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감정탐정놀이 1막–‘너 미워’라는 말을 들은 아이

감정훈련연대기:말 없는 엄마들의 시간-‘너 미워’라는 말을 들은 아이에게

by 다정한 연습

- 친구가 나를 밉다고 하면 어떻게 말해?

“엄마, 감정탐정놀이하자!
친구가 나를 밉다고 하면 어떻게 말할까?”
지난번 친구를 따라 잔치국수를 시켜 남긴,
감정도 크고 불안도 크게 작용하는 아이와
어떻게 훈련할지 고민하고 정리했던 감정 대화 시나리오 훈련 놀이.
5화와 6화에서
[감정탐정놀이]의 실제 현장을 한 장면, 펼쳐보고자 한다.


밤 10시, 잠자리에 들기 전 유민이가 말했다.
“엄마, 감정탐정놀이하자.”
감정탐정놀이는 이렇게 시작된다.
아이가 마음에 꺼내고 싶은 장면 상황을 말하고,

그때 어떤 말과 행동을 하면 좋을지 유민이의 생각들을 탐정처럼 꺼내놓고,

엄마와 함께 탐정처럼 찾아가는 대화 놀이이다. 또 다른 이름, 당당하게 말하기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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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가져온 아이의 주제는
친구가 나에게 밉다고 말했을 때


이것은 유민이와 나의 중요한 훈련이었기에
이 훈련을 기록하고 생각하기 위해 휴대폰 녹음 버튼을 눌렀다.

이 질문 하나로 시작된 대화는 무려 38분간 이어졌다.


단순한 말하기 연습이 아니다.
아이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다루고 있는지 보고,
아이 마음에 맞는 감정의 맥을 찾아보고,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룰지 사회적 상황과 관계 속에서 어떻게 표현할지,
무엇보다 아이가 어떻게 이 시간을 경험하고 정리하며 담아서
자기 안에 녹이고 또 상처 난 마음을 감싸 안을지.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
엄마인 내가 방향을 찾고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이자 훈련.


유민이의 첫 번째 응답이 이어졌다.


1. 감정의 덩어리를 말로 펼쳐내다


“난 매일매일 고분고분 맞춰줬는데 왜 날 미워해?
난 네가 날 미워하기 전에,
내가 널 미워해야 하는 거 아니야?”


친구가 “너 미워” 할 때 유민이가 내놓은 첫 번째 말.
유민이는 이 응답이 좋은지 아닌지 엄마가 얘기해 주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 응답이 유민이가 친구에게 실제로 할 수 있는 말인가, 그 상황에 적절한 말인가를 따지기 전에
첫 번째 응답은 다른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유민이는 억울했다.
그 억울함은 화와 질투와 분노와 슬픔이 섞여 있는 정서 덩어리였다.
친구에게 어떻게 말하면 되는가 하는 말 연습이었지만,
실제로 어떻게 말하냐라기보다 유민이는 첫 번째 덩어리 진 자기 마음을 쏟아냈던 것이다.


이 덩어리가 먼저 쏟아진 게 먼저 반갑고 고마웠다.
바로 이 침대 위에서.
이 과정이 없이는 ‘방법’이 나올 수 없다.
이 감정들이 말로 쏟아질 수 있었던 것은
안전하고 기댈 수 있는 환경이어서 가능했기에
지금 아이가 엄마를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없이 고맙고 다행이었다.


엄마에게 내 마음을 이야기하기 힘들었던 나로서는 엄마와의 사이에서도 그러기가 쉽지가 않다는 걸 잘 안다. 엄마가 자기 말을 평가하고 지적하고 잔소리만 하거나 엄마가 자기 심정만 이해받기 원하거나 엄마의 기준에 맞게 아이가 따라오기만을 바랬다면, 자기 맘을 이해해주지 않을 거란 마음이 있었다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첫 번째 응답으로 이어서 말보다 먼저 할 것은
그 상황에서 풀어내지 못한 아이의 진짜 속마음의 정체를 알아보는 것.
유민이가 자기 심정을 말로 풀어내는 이 과정
유민이의 감정 해소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방법을 찾기 위한 마음 정리 과정으로 연결된다.


유민이의 두 번째 응답이 이어졌다.


2. 아이 말에 숨은 관계의 지형


“2번. 내가 니(친구)가 한 말로 삼행시 지어볼게.
너, 너는 내가 잘해주는데. 미, 미우다고 했어. 워, 워워 진정하고
내 얘기 듣지 마. 넌 어차피 내 얘길 들어도 계속 반항만 할 거니까
그냥 이 얘기를 이 채로 끝내는 게 좋아.”


아이 말속에 감춰져 있던 이 마음의 단서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응답에서 드러난 “고분고분”이란 단어와 “어차피 내 얘길 들어도 계속 반항만”이란 말은

평소 이 관계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난 말했는데도 넌 안 들어줬잖아. 나는 내 에피소드도 한번 이끌어 보고 싶었는데...

