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벤스틸러를 좋아한 지 오래됐다. 남들이 보기에 그리 잘 생기지도 엄청나게 매력적이라고 볼 수는 없어도 내 눈에는 위트 있고 다정하고 매력적인 배우로 보였다. 이번 영화에서 감독이자 주인공으로 나온 등장하는 바람에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두 번째 본 영화인데 첫 느낌이 사뭇 다르게 감정적 여운이 남았다고 할까. 지난번에는 월터에게 딱히 이입할 수 없이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는데, 이번에는 몰입이 아주 확실하게 됐다. 월터의 생각, 월터가 느꼈을 감정이 벤 스틸러의 눈빛을 통해 또렷이 전달됐으니까.
잡지사 ‘라이프’지에서 16년째 근무 중인 주인공 월터미티. 잡지사가 폐간될 위기에 처하면서 존재감이 가장 미미했던 사진 현상 담당자인 그는, 사실은 잡지의 표지 사진을 맡고 있을 만큼 조용하게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월터도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 있는 한 명의 회사원에 지나지 않지만 심각할 정도로 공상에 빠지는 일이 계속된다. 그러다 진짜 마지막 호의 표지 사진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어떻게든 그 사진을 구해오려고 모험을 결심한다. 회사 차원에서도, 그의 자리에 대해서도 중요한 순간이었으니까.
벤스틸러는 감독으로서 정말 뽕 뽑는 재주가 있다. 정적인 캐릭터인 월터에게서 액션, 스릴러, 멜로까지 여러 종류의 장르가 튀어나오게 하는데 이 복합적인 장르를 소화할 줄 아는 사람이 있었을까? 감독님 성에 찰 만한 배우는 아마도 배우 자신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월터의 이상한 선택들이 부러웠음에도 돈이 없는데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앞서서 이것저것 장소를 이동해 갈 때마다 조바심이 났다. 평소에 멍 때리고 상상하길 좋아하던 사람이 현실 앞에서 이렇게 무모해도 되나? 과감해도 되나? 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를 응원하기보다는 아, 돌아오면 속이 쓰리겠다. 저 돈 누가 수습하지? 하면서 현실적인 걱정에 빠져있던 것이다. 나도 참 이럴 때 겁이 많은 것 같다.
월터가 16년 간 몸담은 잡지사는 비록 마지막 커버를 장식하면서 원래 있던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지만, 회사에 정말 중요한 사람이었음을, 회사에 특별한 기여를 하는 사람이 틀림없음을 보여줬을 때 카타르시스가 일어났다. 회사에서 한 사람이 나올 때는 누가 그 자리를 대체하든 상관없고 빠르게 잊히겠지만, 그 사람의 흔적은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사람의 기여는 100% 사실이니까 없어진 일이 될 수 없다.
영화는 줄곧 월터의 이상한 선택이 인생의 결정적 선택이 되었음을 예고하고 미래의 모습을 그려나갔지만, 두 번 본 영화다 보니까 이 영화를 전과 다른 시선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월터의 과거에 대해서다. 그가 묵묵히 쌓아온 신뢰감, 까다로운 사진작가와 단 한 번 마찰 없이 빚어낸 협업이 매번 문제없이 커버로 나올 수 있었던 점. 그리고 그의 역할이 확실했기 때문에 극명하게 대조됐던 마지막 라이프 잡지의 표지까지도. 그리고 철없는 여동생의 취미생활과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구김살 없는 어머니의 일상들이 월터의 책임감으로 인해 유지되고 있었다는 사실말이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든 모두를 지탱하는 것은 그의 착실함이었다.
이 영화는 유쾌하게 끝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은퇴를 앞둔 분들에게 정말 필요한 영화라고 봤다. 그분들의 시선에서는 뭔가 또 다르게 읽히지 않았을까.
또 한 번 이 영화에 대해 놀란 점은 1939년도 더 뉴요커지에 실린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두 번째 리메이크작이라는 것이다. 구할 수만 있다면 단편 소설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39년도에 만들어진 공상과학 영화 아니겠냐고. 정말 멋져. 월터, 그리고 벤스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