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눈치 빠른 아이와 감정이 큰 아이-기질 분석

감정 훈련 연대기: 말 없는 엄마들의 시간

by 다정한 연습
감정이 큰 아이는, 자주 튀고 넘치고, 오래 남았다.
눈치 빠른 친구는 그 감정을 단호하게 정리해버렸다.
감정을 다루는 속도와 방식이 전혀 다른 두 아이가 만났을 때,
엄마로서 나는 무엇을 보호해야 했을까.
이 글은 그 질문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아이의 감정에서 나의 마음을,
내 침묵 속에서 아이의 언어를,
다시 배우기 위한 훈련의 기록이다.

① 다시 만난 날

소영이를 다시 만난 날, 서로 보고 싶어 했지만
막상 마주한 유민이는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나도 잔치국수 먹을래.” 유민이는 소영이를 따라 음식을 선택했다.
“진짜 먹고 싶은 거 맞아?”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고,
아이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확신은,
소영이와 소영이 엄마 사이에 오간 빠른 눈빛과 함께 흔들렸다.

잔치국수를 절반도 넘기지 못한 유민이.
소영이는 말없이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남은 국수 가락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조마조마하게 흘렀다.

아이들은 놀이터로 나갔고,
소영이 엄마와 나는 놀이터 만남을 떠올리며
말을 꺼냈다.

예전 만남에서 유민이가 눈치 없이 굴어
민망했다고 말하던 소영이 엄마는,
“유민이에게 단호하게 말해도 되느냐”
라고 조심스럽게 물었었다.
“당연히 필요하면 그러셔도 된다”라고
나는 말했지만,
다만 아이가 위축되지 않도록
‘좋은 피드백’을 함께 부탁했다.
그 말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생각해 주어 한 말에
‘피드백도 함께 해달라’고 덧붙인 나는,
무게를 소영이 엄마에게 밀어버렸다는 걸.


“아까 소영이 눈빛 보셨어요?”
그 질문은 나를 멈추게 했다.

“요즘 여자애들 정글이에요.
유민이가 너무 위축되어 보여요.
혹시 사회성 그룹 훈련 상담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그 말 앞에서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유민이를 떠올리자,
고요하게 터져 나온 말이 겹쳐졌다.

“나는 재능이 없어... 없어지면 좋겠어.”


소영이가 평소 “이제 네가 해”라고 말하면,
유민이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따라 했다.

“따라 하지 말랬잖아!”

소영이의 말에 경직된 얼굴로 돌아온 유민이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무조건 친구 말 들어야 해. 난 나쁜 애야.”

그 말은 단지 말이 아니었다.
유민이의 내면이 가시처럼 나를 찔러왔다.

“아니야, 유민아. 그런 게 아니야. 넌 소중해.”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돼.”
소영이 엄마와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말은 지금 유민이에게 닿지 않고 있다는 것을.

“소영이가 유민이랑 잘 안 맞아서,
이제 안 놀겠다고 하면 어쩌나…
너무 걱정돼요.”
그 말속에 담긴 조심스러운 단호함.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못했다.
우리 아이는 정말 정글인 아이들을
버틸 수 있을까. 어울릴 수 있을까.
불안과 불편함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소영이 엄마의 자신감 있는 단호함과,
중심에서 관계를 끌어가는 소영이의 태도,
그리고 그 기준에 늘 맞춰지지 않는 유민이의 긴장한 모습.
사실, 시간이 흐를수록
무언가 균형이 어긋났다는 걸
마음 한편 감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하지 못했다.
유민이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 눈치와 불안이 어떻게 유발된 것인지,
소영이 엄마가 보는 시선과
내 아이가 겪는 감정 사이의
해석 간극을 설명할 말을
나는 찾지 못했다.

말하지 못한 채,
아이에게도 상대에게도 책임을 떠넘기듯 버거운 침묵만 지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를 조율하지도, 보호하지도 못했고,
결국 내가 부족해서
아이도 다르게 보이고 해석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밀려들었다.

