가 생길 거라는.
그런데 8개월 정도 지났나.. 양가 부모님은 빨리 손주를 만나고 싶어 하시는데, 내 몸은 아무런 변화 없이 감감무소식이었다.
다행히 회사 주변에 유명한 난임 병원이 있어서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은 난임 환자로 인산인해.. 사무실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병원이었지만 잠깐 다녀올 수 있는 수준의 기다림이 아니었다. 병원은 가까웠을지라도, 나의 반차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병원에서는 나를 홀대했다. 이유는 아직 굉장히 건강하다는 것. 난소 나이든 호르몬이든 남편의 상태든 아이가 안 생길 이유가 없다는 것. 다만 병원에 왔으니 의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다. 약간의 약을 쓰고 확률을 높이는 방법으로.
그런데 한 달 두 달 그리고 결혼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아이는 아직 없다. 그리고 병원의 대접은 극진해졌다. 홀대받는 게 차라리 좋은 상황이었다니. 아이러니다. 어쨌든 처음에 병원에 갔을 때, 병원에서는 내가 굉장히 건강한 축에 속한다고 하면서 자신 있게 호르몬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런데 왠지 나는. 움츠러들었고 짜증이 많아졌고, 눈물이 많아졌다. 난 그저 회사가 힘들어서, 사람이 힘들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인공수정을 시작했다. 나에겐 인공수정이라는 단어는 낯설었지만 병원에선 별거 아니라고 했다. 물론 회사와 병행하는 것도 당연히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회사와 병행하는 게 가능한 것이었을까. 회사에서는 나의 모든 부정적 감각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옆 사람의 걸음소리, 옆 사람의 헛기침 소리, 옆 사람의 일하는 소리. 등등등 모든 것이 나를 괴롭혔고 나를 무시하고 나를 자극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나의 이러한 감각들이 호르몬 때문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예상외의 곳에서 들었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힘든 게 호르몬 때문이라는 것을 인식하면 나아진다고 했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회사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게 맞다고, 주변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게 맞다고 고개를 가로저어보았다.
그런데 정말 그 말이 맞았다.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 주기가 되면 주변이 그렇게까지는 짜증 나지 않았다. 아니 약을 먹을 때에도 아 이거 호르몬 때문이지 라고 생각하고 잠깐 쉬다 오면 짜증이 수욱 민감한 감각이 수욱 사라졌다. 짜증이 정말 날 때는 말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생각이 뒤엉켜서 힘들었는데, 약을 먹지 않을 때는 말도 술술 잘 나왔다. 하. 참.
의사 선생님은 그런 증상을 호소하는 나에게 되물었다 " 왜 그럴까요..? 왜 짜증이 나지..?" 하.. 그걸 내가 알았으면 병원에 왔을까.. 너무 답답했다.
비록 호르몬을 제어할 방법은 알게 되었지만, 난 무언가 대책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조언하기를..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물리적으로 약을 사용하는 방법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다 인스타그램 강의를 발견하게 됐고,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한편엔 이걸로 수익을 얻으면 회사도 그만두고 아이도 편하게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론적으로 인스타그램도 회사를 다녀야 잘될 수 있는 것 같다는 사실과 아이를 나중에 잘 키우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까 아직 아이가 없을 때 악착같이 일해야 된다는 사실을 더 깨닫긴 했지만. 어쨌든 시작은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정신이 피폐해진 나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고 싶었던 게 목적이었다.
이번 달 초, 첫 번째 시험관 단계를 시작했다. 시험관은 인공수정보다 복잡해서 거쳐야 되는 단계가 여러 가지였는데. 난 아쉽게도 첫 번째 단계에서부터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임신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 자궁의 근종이 난자를 채취할 때는 장애물로 활약해 자라난 난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 뽑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하.. 뭐.. 이런...
처음엔 너무 슬펐다. 시험관만 하면 잘될 것 같았는데. 금방 다 잘돼서 금방 임신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요즘에 난임 부부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남들은 다 아이가 있고 아이가 잘 생기고 하는 거 같은데 왜 나만....
하지만 슬퍼할 겨를은 없었다. 슬퍼해봤자 남편의 불편함만 커져갈 뿐이었고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병원에서는 수정란 1개가 탄생했다며 연락을 줬다. 그나마 희망이 생겼다. 그래도 0개보다는 1개가 낫고 다음번에 다시 난자 채지를 하면 1개보다 2개, 그 이상이라면 분명 희망이 있겠지.
이렇게 엄마가 될 준비를 하나씩 하나보다. 아직 내 품에 와있는 아이는 없지만, 벌써 나는 엄마가 된 듯하다.
내 친구는 난임으로 마음고생하고 있는 나에게 이런 예쁜 말을 해줬다.
"언니, 언니에게 진짜 예쁜 아이가 오려고 준비하고 있나 봐. 늦을수록 완벽하다고 하잖아. 분명히 정말 천사가 다름없는 아이가 언니에게 올 거야. 언니는 그럴 자격 있는 것 같다."
내가 과연 그런 예쁜 아이를 맞이할 자격이 있을까. 아니 자격이 있어야겠지.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그곳에서는 나의 난임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나를 온전히 느끼고 표현한다. 예전에는 관종들의 놀이터라니 SNS는 인생의 낭비라니. 부정적인 프레임에 씌워져 홀대받던 SNS였는데, 홀대할 필요 없을 것 같다. 나는 지금 인스타와 함께 성장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또 인스타의 긍정적인 면을 이야기해보면, 내가 요즘 맡고 있는 비대면 강의에 대한 아이디어도 더 잘 떠오르는 것 같다. 물론 팀장님의 만족스러운 피드백도 덤으로 따라온다. 인스타그램은 내 본업을 깨트릴 취미라고도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내 본업을 더 반짝반짝하게 만들어주는 취미였다. 덕분에 브런치도 시작하게 되고.
이렇게 보면 참, 세상에 부정적이기만 한 건 없는 것 같다. 난임도, 인스타그램도, 취미를 가장한 부업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