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100바퀴

나는 존재한다.

by 하르엔



깨달음


드디어 올해 세운 목표를 이뤘다. 목표는 수영 25m 100바퀴 완주, 거리로 2.5km, 1시간 이내, 마지막 조건은 한 번도 쉬지 않기. 주변 분들은 이런 무모한 걸 하는지 궁금해했다. 개인적인 목표였고, 힘들어도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마친 것에 감사한다.


작년 이맘때 직장동료가 수영을 가르쳐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 게 시작이 됐다. 사실 가르치는 일이 쉽지 않고, 귀찮아서 하기 싫었지만 직장동료의 열정에 내 고집이 꺾였고,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에 마음을 열었다.


장차 6개월이 걸릴 것 같았던 수영. 결국 목표에 도달했고, 짧다면 짧겠지만 과정은 길었던 시간이다. 직장동료는 혼자 수영할 수 있게 된 보답으로 작은 선물을 주고 싶어 했다. 사실 받지 않아도 누군가를 제대로 가르쳤다는 경험과 수영의 장점들을 다시 알게 된 만족감에 이미 다 받은 기분이었다. 마치 생일날 선물 받은 아이처럼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무언가를 일깨웠다.



준비


초반에 집중해서 가르치는 데 온전히 시간을 쓰고 자투리 시간에 나의 수영을 한다. 물속 시간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란 걸 깨달았다. 노자의 상선약수가 생각나며 물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하나쯤은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사회에서 벗어나 수영복을 제외한 모든 옷을 탈의한다. 사회적 신분, 지위, 영향력 등 잠시 내려두며 마음을 비운다.


비우는 과정에 두려움은 언제 업혔던 것일까? 우리의 모든 것이자 분신인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으려 하지만 두려움이 앞선다. 이것을 내려놔도 괜찮은 걸까? 급한 전화, 업무전화면 어떡하지? 물속에 들어가기 전부터 걱정의 생각 속에 잠겼다.


모든 걸 내려놓는다. 이곳에선 모두가 같다. 나이가 적고, 많고, 키가 작고, 크고, 뚱뚱하거나 마르거나 이곳에서는 다 같이 수영을 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색은 다르지만 수영복이라는 용품. 즉 하나의 목표만을 들고 샤워실로 향해 깨끗이 몸을 씻는다. 그동안 짊어온 책임감, 노력, 불안함, 긴장, 업무연락, 건강 염려, 돈,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같이 씻어낸다.


씻는 동안 물줄기가 눈을 타고 내려와 자세히 볼 수 없던 얼굴을 본다. 많이 상했고, 근심과 걱정이 눈 밑으로 번진 다크서클이 역동적이고 무거운 삶에 무게를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처진 뱃살은 언제 이렇게 생긴 건지 거울 속의 존재를 바라볼 뿐이다.



입수


오후의 시작을 알리는 핸드폰의 숫자는 정확히 13시를 보여줬다. 확실한 시간 속에 고요한 수영장. 아무도 들어가지 않고 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다. 시간은 흘러도 수영장은 멈춰있듯 조용하다. 물 밖에서 준비운동을 마치며 몸에서 먼 부위터 물을 묻혀 입수한다. 멀리 보이는 레인 끝은 언제나 멀기도 하며 가까워 보인다. 코로 숨을 끝까지 들이마시며 허파에 욱여넣는다. 시작을 알려주는 신호다. 물안경을 쓰고 수영장 벽면을 차며 물살을 가른다.


차가운 듯 따듯한 물은 수영하는 동안 나를 존재하게 한다. 발을 더 찰 것인가? 천천히 팔을 돌릴 것인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한 번 참을까? 턴을 조금 천천히 할까? 끝은 언제 나오지? 난 이 힘든걸 왜 하고 있지? 무엇 때문에 하는 걸까?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올해 초부터 세운 목표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한 달 넘게 90바퀴에서 항상 정체되어 있었다.


나머지 10바퀴를 채우기 위해 헬스장까지 가서 운동하고, 식단을 조절하며 수면시간과 휴식시간까지 맞춘다. 항상 느끼는 건 자신의 상태를 모르면 무리하지 않는 게 좋다. 절대 무리하게 끝낸다는 생각으로 하지 않는다. 내일이 없을 수 있기에 힘을 너무 주지 않아야 한다. 오늘 할 수 있는 목표를 세워 소화시켜야 한다.


30바퀴쯤 돌았을까? 준비운동으로도 부족했던 근육의 적응을 끝냈다.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지고 자유형으로 당기는 삼두근의 통증은 무뎌졌다. 호흡이 터져 폐 속으로 깊게 들어가는 숨이 느껴진다. 살아있구나!


50바퀴쯤 지났을까? 처음에 마음먹었던 초심과 몇 바퀴인지 잊어버렸다. 어깨도 조금씩 저려온다. 턴을 하며 기록을 재고 있던 워치를 슬쩍 살핀다.


70바퀴가 지나니 계속되는 팔 돌리기로 상체 근육들이 커져 삼두와 광배근이 쓸려 따갑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도는 건 상관이 없다. 그저 언제 끝날까 나는 왜 미련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고통과 수반되는 생각만을 물에 흘릴 뿐이다.


80바퀴를 돌파했을 때 주변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내가 수영하며 내는 물소리만 들릴뿐이다. 팔을 점점 무거워져서 금방이라도 포기하고 싶었다. 항상 힘들었던 구간에서 뇌는 신호를 강력히 보낸다. '그만해 이러다 큰일 나!' 하지만 직감은 반대로 말한다. '아직 더 할 수 있다.'


90바퀴째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팔이 돌아가는지 조차 잊어버리고 반복된 동작으로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할만하다는 생각의 시작은 고통을 수반하는 사실조차 없어진다. 주변 시간이 멈춘 듯 첨벙거리던 물소리가 고요해진다. 한계에 다다랐을 때 머리에서 물음표가 떠올랐다.



'나는 누구인가?'



올해 초10바퀴도 겨우 돌았던 여정이 100바퀴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그 과정과 결과도 기뻤지만 더욱 좋았던 사실은 내가 누구인지 물속에 나오면서 알게 됐다. 그 순간 나는 존재했다. 물속에 들어가기 전과 달랐다. 새로운 삶을 선물 받은 듯했고,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새 삶


직장동료에겐 오히려 내가 더 고맙다고 말했다. 가르치지 않았다면 수영을 통해 진짜 살아있다는 느낌을 모르고 살았을 테니까. 수영장은 매번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며 존재하게 해주는 어머니의 뱃속 같은 곳이다.


지구 중력과 수영장 부력의 싸움 중간 속에서 견뎌냈고, 이겨냈다. 수영장 밖으로 나가 땅을 밟는 순간 중력이 땅속으로 나를 당겼다. 마치 지구가 발목을 붙들고 누워버린 기분이었다. 또한 대기압이 누르는 느낌도 살갗에 닿았다. 내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보다 먼저 마주하게 된 숨의 무게다.


수영 한 시간에 사소한 걸 크게 깨닫게 됐다. 들이마시는 숨으로 온몸에 알린다. 나는 살아있고, 존재한다고. 삶이라는 전쟁 속에서 심장은 북처럼 쿵쾅거린다. 계속 빨라지는 북소리에 뜨거워진 혈액은 들판의 야생마처럼 빠르게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나는 숨을 쉬며 살아있고, 이 세상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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