놀이터, 아이와 보랍웡과 땡뽁이를 만났던 그전,
다시 그 자리로 되돌아간 것처럼 느껴졌다.


이 관계 속에서
정글 같은 초등학교 세계를 살아가는 유민이를 상상하자
불안과 무력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내가 소영이 엄마만큼 단호하지 못한 것도,
유민이를 잘 끌어주지 못한 것도,
모든 게 내 탓 같았다.


‘이 관계는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스스로의 입장을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이 뭔 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유민이는 따라 하고 싶어서 따라한 거였다.
좋아해서, 함께 있고 싶어서.
그 말 한마디가, 그날 내 가슴에 박혀버렸다.


② 아이의 속마음

그날 밤, 유민이는 먼저 입을 열었다.

보랍웡, 눙뭉이, 삐쭉이…
그 감정 친구들이 돌아온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냥… 친구가 좋았던 건데. 또 따라 했다고 혼났어.”
“그럼 따라 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민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하고 싶었어. 같이 있고 싶었어.”


③ 기질 구조화와 상호작용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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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유민이의 TCI 결과지를 다시 꺼냈다.
자극추구가 높고 감정 민감성이 크며,
위험회피도 높은 복합형 기질.
이 조합은 관계에서
다음과 같은 경로를 반복하게 만든다:


[“다가가고 싶어” → “거절당할까 불안”
→ “거절되면 자책·위축”]

[“친해지고 싶어” → “따라 하게 됨”
→ “지적받으면 혼잣말·반발”]


유민이는 감정이 빠르게 올라오고, 오래 남는다.
정서적 자극을 행동으로 옮긴 뒤,
그 결과를 반복해서 되새긴다.

감정은 곧 행동이고, 행동은 곧
관계 맥락에서의 해석으로 이어진다.

반면 소영이는 감정을 잘 느끼지만,
그 감정을 곧바로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처음엔 ‘반응이 느리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감정을 억제하거나 덮어두는
사회적 조절 속도가 빠른 아이였다.
불편한 감정이 떠올라도,
“이건 말하지 말아야 해”, “엄마가 싫어할 감정이야”라는 판단이 즉시 작동한다.
그래서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 관계의 중심을 지키려는 쪽으로 움직인다.

다시 말해,
소영이는 관계 안에서 어떤 감정이 허용되고,
어떤 감정은 감춰야 하는지를 빠르게 분별하고,
그에 맞는 '사회적 대응 전략'을 선택하는 아이였다.


그 결과, 두 아이는 감정의 양상 자체가 다르다:


유민이는 감정이 올라오면 곧바로
눈물, 혼잣말, 표정 등으로 반응을 보인다.
반면 소영이는 감정을 바로 드러내기보다는
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고,
그 감정을 억누르며 침묵으로 전환한다.

기질적으로 보면,
유민이는 자극추구가 높고 감정 민감성이 크며,
동시에 위험회피 성향도 높아
감정을 강하게 느끼고 쉽게 위축되기 쉬운 구조다.
감정이 일어나면 그 감정을 끌어안은 채
겉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유민이는 관계 안에서
'확인받고 싶은 마음', '맞추려는 노력'을 계속 이어간다.

반면 소영이는 안정성과 자기 통제력이 높고,
감정을 억제하는 경향이 크다.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기보다는
내부에서 빠르게 정리하고 눌러두려 한다.
관계에서는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려 하고,
자신의 기준에 따라 상황을 판단하고 정리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유민이는 감정을 ‘끌어안고 품는 아이’,
소영이는 감정을 ‘덮고 판단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나는, 그 차이를 몰랐다.
‘예민하다’는 말로 유민이를 해석해 왔던 것이다.

아이의 감정 표현이 크다고 해서 더 감정적인 것도 아니고,
감정 표현이 적다고 해서 그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
그날 밤, 나는 그 당연한 진실 앞에 늦게 도착했다.


