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폴>
얼마 전 2024년 감독판으로 개봉을 했던데 나는 20대 때부터 이 영화를 소장하고 있었다. 알듯 말 듯 하지만 알 수 없는 줄거리, 하지만 너무 예술적인 영상미가 매혹적이라서 버리기에 아까운 영화였다. 안 버리길 잘했지, 감성 충전하고 싶던 평일 저녁, 영화를 다시 한번 꺼냈다.
#총평: 포스터가 잘못했네
이 영화의 영상미와 줄거리의 독창성은 손에 꼽힐 정도로 베스트인 점. 그런데 국내 영화 포스터를 보면 전혀 매력적이지가 않다. 무난하고 특징 없는 비주얼에 이게 맞나? 매력 한가득인 이 영화를 이렇게 밖에 담지 않았던(못했던) 영화계 담당자가 원망스러웠다.
#리페이스 때문에 기억하는 영화
이 영화 처음 봤을 때는 남자 주인공의 얼굴보다는 이 사람이 처한 환경이나 아이의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에 푹 빠져서 봤다. 두 번째 볼 때는 제법, 리페이스의 어릴 적 풋풋함이 잘 드러나는 마스크가 단연 눈에 띄었다. 리페이스는 호아킨과 약간 닮으면서도 약간 청순함과 약간의 날티와 약간의 순박함이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손석구 같다. (내가 좋아함) 애플 OTT에서 시즌2까지 나온 파운데이션이란 SF 대작의 왕 역할이 리페이스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몸 좋은 건 매 한 가지. 몸이 전부가 아니다. 얼굴도 좋다.
#두 번 보고 비로소 이해가 되는 줄거리
말도 안 되는 고퀄리티의 영상미와 영화 촬영지가 모두 한 폭의 예술 작품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19년에 걸쳐 CG 없이 제작한 영화이고, 아이였던 ‘알렉산드리아’가 크기 전에 빨리 찍어야 한다는 말까지 했을 정도로 느리게, 그렇지만 너무나 완벽하게 영화가 완성되고 말았다. 이런 고퀄리티의 영화가 시간의 서랍에 묻혀서 져버리고 말았다면 너무 속상할 텐데 지금이라도 <디렉터스컷 : 더폴>이 부활해 줘서 고마울 뿐이다.
알렉산드리아와 로이가 대화를 통해 전개되는 ‘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영화 줄거리라니. 나는 그다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두 번 보고 나서야 바삭하게 이해가 됐다. 또 로이가 알렉산드리아를 위해 꾸며낸 이야기에 나중에는 ‘그녀의 아버지를 닮은 남자 주인공’이 로이의 얼굴이 되고, 또 영화 후반부 들어서는 알렉산드리아가 직접 영화에 나와서 주인공을 살려내기 이른다. 이야기에 개입되는 신호는 영화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내 이야기이기도 해요” ㅡ 알렉산드리아
그것보다 더 먼저 충격적이었던 복선은 이 대사였다. 영화적 기법에 익숙한 로이에게 알렉산드리아가 불현듯 나타나 그의 침대에 스며드는 데에는 영화적 ‘구원’이라는 연출이라고 느꼈을 법하다. 너무 어린 알렉산드리아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른다. 관객인 나도 몰랐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니, 이 대사가 너무나 훅 들어오는 전체 줄거리를 꿰뚫는 명대사였던 것이다.
“내 영혼을 구원해 주게?” ㅡ 로이
이 둘은 이야기 하나로 소통하고, 이야기 하나로 친해지고, 이야기 하나로 구원하게 된다. 영상미는 아이를 위해 영화 전문가가 최선을 다해 구현해 낸 고퀄리티임은 분명하고, 알렉산드리아의 무척 자연스러운 대화는 대사가 아예 없었다고 한다.
또 리페이스 역시, 진짜 다리를 다친 사람이라고 알았던 것처럼 모든 장면이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운 영화이기도 했다. 그 와중에 예쁜 간호사 언니는 얄미워서 더는 쓰고 싶지 않다. 권위적인 제스처로 서있는 의사 장면이 영화 초반에 몇 번 나오는데 이게 또 간호사 언니와의 러브라인이라는 상징성을 더해준다. 아이의 시각에서 최선을 다한 영화적 묘사였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