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터널 속에서, 나를 기다려줄 수 있나요
놀이터였다.
햇살은 따뜻했지만, 아이는 터널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말을 던졌고, 아이는 더 깊이 숨었다.
그리고, 들려온 말.
“혼자 있고 싶을 땐… 기다려줬으면 좋겠어.”
그 한마디는
내가 놓치고 있던 — 아이가 쥐고 있던 감정의 주도권이었다.
그날, 감정 훈련은
‘기다림’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놀이터였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아이 친구 소영이는 화려한 춤사위를 펼쳤고,
그 모습을 뽐내듯 바라보는 소영이 엄마가 있었다.
그 순간, 유민이는 작은 돌멩이처럼 말을 툭 던졌다.
“나는 재능이 없어… 지구가 없어지면 좋겠어.”
나는 유민이의 재능 몇 가지를 꺼내보며 위로했지만,
아이의 시선은 이미 굳어 있었다.
곧장 몸을 돌려 터널 놀이기구 안으로 사라졌다.
조그만 원형 터널,
아이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보였다.
안은 어둡고 조용했다.
나는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유민아, 엄마 여기 있어. 우리 이야기하자.”
대답은 없었다.
터널은 감정의 공간이었다.
그 자체로, 아이의 벽이었다.
한 걸음 다가서다 멈췄다.
마음을 쏟아낸 후 아이가 숨고 싶어질 때,
나는 늘 그 옆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몰랐다.
그리고, 또 말을 꺼내고 있었다.
“엄마는 네 마음이 궁금해. 그냥 말해줄래?”
아이의 등이 더 깊숙이 말려들었다.
말이 닿지 않는 순간이었다.
나는 다시 터널에 다가갔다.
그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라 믿었다.
그러나 아이의 조급한 숨이 먼저 느껴졌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내가 자꾸 나가야 할 거 같고, 돌아가야 할 거 같고… 안 좋아.”
그 말이 내 심장을 두드렸다.
그 말 바로 다음, 아이는 덧붙였다.
“혼자 있고 싶을 땐… 엄마가 기다려줬으면 좋겠어.”
나는 말이 막혔다.
그 단순한 문장에 담긴 감정의 무게.
유민이는 스스로 감정을 인식했고,
그걸 말로 표현했고, 그 관계 안에서 경계를 그었다.
감동, 놀람, 그리고 부끄러움.
나는 그동안 얼마나 아이를 말로 조급하게 다그쳐왔던 걸까.
감정을 설명하려 했고,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말을 던졌다.
하지만 아이는, 자기 속도와 방식으로
감정을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터널 안에서, 스스로를 정리할 시간을 원했던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 기다릴게. 유민이가 괜찮아질 때까지.”
그날, 감정 훈련은 다시 시작됐다.
말을 덜어내는 훈련.
공간을 비워두는 훈련.
기다려주는 법을 배우는 훈련.
그리고 나는 그날을 잊지 않는다.
아이의 말.
“엄마, 나 괜찮아. 이제 나가도 돼.”
그 말은,
내가 아이에게 비로소 배운 진짜 감정의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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