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과 티끌만한 루틴
나는 한달째
아침 루틴을 실천하고 있다.
루틴을 반복하며
이만큼의 글을 써나갈 수 있었다.
티끌 같은 적립금을
매일 쌓아가다보니 목차는
점점 늘어났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아져버렸다.
루틴은 간단하다.
아침 8시쯤 일어나면 담배를 핀다.
들어와서 노트북을 켠다.
글을 5줄 정도 끄적인다.
(어떤 글이든 상관없다.
그냥 자음과 모음의 엮임이면 된다)
책을 10페이지 읽는다.
(어떤 책이든 책의 형태만 있으면 된다)
운동을 한다.
(어떤 운동이든 상관없다. 30초만 해도된다)
여기까지 하면 30분이 채 안된다.
이 작은 루틴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뭣한
작은 행동들은 내 하루를 결정한다.
어쨌든 내가 무엇을 해냈다는
심리적 만족감을 들게 하는 행위로
아침을 시작했으니,
남은 시간도 이 만족감을
연장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쁘띠 루틴’은
심리상담을 받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예술인 복지재단에서 지원해주는
이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상담을 받는 내내 평온했다.
내 얘기만을 들어주는 사람을
어디가서 만나겠나 싶었다.
애인도 가족도 내 얘기를 듣기는 하겠지만,
나의 일상과 심리, 감상을 아주 잘게 쪼개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주지는 않는다.
불안한 나의 일상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었고
우리는 함께 그것을 개선할 수 있을
방법에 대해 이야기 했다.
예술인 전문 상담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나의 작업 과정과 봉착한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테마였다.
그 시간동안 나는 로그라인도 쓰고
막혀있는 씬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도 했다.
어떤 시나리오 작가와는 상담 하는
한시간동안 한씬씩 함께
작업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작가들이 얼마나 글앞에서
무력해지는지에 대해,
왜 그런 무력감을 느끼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잘하고 싶어서. 지금보다 더.’
이런 마음을 먹는 것은
오히려 글을 쓰는데 큰 방해가 된다.
좋은 글을 써야하는데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작업행위를 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루틴이 시작되었다.
‘그럴듯한 글’을 쓰기보다는
‘일단 쓴다’는
행위에 집중하면서 나의 신분,
즉 ‘작가’라는 신분에 맞는
직무를 수행한다.
‘책 읽기’는 내가 하고 싶고,
해야한다고 느끼는 행위로서
많이 읽어치워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만큼.
그게 10페이지 분량이었다.
마지막.
잠시간의 운동은 아직 덜깨어있는
내 몸을 건드려 행동성을 부여한다.
즉, 다시 누워서 잠을 자거나
꾸물거리지 않게끔 하는
부스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나의 작은 행동 파편들을
한 달 정도 모아보니
한글 파일을 10개 넘게 만들었고
책은 한권 반 정도를 읽을 수 있었다.
실은 30분도 안되는 시간동안
무언가를 순서대로 해냈다는
만족감에 그 이후 시간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날들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행동들의 모음은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빼앗아 주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얼할지 몰라,
잠이나 자거나 먹거나,
핸드폰을 보던 시간들에
의무감을 부여해주었고,
덕분에 우울함이나 무기력을
느낄 시간이 없어졌다.
담배를 피고 난뒤
노트북을 켜고 글을 써야하니까,
그 다음엔 책을 읽고 운동해야하니까.
나에겐 그 점이 가장 이롭게 작용했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이므로
일단 움직이고 보는
이 루틴은 나에게 생각할 시간에
엉덩이를 떼고 보는 버릇을 붙여 주었다.
앞으로는 이 루틴들에
살을 붙여 시간과 양을
차차 늘려보며 성취에
숨을 불어넣어볼 생각이다.
나의 일상이 톱니바퀴날이 맞아
굴러가는 것을 느끼며
뱅글뱅글 돌아가는 내가 좋다.
길을 잃은 기분이,
느닷없이 세상에 버려진 기분이
들지 않아서 좋다.
내 루틴에 들어온 나의 소우주 구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