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이 다가 아니다
작가의 자질이 무엇일까?
창의력?
무거운 엉덩이?
대사빨?
아이템 기획력?
내가 생각하는 작가의 자질은,
논리력에 기반한 설계능력이다.
왜냐면 내가 그게 없어서 작가가 못되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서 그런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나를 분석해보면 이유가 나온다.
이 분석을 하면서는 좀 슬퍼진다.
알면서 못 고치는 거니까.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은 영상 대본이었고
인물의 감정과 상황, 대사를 적시적소에 배분하여
보는 사람들 모르게 그들의 감정과 사고를
가지고 놀 수 있는 글을 써야했다.
흔히 영감을 받아서 글을 쓴다고들 생각하지만,
내 생각에 글을 쓰는데 필요한 것이
100이라면 영감은 1-2프로 정도 된다고 본다.
나머지는 어떻게 인물과 상황을 배치하여
시청자가 눈을 뗄 수 없는 ‘홀리는’
플롯을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초석위에 기둥을 세우고 철근을 엮고
콩크리트로 견고한 바닥을 만들어
벽돌을 쌓는 과정과 비슷하다.
아이템과 기획을 통해 인물, 배경, 사건을
정하고 그들이 어떻게 얽히고
섥히게 되는지 그 실타래는
어떤 방식으로 풀리게 될 것인지를
설득력있게 꾸려야한다.
그 와중에 가장 중요한 것,
‘재미있어야’한다.
그 과정은 지난하고 대중이 없는 것이어서
이게 맞는 것인지 길을 잃곤 한다.
누구에게는 재미있고 누구에게는 재미없고,
또 나는 한명인데 열명이 넘는 인물들을
움직이고 말하게 하는데 혼돈이 오기도 한다.
(10명의 말투가 모두 같은 오류를 범하는등의..)
그래도 장르별 콘텐츠들의 구성이 담긴 책들이
나와있어 참고에 부족함이 없지만,
글을 쓰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맞다고들 하는
구성에서 한참을 벗어나있기도 한다.
벗어나야 더 재미있는 거 아닌가? 하며
한없이 노를 젓다보면, ‘이게 무슨 말이야?’ 하는 나만 재밌는,
나만 이해되는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익숙해져 있는 것에서 아주 살짝만 비틀어도
사람들은 새로운 것이라고 인식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좀 더 파격적이고
신선도가 최상의 작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기본을 내팽겨치고
‘아무도 하지 않은 것.’에
집착했던 적도 있다.
셰익스피어 이후에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라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에이 그래도 난데?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자만심에서 나온 행동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은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고 있다.
스토리 구성 서적을 찬찬히 읽고
내 작품에서 어떤 것이 없었는지 확인하고 있다.
적대자와 주인공의 클라이막스에서
터지는 갈등이 약한지,
적대자의 극한의 욕망이 드러나지 않는지 등.
읽으면 읽을수록 내 작품에는 있어야 하는 것이 없었다.
그러면서 재미만 있으면 장땡이지.를
되뇌이며 초석이 없는 사상누각을
짓고만 있었던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지망’신분을 벗어던지기 위해서
요즘은 기본에 충실한 설계자의 마음으로
찬찬히 돌을 쌓아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