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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Jul 18. 2018

2018 서울 퀴어퍼레이드

제19회 서울 퀴어퍼레이드 선두에는 레인보우 라이더즈 바이크 팀이 섰다.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찾은 시민들이 서울광장을 가득 채운 가운데 대형 무지개 깃발이 펼쳐지고 있다. ©유동이


 제19회 서울 퀴어퍼레이드 선두에는 ‘레인보우 라이더즈’가 서게 됩니다. 레인보우 라이더즈는 바이크를 타는 페미니스트 모임으로, 퍼레이드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마음으로 함께 합니다.

 서울 퀴어퍼레이드 측의 공지를 보고 가슴이 설렜다. '아니! 넷플릭스 센스8에서나 보던 바이크 행진을 한다고?' 이번 퀴퍼에서 다른 건 몰라도 바이크팀의 행진은 꼭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침 내가 일을 돕던 부스 옆의 사각지대(?) 공간이 바이크 팀이 짐을 놓고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어서 그들의 헬멧이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모습을 낮부터 볼 수 있었다. 쉬는 공간엔 전신 보호구를 착용한 라이더 분도 계셨다. 나는 평소에 바이크를 타지 않다 보니 그 모습이 신기하고 멋있어 보여 사진 촬영을 요청했는데 흔쾌히 받아들여주셨다. 나중엔 내가 부스에서 팔고 있던 책도 한 권 사가셔서 특별히 고마웠다.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찾은 시민들이 서울광장을 가득 채운 가운데 대형 무지개 깃발이 펼쳐지고 있다. ©유동이

퍼레이드를 시작하기 직전 대형 깃발이 펼쳐졌다. 이번 퀴어문화축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깃발 혹은 무지개 카펫인 것 같은데 위에서 내려다보니 더 아름다웠다.


퀴어퍼레이드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차량들. ©유동이

그런데 대형 무지개 깃발이 펼쳐진 뒤에도 차량도 사람들도 출발할 기미가 없었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바이크 무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바이크들은 차량들이 나아가는 방향인 을지로입구 쪽에서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혐오 세력들이 아스팔트에 드러누워서 바이크 행진을 방해했다고 한다. 그들은 경찰들에 의해 수 분만에 끌려나갔고, 난 그들이 퍼레이드를 지연시켜준 덕분에 부리나케 달려가 바이크들의 앞까지 갈 수 있었다.

레인보우 라이더즈. ©유동이

다들 바이크 뒤에 무지개 깃발도 하나씩 꽂고, 바이크와 라이더가 마치 한 몸인 것처럼 각자 개성에 맞게 한껏 꾸민 모습이었다. 이들은 레인보우 라이더즈의 선두 그룹이고 뒤엔 50여 대의 바이크가 더 있었다.

'남자분이 바이크 타세요?' ©유동이

그중 눈길을 끌었던 스티커. '남자분이 바이크 타세요?' 실제론 분야를 막론하고 여자들이 많이 듣는 질문인데 얼마나 많이 들었으면 이런 스티커까지 만들게 되었을까. 퀴어문화축제가 세상에서 이런 말을 몰아내는 데에 보탬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레인보우 라이더즈. ©유동이
레인보우 라이더즈 ©유동이

행진 출발을 준비하는 레인보우 라이더즈. 누군가 한 명이 바이크에 시동을 걸자 하나둘 따라서 시동을 걸기 시작했고 바이크 시동음 때문에 온몸이 다 울렸다. 바이크 소리가 이렇게 크고 듣기 좋은 소리구나, 이 맛에 바이크를 타는구나 하는 마음을 옆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바이크 행진 출발 준비 신호를 보내는 라이더들. ©유동이

바이크 행진 출발 준비 신호를 보내는 라이더들.

©유동이
©유동이
©유동이

부릉부릉

©유동이

선두의 바이크들이 먼저 출발하고 뒤의 바이크들도 차례차례 달리기 시작했다.

©유동이

뒷 좌석 분의 다리에 쓰인 차별금지법 제정!

©유동이

레인보우 라이더즈 덕분에 오랜만에 패닝샷을 찍어보았는데 깃발들이 휘날리니 패닝이 더 멋지게 나온 것 같다. 

©유동이
레인보우 라이더즈의 뒤를 이어 첫 번째 트럭이 행진하고 있다. ©유동이

바이크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곧 무지개 물결이 밀려들었다. 3년 만에 푸른 하늘을 보며 행진할 수 있어 행복했다. 쨍한 햇빛에 무지개색이 비쳐 아스팔트까지 연한 무지개로 물들였다.

무지개가 수놓은 서울 시내. ©유동이
2018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퀴어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유동이

차량을 따라서 사람들도 신나게 걷고 있다. 이번 퀴퍼 행진 코스는 총 4km였다고 한다. 나는 퍼레이드 앞부분만 찍고 부스를 지키러 다시 서울광장으로 돌아왔는데 바이크 행렬이 출발한 지 1시간 30분이 지나도록 행렬 선두가 들어오지 않았다. 광장에 남아서 부스를 지키던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떨었다. '우리도 행진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더위 먹고 쓰러질 수도 있다.' 행진을 끝까지 완주하고 돌아오신 분들은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물론 힘들어서도 있겠지만 1년에 단 하루, 퀴어 티를 한껏 내면서 도심을 활보할 수 있는 날이 퀴어퍼레이드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1년 중 하루가 아니라 1년 중 365일 모두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오늘도 퀴어 만세!

레인보우 라이더즈. ©유동이

레인보우 라이더즈의 공식 트위터 계정 2018서울퀴퍼바리(@ride_w_pride)를 인용하며 2018 서울 퀴어퍼레이드 글을 마친다.


레인보우 라이더스는 2018 제19회 서울 퀴어문화축제 행진 참가를 위해 모인 바이크를 타는 퀴어, 그리고 퀴어 인권을 지지하는 친구들이다. 퀴어축제를 위해 한시적으로 모인 모터바이크 라이더들이다. 라이더들이 모여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하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서울 퀴어문화축제에 모이는 성소수자와 페미니스트가 이성애 중심주의, 남성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 모두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것처럼 레인보우 라이더스도 사륜차 중심의 교통 문화, 남성 중심적인 모터바이크 문화에서 벗어나 누구나 자유롭게 바이크를 타기를 원한다.
서울 퀴어문화축제에 모이는 레인보우 라이더스는 바이크의 종류, 라이더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 나이에 따라 구분 짓거나, 차별하지 않는 ‘무지갯빛’ 바이크 라이더들이다.
성소수자와 모터바이크 라이더들은 ‘생존자’다.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위협은 도로 위에서 모터바이크 라이더들이 겪는 그것과 닮아있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길 위에서 성소수자와 모터바이크 라이더들이 인간답게 대우받고 보다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길 희망한다.
퀴어와 그 친구들은 서울 퀴어퍼레이드 행진의 첫머리에 서게 된다. 레인보우 라이더스는 퀴어 당사자이고, 퀴어 인권 지지자로서 행진의 선두에서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즐겁게 달릴 것이다. 퀴어를 향한 세상의 모든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와 함께 경적과 배기음을 크게 울릴 것이다.
그 소리가 어떤 때보다 멀리 퍼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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