④ 훈련 방향 재정립


감정이 크다는 건,
감정의 흔적이 오래 남는다는 뜻이다.
유민이는 그 흔적을 정리하지 않으면,
계속 반복해서 꺼내고,
다른 장면과 감정까지 엮어 다시 꺼내본다.
처음엔 단순히 감정이 풍부한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안다.
감정의 파동을 인지하고 해석하는 속도와 능력보다, 감정이 일으키는 자극의 잔향이 너무 오래 남는 아이다.


� TCI 검사에서 자극추구·감정민감·위험회피가 모두 높게 나온 기질 구조
유민이가 관계 안에서 계속해서 불안을 느끼고, 안정되지 않은 행동으로 튀어나오게 만든다.
특히 위험회피가 높다는 것은,
“친구가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라는 불안을 계속 떠올리게 한다는 의미였다.
자율성이 낮고 의존성이 높은 점수는,
그 불안 속에서도 상대에게 맞추고 기대려는 성향을 보여준다.


그래서 행동은 다음과 같은 흐름으로 나타났다:

· 소영이의 반응을 예측하지 못해 긴장하고

·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따라 하고

· 하지만 그게 지적되면 위축되고 자책하고

· 감정이 가라앉지 않으면 혼잣말을 하거나 갑작스레 반발하게 되는 것.


그 모든 행동은 하나의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


“내 감정을 이해받지 못한 채,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행동만 본다면 말썽처럼 보였지만,
그 이면은 감정을 해석하고
소화할 시간이 없는 상태였다.


따라서 훈련의 핵심은
‘통제’가 아니라 ‘언어’였다.
감정을 먼저 알아차리고,
그 감정을 말로 꺼내는 훈련.
그리고 감정과 행동을 구분해서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구조가 필요했다.


� 나는 세 가지 흐름으로 훈련의 방향을 다시 정리해 보았다:

1. 정서 인식 훈련

- 감정 이름 붙이기

- 감정 캐릭터 그리기와 캐릭터 이야기 만들기

- 감정이 시작된 순간, 상황, 자신에게 그때 해주고 싶은 말

2. 감정-행동 분리 훈련

- “친구가 먼저 잔치국수를 먹겠다고 했을 때, 나는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 “그 감정을 느낄 때, 말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했을까?”

- ‘따라 하는 행동’ 이전의 “나는 지금 진짜 뭘 하고 싶었을까?”

3. 대화 시나리오 훈련

- 친구가 싫다고 했을 때 → 감정을 잠시 멈추고 → 말풍선으로 표현 연습

- “난 너랑 같이 하고 싶었어.” “그게 안 되니까 속상했어.” 같은 감정 중심 말을 연습

- 친구 상황 시뮬레이션 + 감정 친구 역할극을 활용해 반복 재연습


지금 유민이에게는
“왜 그랬니?”보다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까?”라고 물어봐야 하고,
“그럼 다음엔 이렇게 해”가 아니라
“그때 그 마음, 뭐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라고 함께 찾아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감정 대화 훈련을 그려보았다.
말풍선 카드, 친구 상황 시뮬레이션, 유민이가 만든 감정 친구들까지.
이제는 감정이 커서 힘들어지는 아이에게,
감정을 밖으로 꺼내어 정리할 수 있는 말의 구조를 만들어주려 한다.

이번에는 내가 이 훈련의 방향을 조금 더 명확하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해보고 싶다. 유민이를 위해서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⑤ 감정이 오래 머무는 아이와 함께하는 법


감정이 큰 아이는, 쉽게 잊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상황이 반복되기 쉽다.

하지만, 그 감정을 들여다보고 말로 건넬 수 있다면, 그 반복은 회복의 시작이 된다.


“그 말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 아직도 속상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 곁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감정은 꺼내지 않아도,
그 안에 여전히 살아 있었다.

나는 다시 알게 되었다.
이 아이에게 필요한 건,
그 감정의 속도만큼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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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안내: 이 글에서 다루는 감정 반응과 기질 해석은 유민이라는 한 아이의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아이마다 기질과 감정 반응 양상은 다를 수 있으며, 본 글은 특정 진단이나 처방이 아닌, 감정 관찰과 훈련 과정을 기록한 사례입니다.부모마다, 아이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적용하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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