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실록의 일부 발췌
나의 신분은 작가(지망생)다.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웹드라마 대본에 참여한 적이 있지만
현재 제작사 계약도 없고
돈 받고 글을 쓰고 있지도 않으니
스스로 지망생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매일 내가 해야 할 일은 글을 쓰는 일이다.
하지만 하루에 글 쓰는 시간은
30분도 되지 않는다.
이런 근무태만이 따로 없다.
그래서 나는 이런 나를 빛 좋은
단어들로 포장해주려고 한다.
바로 ‘와인’같은 인생이라고 말이다.
와인을 딴 잔에 따라서 공기와 접촉시키고
흔들어대며 섞이게도 해줘보고
시간을 두고 보면서 맛좋아질
시기를 기다리며 숙성시켜줘야 한다.
무턱대고 ‘쓰면 된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타자만 두드리면
지금처럼 이런 글이 나오니까 (자조의 웃음 허허)
내가 쓰는 글들의 대부분은
오피스물이다.
모두 경험에서 온 것들이다.
직장 생활을 그리 길게 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직장을 상사의
괴롭힘에 못 이겨 나왔으니
직장인으로서의 쓴맛을 못 본 것은 아니다.
가장 마지막 회사 업무는
예술인을 위한 공간을 운영이었다.
부서의 팀장은 매우 무능력하지만
정치를 잘한다는 확실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로서 자신의 일을
모두 밑에 사람들에게 넘겨버려,
자신은 할 일이 없었다.
허둥지둥 일을 처리하는
직원들에게 틈만 나면
‘커피 타임 할까?’
하면서 둘러 앉혀놓고 억지로 웃길
강요하거나 무안을 주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습성을 갖고 있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우리도 아트와 친해져야 되지 않겠냐며
팀원들에게 자작시를 지어
낭송하라는 억지를 부렸다.
그리고 정말 팀원 한명씩
지목하며 낭송을 시켰다.
팀원 하나가 못 하겠다며
웃으며 넘어가려 하자,
남의 시라도 읊어보라며 강요했고,
팀원이 낭송한 것은 ‘똥파리’와
수행을 비유하며 쓰여진 아주 짧은 시였다.
‘나보고 지금 똥파리라는 거냐?’
그 시를 듣고 팀장은 곧바로
지 혼자 찔려서 팀원을 추궁했다.
지가 하는 짓이 똥 같은 짓이라는 건
알긴했나보지. 퉷.
이런 사람과 내가 짝 지어져
매일 같이 단 둘이 차를 타고
외근을 가고 회의를 해야 한다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시와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 시집을 보면
‘이게 재밌냐? 누가 보긴 하냐?’
하고 말했다.
자신의 수준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죄다 가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 무지랭이 같았다.
팀원들 중에서는 정말 문학이 좋아서,
앞으로 문학을 하고 싶어서
들어온 사람들도 있었고
그걸 아는 사람이 그 앞에 대고
이딴 걸 좋아하는 네가 이해할 수 없다.
시간 아깝다. 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었다.
어떻게든 그를 동정섞인 이해를 하거나
애써 무시하며 직장생활을 이어가려 했지만
아침 출근길 조근 수당을 받기 위해
일찌감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야구 하이라이트를 보고 있는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얼굴이 흑빛이 되며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매일 같이 멍석말이 당하는
심정으로 몇 개월을 버티다가
인간 혐오로 온몸에
두드러기가 날 것 같다는
위협감에 도망치듯 퇴사했다.
얻은 것은 우울증과 인간혐오였다.
하지만 실컷 나를 불쌍해하며
침잠해 있을 시간따위 없었다.
달에 한 번 들어오는 장난 같은 액수의
월급마저도 내겐 없을테니까.
속해있는 집단도,
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력도
잃은 자유의 몸이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