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차리고 불통 됐다.

by 하르엔
어른일까? 어른이일까?


'쉿! 조용히 해! 어른들 계신다.' 어른들이 말할 때 아무 말 않고 점잖게 듣는 거야. 이 말이 진리인 줄 알았다. 물론 다 이렇게 말하진 않지만 한 사람이 말하고 있으니 얘기가 끝날 때까지 경청해 달라는 말이 더욱 좋지 않을까? 어른들 중에 어른이 있으면 떠들어도 된다는 말도 통하니까


어른의 말들이 절대적인 지침으로 정해졌고 시대변화에 적응을 할 수 없는 오래된 관습처럼 박혔다. 조금 더 보게 되면 지침은 한 가정의 이념이 되는데 가훈이 되기도 한다. 가훈의 사전적 의미를 보자. 한 집안의 조상이나 어른이 자손들에게 일러주는 가르침. 또는 한 집안의 전통적 도덕관으로 삼기도 한다고 쓰여있다. 구석기시대처럼 생존기술로 봐야 할까?

어른의 규정은 무엇일까? 다시 찾아본다.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쓰여 있다. 먼저 글자 그대로 보게 되면 자신에 일에 책임을 지는 것.


단순히 바라봐야 하는 걸까? 글에 나온 정의대로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주변에 고등학교 동창이 스무 살에 연애를 하다가 의도치 않게 임신 다. 둘은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 아이를 양육하지 못해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둘의 힘만으론 힘들기 때문에 사전적 정의로 다가가면 성인에 부합하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그럼 법을 보자. 청소년보호법 2조에서 청소년은 만 19세 미만을 말한다. 다만, 만 19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을 맞이한 사람은 예외로 한다. 고 적혔있다. 고등학교 동창은 20세가 넘었으니 성인이다. 반대로 '고등학생엄빠' 예능을 보면 의도치 않은 임신으로 출산하게 된 청소년들이 나온다. 사전적, 법적 정의 어느 곳에도 성인이 아니다.


숫자로 적힌 정의는 그저 시간이 지나면 성인이라는 말이다. 자신의 일에 책임지라는 사람의 말은 광범위하다. 청소년도 자신이 벌인일에 책임을 지면 성인의 조건은 만들어진다. 생물학 분야로 들어가면 동물세계에서 자손을 낳을 준비가 되는 상태가 성체인데 사람도 포유류에 속하는 동물이니 성인이라 할 수 말할 수 있다. 두 커플 모두 2차 성징이 끝나 생식이 가능하니 성인이라 할 수 있을까?


어른의 시선+아이의 시선


우리나라 문화를 보면 웃어른 공경하기가 빠지지 않는다. 외국인들이 한글을 하루 만에 깨치더라도 높임말이 어렵다고 한다. 책을 보면 단 번에 아는데 한국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체화를 한다. 어린아이들에게 인사를 가르치고, 공공장소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어른들에게 '인사해야지?'라고 아이를 바라본다. 그러면 인사를 받는 어른은 아이에게 시선이 옮겨진다. 아이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보호자 뒤에 서서 다리를 붙잡고 빼꼼 내민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어른들은 대부분 가만히 있는다. 인사하는 어른들도 있지만 일부 어른들은 내려다본다.


아이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어린이집 차량에서 내린 아이는 마중 나온 엄마 손을 꼭 잡고 집으로 간다. 엘리베이터 앞에 엄마보다 머리하나는 더 크고 피부도 까만 아저씨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다.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는데 그의 커다란 체격은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팔에는 큰 지렁이가 꾸불꾸불하게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도깨비 동화책을 읽어줬는데 닮아 보인다. 무서워서 엄마 뒤에 숨는다.(때론 신기할 때도 있을 거다.) 엄마는 이미 멀리서부터 아이의 손을 잡은 채 말한다. '801호 아저씨다. 자, 배꼽인사 해야지.' 아이는 기겁한다. (우리 엄마는 도깨비한테 나를 보내려는 걸까?!!!! 후에엥) 더욱 엄마 뒤로 숨는다. 그런 찰나 아저씨가 내려다보며 웃는다.(아이는 무서워한다.) 순간 옆에서 엄마는 말한다. "어우 안녕하세요.^^ 저희 애가 오늘 어린이집에서 잘 놀아서 피곤한 지 오늘따라 낯가림이 심하네요." , "아뇨 어린아이들이 다 그렇죠. 괜찮습니다." 대부분 겪기도 하고, 보기도 한 상황들이고 이런 상황들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여기서 봐야 할 건 아이의 입장이다. 왜 아이가 피곤한 지 낯가림이 심한지 결정할까?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지도 않고 추측을 하는 건 대단히 큰 실수라 본다. 심지어 억지로 인사시키는 부모도 봤다. 어느 순간 보였던 어른의 정의는 아이를 통제하는 체제로 왜곡되기 시작한다. 어쩌면 진정한 어른이라 함은 아이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기다려주는 관찰이 더욱 필요하다 본다. 부모 외에 인사를 해주는 어른이 몇이나 있을까? 아이를 위해 무릎 꿇고, 눈을 맞추고 먼저 고개를 숙이는 '사람' 말이다.


웃어른 공경을 듣다가 공격으로 받아친다.

지금 앞서 말한 전제들을 종합해 보면 어른 또는 성인의 사전적 정의와 법적 정의가 애매하다. 어떻게 보면 언어라는 도구를 이용해 만들어진 관념 속에 갇혀사는 게 아닌가 싶다. 대한민국 헌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10조를 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 돼 있다. 여기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조금 더 봐야 할 부분이다. 우리는 웃어른을 공경하는 법을 어릴 적부터 배우며 아이들은 곧 잘 따라 한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지만 아이가 인간이 아닌 건 아니다. 한 객체로 봐줘야 할 부분이 꼭 부분으로 보인다.


인사를 받아보지도 못해 받는 기분이 정확히 어떤지 모르는데 특정한 누구에게 인사를 하라고 하면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까? 인사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 가르치고, 초면인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웃어른에게 인사를 잘해야 한다고 한다. 잘 나가다가 엎어진다. 그럼 거꾸로 물어보고 싶다. '아랫사람 다정다감 인사법', '아랫사람 존중하기'는 왜 없을까? 결국 공경의 문화는 세대 간의 불통을 초래한 듯 보이기도 하다. 심지어 '꼰대'라는 신조어가 생겨버렸다. 파급력은 아주 강력해서 기성세대들은 꼰대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귀를 닫고 못 본 척한다. MZ세대들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명백한 잘못이 있어도 눈을 감는다. 자신의 평판과 지위가 상처 나는 걸 고려하는 걸까 인간의 존엄은 저 멀리 날아갔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운운하기 전에 인간의 존엄성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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