넌 항상 네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잖아."


이 장면에서 유민이는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서,

자기 서사와 관계 권력의 균형 감각을 스스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아이의 세 번째 응답.


“3번. 네가 그렇다면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우리 사이가 그런 사이라면. 그냥 네가 미워하는 사이로 지내자.
우리 게임 하나 할래. 3년 동안 만나지 않기.
정말 재미있겠지?
엄마, 뭐가 이 중에 제일 좋은 거 같아?”


아이의 마음 깊은 곳에서 비뚤어져 나오는 진심 아닌 말들과
불안하고 소외되고 속상한 감정이 뒤섞여 아이만의 순진한 얄미움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이것은 평소 아이가
불편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어떻게 왜곡되게 표현해서 감추는가를 볼 수 있다.
친구의 마음을 인정하고 해결책을 내놓는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그 위에 얹힌 단어들이 서운함, 소외감, 화남, 체념, 공격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엄마 이제 1번 2번 3번 보기 중에 엄마는 뭘 선택할 거야?”


유민이 탐정이 내놓은 말들 앞에 엄마 탐정이 나설 차례.



3. 엄마는 감정 거울이 되었다


나는 먼저, 선택 대신 다른 대답을 했다.


“유민아, 엄마가 먼저 유민이한테 말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반항이란 단어는 친구 사이에서 안 쓰는 거야. 혼낸다나 반항 같은 말은 엄마와 유민이 같은 사이나 선생님과 학생 사이 같은 관계에서 쓰는 거야. 평등한 친구 사이는 반격이란 말이 좋을 거 같아.”


이건 아이 마음을 고려하지 않고도 직관적으로 바로 할 수 있는 일이다.
말의 사용은 관계 상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가치관 형성에 중요하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으니까 말이다.
반항이란 단어를 아이가 친구 사이에 어떻게 해서 쓰게 되었는가라고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건 그다음.


감정탐정놀이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야 할 것은

쏟아진 아이의 감정 속 아이의 속마음을 어루만지기

관계 속 언어를 구분해 주기

관계와 상황 속에 아이의 진짜 원하는 마음을 찾아주기


엄마 탐정이 나섰다.


1번 2번은 유민이 화난 마음이 느껴지는 말이야. 유민이 심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엄마는 이해할 수 있는데 친구한테 말하는 말로 생각한다면
유민이가 1번 2번 마음이 조금 정리가 된 다음에 얘기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아이의 쏟아진 감정을 바라보게 만든 다음.


정리라는 건 덮거나 없애라는 말이 아니야.
유민이 마음 안에 어떤 마음이 있다는 걸 유민이가 알아주고, 알아보는 거야.
친구는 왜 저 말을 하는 걸까, 나는 어떤 말을 하는 게 좋을까,
내가 원하는 건 뭐고,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길 바라는지

그걸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아이가 오해할 여지를 지우고, 아이가 바로 알아듣기 어려울 수 있었지만
생각할 여지를 남긴 다음.


일단 친구가 너 미워하면 유민이는 당황하겠지? 아마도 유민이는 얼음 되겠지?”


이 말을 하자마자 아이가 즉각 작은 소리로 “응…”

아이 마음속을 비추는 작은 거울.
아이는 실제로 “고분고분”하게 친구에게 “반항”하지 않고 지내왔기 때문에
매우 아픈 말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엄마가 다 알고 있어라고 만져주는 말이기도 하다.


“유민이가 확 맞춰줬다고 하는 거 보니까
유민이가 엄청 애써서 맞춰주고 유민이를 억누르면서 맞춰준 친구인 거 같아.
그러면은 소영이 같은 친구를 말하는 거네?”


아이가 이 관계에서 얼마나 애쓰고,
이 관계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하고 있었는가를 비춰주자,
아이가 마음을 한 발짝 걸어갔다.


“4번 하고 어머니 뾰로롱 생겼습니다~
네가 미워라고 해서 되게 많이 속상했는데,
밉다고 한 건 사과해 주면 좋겠어.
내가 얼마나 애썼는데, 사과해 주면 내 기분이 좋아질 거 같아.
입장 바꿔서 생각해 봐.”


아이의 마음에 한 발짝 길이 하나 생겼다.
말이 정돈되고 감정이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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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이나 분노에 가려진 아이의 진짜 감정이 뾰로롱 드러났다.

친구에게 서운함과 애쓴 자신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
속상한 마음을 친구에게 이해받고 싶은 마음.
사과해 달라는 것은 어쩌면 ‘밉다’는 친구의 표현이 너무했다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달리 말해보면 드러나진 않지만,
‘밉다’라고 말한 친구의 말을 진짜 ‘밉다’로 읽은 게 아니고
다른 감정이었을 거라는 아이의 해석을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밉다고 말한 친구에게 그냥 무조건 사과해 달라고 끝나면 안됐고,
자신이 애쓴 거를 강조한다고 해서
친구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주지 않을 것이었다.


