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묶여 있을까?

by 하르엔

속박


몇 달 전 일이 생각난다. 시간이 많이 흘러도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기에 기억의 조각이 파쇄기에 갈린 종이처럼 썰리기 전 붙잡아 두고 싶었다.


구름이 솜사탕 같이 몽실몽실 한 날이었다. 카페에서 아는 지인과 함께 휴일의 여유를 카페에서 주문했다. 바닐라 라테의 달달함을 마시고, 도란도란 사는 얘기를 하는 그때 카페 유리창 너머 바로 앞 횡단보도가 보였다. 지인은 강아지 목줄을 잡고 산책 중인 남자의 모습을 보고 말을 꺼냈다


- 앞에 강아지 불쌍하다.


불쌍하다는 지인과 달리 나는 주인과 산책으로 교감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흐뭇한 미소를 날렸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일까? 궁금한 나머지 두 눈을 깜빡이며 왼손으로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물었다.


- 뭐가 불쌍해?


뜨거운 커피를 호로록 마시며 창밖을 보던 지인의 시선이 나를 향하며 아메리카노를 마셔서 그런지 그 순간만큼 말이 썼다.


- 아~묶여 사는 게 말이야. 항상 끌려다니 잖아.


무엇이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젤리처럼 생긴 콧구멍을 킁킁거리는 모습에 아빠미소를 보이는 주인. 그 모습을 본 나는 행복한 교감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지인은 그 반대였다.


우리 둘이 받아들인 시선과 생각은 달랐다. 마치 농구 경기장에서 마주 보고 서로 다른 골대를 목표로 하고 있는 팀처럼 이다. 가만 듣고 있자니 모든 반려견을 불쌍하다고 생각할 듯하고 일반화를 시켜버린 듯 자신만의 시선으로 틀을 만들어 가둔 듯했다.


원래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라는 말이 여기서 쓰이는 걸까? 가뜩이나 회사일로 골치 아픈 일을 처리하며 주말까지는 일하기 싫어 평일날 휘몰아쳐 일을 끝낸 지인이다. 주말만큼은 만끽하고 싶었지만 강아지를 잡고 있는 목줄 위로 강아지의 주인을 봐서 그런 것일까?


어쩌면 자기 마음속 깊은 곳 부정하고 있는 모습을 강아지를 통해 투영된 말이 아닐까? 테이블 위에 올려 둔 그의 핸드폰이 울린다. 나는 창밖을 보며 그 강아지를 보고 있는데 지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마나 크게 일어났는지 학교 다닐 때 수업시간에 졸다가 선생님께서 이름 부르면 화들짝 놀랐을 때 같았다. 소리를 빠르게 차단하며 '잠깐 나갔다 온다고 하며 문밖으로 향한다.


- 예. 팀장님 전화받았습니다. 하며 나가는 지인은 자동적으로 몸과 고개가 45도 기울이며 시선은 자동으로 아래를 향했다. 길어질 걸 예상했는지 그의 얼굴은 종이 구겨지듯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찡그린 표정과 좁혀지는 미간의 신호가 어떤 상황인지 알려줬다.


신호 대기 중이던 강아지와 반려견의 주인. 그리고 밖에 나가 5미터 뒤에 서있던 지인. 그는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는지 주머니에서 꺼낸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모습을 보니 지인이 강아지를 향해 말한 모습이 그와 다르지 않았다.


묶인 강아지는 목줄이 자신을 조여오지 않는다. 서로 깊은 유대관계가 있기에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묶여있는 줄보단 안전줄 같아 보였다. 확실히 행복함 속에 산책하는 강아지와 주인의 모습으로 주말의 여유 있는 일상을 보여준다.


반면 신호 대기 중이던 강아지 뒤. 팀장의 전화를 받고 뛰쳐나간 지인은 점점 애처로웠다. 카페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웃으며 들어왔지만 지금 표정은 패잔병이나 마찬가지였다. 전화를 다 마쳤는지 바지 주머니에 폰을 넣고, 회사를 잘린 사람 마냥 해탈한 듯한 표정으로 입에는 다시 담배 하나를 다시 물었고, 불을 붙였다.



속박의 진원


창문 하나를 놓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 보고 묶여있다고 한 지인은 자신의 모습이 보일까? 물리적으로 묶인 것만이 묶였다고 할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힘이 오히려 눈앞에 없기에 가늠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가늠이 된다고 가정해도 묶인 자신을 풀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회사의 위계질서와 먹고살아야 하는 생존이 박수소리를 내며 부딪친다.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강하게 조여 온다. 주머니에 손을 다시 넣더니 다시 꺼내 든 담배 한 개비. 무슨 일일까?


이미 묶인 지인을 보니 안타까웠다. 모든 게 잘 풀렸으면 좋겠지만 회사가 돌아가기 위해 굴리는 일은 사람이 한다. 아마 전화를 한 사람은 회사 사람일 확률이 높을 거다. 그리고 그 상사는 지인에게 안 좋은 말을 했을 확률도 크다. 카페 앞 흡연장은 누가 봐도 법원은 아니지만 법원에 있는 흡연장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결국 사람에게도 묶여있는 지인이었다.


회사와 그 회사를 굴리는 직장상사에게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줄에 이끌려 다녀야 한다. 그러면서 또 한 번 꺼내 든 담배 한 개비 빨아들임과 동시에 흰 연기를 내뿜어 하늘로 뱉어낸다. 자신의 건강을 담보로 담배에 자신을 속박하고 있었다.


모든 걸 담배 한 모금에 털고 들어오는 지인. 지인과 등을 지고 있는 강아지와 주인은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으로 들어갔다. 커피잔이 식었는지 뜨겁게 올라오던 김이 사라졌다. 지인의 속박은 그렇게 느슨해졌다.



누가 묶여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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