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활한 가을하늘은 그 앞도적인 높이 만큼이나, 소리로도 전해진다는 사실을 공감하는 분이 계실까요? 저에게 있어 가을의 문턱을 알리는 그 무음의 소리는 소란했던 여름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다가 오고 있음을 알리는 또 하나의 감각 지표입니다. 역대급 9월 더위에 아직은 많이 더워서 피부로는 아직 새로운 계절을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슴이 뻥 뚫리다 못해 공허한 마음마저 드는 높고 파란 하늘에 구름이 몰래 지날 무렵이면 대기는 나뭇잎이 살포시 땅에 붙는 소리와 마른땅을 구르는 모래알 소리, 어렴풋하게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로 가득 차는 가을이 왔음이 귓가로 사뭇 느껴집니다. 그렇게 올해 가을은 소리로 먼저 다가왔나 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의 <<옥상 프로젝트 2024, 여기!>>는 이런 가을을 만끽하기에 충분합니다. 높고 파란 가을 하늘을 캔버스 삼아 인공의 구조물이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6층 옥상에 설치된 김동희의 <도킹(Docking)>은 폭 18미터, 길이 55미터의 대형 설치미술 작품입니다. 푸른 바다를 닮은 가을 하늘로 항해를 시작하는 커다란 배의 갑판 같기도 하고, 선선한 재즈가 어울리는 감각적인 무대 같기도 합니다. 확실한 것은 그 어떤 것을 상상하든 하늘과 옥상을 이어 주기에 충분하며, 가을을 음미하기에도 적절하다는 것입니다. 걸음걸음마다 삐걱이는 소리를 내는 '갑판' 위를 오르고 내리다 보면 옥상에서 펼쳐지는 도시 풍경이 춤추듯 넘실거립니다. '돛대'와 바람의 펄럭거리는 합주와 내리쬐는 태양의 조화는 거친 파도 위 선상을 거니는 위태로움과 찬란한 눈부심까지도 재현합니다.
청명한 가을하늘에 흠뻑 취해보고 싶은 분, 국내 최초의 수장고형 미술관인 '청주 국현'의 새로움을 발견하고 싶은 분이라면 이 한 점의 작품을 위해 발걸음을 청주로 돌려도 충분히 만족하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