4번 응답은 아이가 좀 더 정확히 자신의 마음을 알아보고
상황에 맞게 드러내게 하기 위한 중요한 트리거였다.
좀 더 선명하게 조준할 필요가 있었고, 구체적인 거울이 필요했다.
아이가 한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는 말은, 아이가 내게 던진 공이었다.
공을 한번 던져 보기로 했다.
관계를 조준해서 비춰볼 시도를 해보기로.
내가 유민이에게 말했다.


“친구는 이렇게 나올 수 있지.
나도 맘먹고 말한 거야. 나도 속상해서 너 기분 나쁠 거 알지만 나도 기분 나빠.”


그러자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 상황에 네 마음을 말해봐.
내가 가만히 들어줄게.”


아이의 마음에 정돈된 길이 생긴 위로 아이의 마음이 드러났다.
가만히…
자기를 밉다고 말한 친구에게 친구의 마음을 들어보겠다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겠다는 마음을 건네는 아이.
나는 한 번 더 던져보기로 했다.



“내 마음은 밉다니까 네가.”
“그러니까 네가 그 상황에서 말하려는 감정이 밉다 빼곤 없어?”

“왜 미운지 물어봐야지 왜 미운지.”


내가 서둘러 한 발짝 더 나가자, 아이가 내 말 앞에 가로서서 말했다.


“일단 유민이 하는 거 들어봐. 왜 미운지를 알기 위해서 그때 밉다를, 밉다 말고
그때 진짜 마음이 밉고 화나다인지 또 다른 감정인지
한번 더 생각해 보기 위해 그때 미움이라는 감정을 정리해 봐. “


아이의 입에서 나온 저 말이 유민이가 뱉은 말이 맞는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서둘러 나가 버린 엄마의 말보다 실상 아이는 더 단단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마음. 아이가 친구의 진짜 마음에 대해 궁금해했다.
처음엔 자기의 억울하고 서운하고 화난 마음만 앞서던 아이가
잠깐 자기 마음을 비춰주고 만져줬다고 금세 한 발짝 나아갔다.
일단 아이의 이 걸음에 대해 북돋아줘야 더 딛고 걸어갈 것 같았다.


“와 유민아 유민이 많이 성장했네. 진짜 감정을 말해보라니. 놀랍다.
그럼 이럴 때 이렇게 말해볼래?
미운 건 알겠어, 근데 진짜 미운 이유, 진짜 마음이 있을 거 아냐라고.”


그러자 아이가 다시 움찔했다. 내가 너무 멀리 던졌던 것.


“난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건 못 외워…”


내가 또 너무 아이의 마음에 들어가려 한 게 툭, 걸렸다.
아이는 자신의 속도로 가기 위해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아이의 속도에 맞춰 아이가 걸어가려는 길에 유민이의 친구가 되어 걸음을 맞췄다.
나는 말했다.


“서운했어. 또 화났어.”


내가 친구의 마음을 대신 말해보자, 아이가 곰곰이 자기의 영역을 넓혔다.

“서운하고, 화나다. 이거는 밉다는 게 아니라 짜증 났다는 거야?”


“그래. 짜증 났지. 네가 그렇게 해서 짜증 났지. 그래서 미워진 거지.”

내가 친구의 마음을 좀 더 조준해서 선명하게 비춰주자
아이가 반짝이며 자기 마음을 선명히 정리하고 말했다.


“네가 그랬다면 미안해.
하지만 내가 너를 일부러 화나게 하려고 그런 건 아니야”


아이의 이 말은 이 대화의 흐름에서 정말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아이가 친구도 보고 자신도 보는 중요한 장면.


4. 감정탐정놀이의 구조


지금까지 유민이와 나눈 대화를 구조적으로 정리해 보면 이렇다.


[감정 표출] 억울함, 분노, 서운함, 원망 1차적인 감정이 쏟아짐.

[감정 해체] 표면의 감정에 엉킨 진짜 감정 찾기. 감정 명명과 분리.

[관계 재구성] 타인의 입장을 상상하며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


이제, 좀 더 단계적으로 나아가며

상대방도 보고 자신도 보며 관계 감각을 살리고,

자칫 빠질 수 있는 허점을 발견해 바로잡고,

회복의 언어로 가는 과정으로 가야 할 때.

과연 그 과정이 제대로 이어질지.


이 과정이 쉬웠다면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6화에서 전개될 감정탐정놀이를 지켜봐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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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전문가의 진단이나 처방이 아닌,
한 아이의 감정 여정을 관찰하고 실천하며 정리한 기록입니다.

저는 심리상담가나 임상심리전문가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 감정, 이야기 구조를 다루는 일을 해왔고,
아이의 마음을 관찰하고 훈련하며 살아온 시간을 기록하고 공부해 온
엄마이자 탐구하는 사람입니다.

동일한 고민을 가진 분들과 이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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