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부럽부럽 보랍웡과 땡뽁이: 감정은 인형이 되어.

<<감정 훈련 연대기: 말 없는 엄마들의 시간>>

by 다정한 연습

귀여운 얼굴이 그려진 양말들, 조그만 종이 쪽지들, 그리고 내가 준비한 훈련 롤플레잉 워크지.

차례로 펼쳐두고 유민이를 불렀다. 아이 앞에 앉아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늘은 이 친구들에게, 그날 유민이 마음에 있었던 기분을 말해주려 해.
그 친구들한테 이름도 지어주고.”

전날 내 말에 입을 꾹 다물었던 아이였다. 생각만 해도 불편한 감정이 커다랗게 아이를 삼키는 걸 보았다.

하지만 다시 조심히,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이가 준비가 되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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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엄마도 힘들었어. 그래서 엄마도 연습이 필요하겠단 생각을 했어.”

유민이는 말없이 워크지 앞에 앉았다.
감정 단어들이 적힌 표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름은… ‘부럽부럽 보랍웡’.”

나는 웃지 않고 되물었다.

“그 보랍웡은 무슨 말을 하고 있었을까?”

“쟤 춤 너무 잘 추잖아. 질투 나잖아. 나도 잘 추고 싶은데… 부러워.”

그렇게 등장한 감정 친구들.

질투이, 삐쭉이, 보랍웡, 방봉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온 눙뭉이.


그림6.jpg 질투이, 삐쭉이, 보랍웡, 방봉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온 눙뭉이.

와르륵 쏟아지는 유민이의 감정 이름들.

감각의 결이 섬세한 유민이에게, 일상은 곧 자극의 연속이다.

세세하게 파고드는 불안, 강하게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그 민감함을 곱게 보지 않는다.

이 훈련은, 아이가 ‘나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숨구멍’이었다.

그래서 절실했다.

놀이터의 사건은 단지 하나의 계기였을 뿐, 우리 둘에겐 오래된 숨참음이 있었다.


숨구멍이 열리자 와르륵 쏟아지는 아이의 다양한 감정 친구들은 순식간에

다양한 이름과 그림과 말들로 펼쳐졌다.

“울고 싶어. 소영이가 너무 부럽고, 나도 칭찬받고 싶은데…

아무도 나만큼은 안 보는 것 같았어.

터널에 들어갈 거야. 혼자 있고 싶었어.”

그러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엄마가 오지 않았다면, 금방 나왔을 수도 있어.”


그 말은 나를 멈추게 했다.

그날 터널 앞에 서 있던 나는 조급했고, 마음속에선 이미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왜 분위기도 안 보고 터널 속으로 가버린 거야?'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꾹 삼켰다.

대신 말했다.

“엄마가 그 생각을 못했네.”

그 순간 인내는, 내 안의 어린 엄마를 잠시 쉬게 해주었다.


아이는 그것을 알아채고, 다시 말을 꺼낸 것이다.


인형은 감정의 얼굴이 되었고, 그 얼굴이 아이의 마음을 대신해 말했다.

유민이는 인형들을 하나씩 자기 앞에 세우고, 그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감정이 친구가 되는 순간, 아이는 자기 마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유민이가 이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있어?”

내가 묻자, 아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속쌍이에게 말했다.

“괜찮아. 춤은 배우면 돼.”

눙뭉이에게는 속삭였다.

“혼자 있고 싶은 건 그럴 수도 있어.
사람들이 소영이만 좋아하는 것 같아도,
어딘가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
숨지 않아도 괜찮아.
네 진짜 마음을 알면 사람들이 알아봐줄지도 몰라.”

그리고 말했다.

“이런 말 해주는 친구는 ‘긍정이’야.”

나는 조용히 옆에 앉아, 그 모든 대화를 들었다.
그 말들은 마치, 자기 마음을 품에 안아주는 주문 같았다.

나는 그날, 아이 안의 감정의 말이 얼마나 잘 살아 있는지를 실감했다.

유민이가 말했다.

“엄마, 나 기쁜 감정도 하고 싶어.”

색연필을 꺼내 감정 친구 캐릭터들을 그리기 시작한 아이.
“행복만땅 땡뽁이”와 “시원시원한 시원이”가 새로 등장했다.

눈이 반짝이고, 입꼬리가 올라간 그 인형은 보랍웡이나 눙뭉이와는 완전히 달랐다.

유민이는 스스로 기쁨 카드를 고르고, 말풍선을 채워 내게 보여주었다.

“땡뽁이는 너무너무 지금 행복하대.
시원이는 속이 뻥 뚫리게 해줬어.”

나는 유민이의 얼굴이 조금 시원해진 듯 느껴졌다.


그날 나는, 감정의 이름은 가르쳐서 생기는 게 아니라
이미 아이 안에서 숨 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감정에게 말을 걸고,
그 감정의 이름을 부르며,
기쁨을 자기가 선택하는 아이.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마음이 저릿했다.

"필요할 때 곁에 있어줄까, 아니면 기다려줄까?"
내가 그렇게 물었고, 유민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민이가 딛고 있는 마음의 지지대가 느껴졌다.

그건 훈련이라기보다,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아이만의 방식이었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미 아이 안에는, 자기 감정을 정화하고 회복하려는 자기만의 작은 시스템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 사실 앞에서
내 안의 불안과 조바심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유민이 마음 친구들, 다 소중하구나. 오늘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

유민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을 표현하는 건, 무너지지 않기 위한 회복의 기술이다.

유민이는 그 기술을 익혀가고 있었다.

말없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내 안의 불안이, 그 조용한 확신 앞에서 가라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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