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롤링jk Oct 14. 2021

퇴사후 공모전 헌터가 되다

상을 타야 산다 


두드러기날 것 같은 인간이 팀장인

회사에서 하루라도 더 있다간 

쇼크사 할 것 같았다. 

계약기간만 버티자 다짐했지만 

하루하루 지날때마다 얼굴부터 심장,

콩팥할것 없이 새카매지는 기분이었다. 

한마디로 수명단축이 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사직서를 서둘러 내고 

도망치듯 회사를 관뒀다.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회사는 대책 없이 그만뒀고 

당장 아아메 사 먹을 돈을 

걱정해야할 판국이었다. 

재정 상황이 긴박해도 

회사는 절대 네버 다신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7일 중 5일을 동서남북으로 

같은 사람들이 들어찬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건 이제 내생에 더 이상 없다고, 
회사를 박차고 나오며 결심했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하는 것에 

취약한 특성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존재 증명이 가능한 일. 

그게 무엇일까. 


사실 퇴사하겠다 결심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글을 쓰게 될 것 이라는 것을.

전공도 그쪽이었고 

예전부터 타인 그리고 내 속의 나로부터  

글을 잘쓴다는 평을 받곤 했다.     

혼자할 수 있고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 

그래, 글을 쓰자. 

그렇게 나는 공모전 헌터가 되었다. 

 

*     

시나리오나 드라마를 쓰고 싶었다. 

글자에 갇혀있던 인물들과 사건이 

살아 숨 쉬게 되는 순간의 

희열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공고가 난 공모전을 이 잡듯 뒤져 

무작정 글을 썼다.  

작가 지망생에겐 공모전은 

입신양명의 문 같은 거였다. 

인맥도 없었고 홀홀 단신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쓰고 

수정하고 지우고 저장하는 

한글 파일 내의 세상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보면 수상한다고 

미래가 보장되는 건 전혀 아니었지만)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글을 쓰기 전 공모전 안내 페이지를 열어 

수상금을 확인했다.

저걸 타면 여행가고 아이패드 사고 

호캉스도 하고..      


서울대입구 쪽에 있는 커피빈에 

매일 같이 7시에 출근했다.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출근해서 기계처럼 글을 썼다. 

7시에 카페에 도착하면 아무도 없었다. 

전세 낸 기분으로 ‘정말 하기 싫다’ 

는 생각을 하며 노트북을 켰다. 


그 시절에 나는 ‘공모전 입상’ 이라는 

간절함에 취해 있었다. 

엄청난 양의 글들이 

하드에 저장되기 시작했다.      

공모전 분야의 대중은 없었다. 

휴먼 단막극, 호러 장편 시나리오, 

숏폼 드라마, 웹툰 스토리, 

요즘 대세라는 레드오션 

웹소설 연재까지 했었다. 


그땐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고 싶어 목을 맸다.

그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가짜 인간을 만들고 움직이고 

말을 시키며 허구의 세상을 

만들었다 허물었다 하는 것이 

내 세상의 전부였다. 


손가락 몇 개로 신(神)이 된 

기분은 유쾌하지 않았다. 

아귀가 착착 맞는 이야기를 

조였다 풀었다 주무를 수 있는 

힘이 나에게는 없었다.      


*


내가 썼던 단막극 <매직추나>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은 콘돔 영업사원이다. 

내성적인 탓에 적극적인 영업전략을 

펴지 못하고 실적으로 압박당하며 

부서에서는 여자라는 이유로 따를 당한다. 

이 여자는 제주의 어느 게스트 하우스에서 

신비로운 추나요법을 받고 난 뒤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전부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는 용감함과 무모함을 얻었다는 

반증이 되어 적극적으로
콘돔 영업을 하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수직상승하는 실적에 미친 듯이 

전력질주 하다가 신비로운 

추나요법의 부작용으로 

양다리 길이가 완전히 다른 

짝다리로 살게 되어버린다. 

이런 참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경고를 알리는 환상속의 목소리가 

그녀에겐 여러 번 들려왔었다.


‘Open your eyes..!’ 


...이게 이야기의 끝이다. 

눈을 내가 떴어야 했는데. 

이렇게 쓰지 말고 눈을 뜨고 

똑바로 재미의 부재를 

직시했어야했는데. 

 

내 이야기는 좀 이런식이다. 

아이템과 기획, 인물 설정도 봐줄만한데 

이야기의 흐름이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지 못한다. 

처음 스토리를 생각해내는 것도 

힘들고 인물 구성도 힘들고

플롯짜는 것도 힘들고 

이 모든 것을 통합하여 

‘재미’를 줄 수 있는 

대본을 만드는 것은 더 힘들다. 


그냥 다 힘들었다.      


작은 직사각형 모니터에 반짝이는 

커서를 보면서 내가 채워야할 빈 공간이

이렇게 많다는 압박감에 짓눌려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글에 기꺼이 취해 

매일같이 쓰고 지웠다. 

카페로 가는 버스에서도 

글에 대해 생각하고 자기전에도 

생각이 나면 벌떡 일어나 한글을 열었다.

 

결과적으로 두 번의 수상경력과 

한 번의 작품 대본 참여 경험이 생겼으니 

나쁘지 않은 아웃풋이라고 할 수 있었다.


회사를 2019년에 그만두고 

2019년, 2020년 

한번 씩 결과를 냈으니

2021년에도 무언가 기대해보며 

이것저것 기웃거리기도 하고

드라마 대본참여를 하며 생겼던 

인맥으로 제작 미팅을 몇 번 하기도 했다. 

모두 성사 없이 끝나버리긴 했지만.  

그 시간들은 나에게서 

큰 기대와 너무 사람 믿지 말자. 

라는 교훈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공모전에 염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뇌를 갈아 써낸 글이라 해도 

글은 어쩔 수 없이 주관적인 콘텐츠였다. 

몇 년을 바쳐도 결재자가 재미없어! 

하는 말 한마디에 미끄러질 수 있는 

공정성이 매우 떨어지는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공모전에서 멀어지기로 결심했지만 

여전히 작가 커뮤니티를 눈팅하며 

올라오는 공모전을 매의 눈으로 탐색한다. 


여기서 내가 입상하면? 돈은? 미래는? 

하는 꿈에 부푼 생각이 또 들고 만다.


지금도 그렇다. 

이렇게 글을 써서 

내 원고가 책이 되면? 유명해지면? 

기안84처럼 되면, 나혼산에 나오는거 아냐?

하는 의식의 흐름이 직렬식로 주욱 늘어진다.     

  

그렇게 목을 매던 공모전에 입상해도 

다시 또 공모전의 늪에 빠지고 마는 아이러니.     

그렇게 3년 동안 열심히 

수십번의 공모전에 도전하고 

고배를 마시면서 느낀 것은, 

영상 텍스트는 가성비가 

매우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 얘기는 뒤에 별첨된 

가성비 섹션에서 다시 다루겠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지금 

내 이야기를 이렇게 쓴다. 

열 번 찍어 나무가 넘어가나 

안 넘어가나 보며 

미련 떨기보다 우회하는 것을 택했다.  


글쓰는 외로운 작업중 유일한 나의 위안 


작가의 이전글 두드러기 날 것 같은 인간 : 마지막 회사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