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은 24시간 1440분 86400초

by 하르엔

'삐비비빅 삐비비빅'


'부스럭~ 이불이 움직거리며 손 하나가 고양이 손처럼 구부린 채 빠져나온다. 머리맡에 놓아둔 스마트폰 알람을 끄기 위해서 이리저리 움직인다. '어디있ㄴ ㅣ... 쫌!' 더듬거리는 손은 이리저리 움직이다 폰을 '툭!'쳐서 밑으로 떨어진다. 순간 벌떡 일어난다. 액정이 깨졌는지 보려는데 자동으로 켜져 보이는 시간. 오늘 주어진 24시간 중 5시간은 숙면에 쓰고 19시간이 남았다.


째깍째깍 움직이는 초침,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특히 새벽을 좋아한다. 오로지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대라 가장 사랑한다. 일어날 때까지는 고통이요. 일어나고 밀려오는 성취감은 나에 대한 해방감이다. 고요함은 인기척도 없다는 말이고 자아와 대화하는 나만의 시간에 방해하는 사람 또한 없다는 뜻이다. 페르소나 자체가 벗겨진 상태라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시스템에서 이탈했기에 자아를 마주하는 시간이 절대적이다.


세상은 자신보단 타인에 의해 정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름이 있다 해도 이 이름 또한 나를 정의하는 타인의 기준이 아닐까? 이름이 없기 전엔 내가 아닌 걸까? 오로지 새벽의 어스름과 차가운 공기 그리고 독서만이 질문에 대한 답을 천천히 알려준다.


오늘도 시간을 받았다. 86400초는 숙면과 명상, 일정을 정리 한 뒤 가진 자원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누군가 왜 그렇게 바쁘게 사냐고 한다. 사실 바쁜 게 아니라 좋아서 일어난다. 타인에게 말할 때는 '눈이 일찍 떠져요'라고 에둘러 표현한다. 이 기분을 어떻게 알려줄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싯다르타의 작품은 껍데기는 다르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은 세상에 나오기 위한 껍질을 깨고 또 깨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혼자 일어나는 고통 속에서 남이 알려주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는 것을 알게 됐다.


누구든지 세상에 태어나 피할 수 없는 건 세상에 나온 시작과흐름에 인간관계 끝에 있는 죽음이다. 물론 받는다고만 했지 공평과 공정은 없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힘으로 결정되는 건 없으니까. 그렇다고 바꿀 수 없는 부분에 신세한탄하며 주어진 시간을 허무하게 버리기 아까워 오늘도 주어진 시간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또 대화하고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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