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중국의 변검 공연을 티브이 채널에 나오는 프로그램을 통해본 적이 있는데 정말 마술처럼 신기했다. 변검은 배우가 손을 대지 않고 순식간에 가면을 휙휙 바꾸는 가면술이기에 분위기에 맞춰 변신한다. 이런 변검술이 어릴 적엔 그저 신기하게 보였지만 오늘날 나를 포함한 세상 사람들이 사회라는 무대에서 쓸 줄은 몰랐다. 내가 웃긴 상황이 아니지만 웃어야 하며 잘못이 없는데 억울하게 질책을 받아도 티를 내서도 안 되고,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겉으로 표출하기가 쉽지 않다.
어릴 적엔 불합리하게 받은 권리에 대해 '선'이라는 가면을 쓰고 항의하면 모든 게 '선'인 줄 알았으며,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의와 도덕적 잣대가 서있는 기준을 벗어나고 '악'이라는 가면이 보이면 벗기는 행위가 '악'에 항의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과 악도 가면을 쓰고 있었으며 거짓을 불편해야 할 '선'이라는 가면이 정의에 반하는 것에 침묵을 지켰다. 반대로 진실과 상관없이 '악'이라는 가면의 존재가 정의인 마냥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미디어가 만들어 내는 정의의 기준과 그 시절 문화에물들 듯 그렇게 맞춰서 살아오게 되었다.
이러한 기준은 대학교를 다닐 때 적나라하게 알게 되었다. 수업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개인의 일신상의 사유로 터무니없는 휴강을 하였다.(너무 어이없어 말하진 못하겠다.) 또 다른 교수는 본인의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아 교재만 수업 내내 읽어주면서 진행했는데 학교 등록금을 내기 위해 일한 시간들이 아까웠던 적이 이때가 처음이었다.
또 다른 교수는 본인은 한 번도 참관을 안 한 본인 연구수업의 강평을 다른 강사를 통해 쓰게 하고 가져갔다. 이런 식으로 가르치면 나도 가르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턱끝까지 차오른 모두의 울화와 불공정, 불합리함은 학점이라는 제도 앞에서 교수라는 직업의 위치에 가로막혀 애써 웃픈 가면을 쓰고 살아갔다.
큰 생태계 안에 작은 생태계들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질서와 약육강식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보여줬으며 결코 큰 생태계만큼 보이지 않지만 피라미드 직업사회의 차별 구조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2. 처세술 가면 구입처는어디에?
우리들은 결국 가면무도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무도회 속에서 진실을 바라보는 지혜와 처세의 가면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고, 사람이 성장하면서 '터득하는' 또는 '터득되는' 처세술의 가면을 마트에서 물건 구입하듯 사고 싶을 정도로 절실했다.연령대별로 비즈니스 관계, 친구, 연인, 직장에서 상대를 상대하거나 높여줄 때 등 들어가는 에너지, 시간, 돈이 투자 대비 손실이 많기 때문이다.
대학도 저런 곳인데 사회와 직장은 오죽하랴. 그리고 사회에나온 이상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게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같다. 재택근무도 결국 온라인에서는 사람을 상대해야 하기에 이런 피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점차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사람들의 성향과 직업, 연령 등에 따라 맞춰야 한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가면을 사회라는 큰 상점에서 만들어가거나 직접 경험을 쌓아서 강매도피할 수 없게 됐다.
앞의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면 선택을 해야 한다. 직접 경험을 통해 뼈에 새겨 쉽게 잊히지 않는 재산을 쌓는다 생각하고 만들어야 한다. 아니면 쌈 마이웨이로 향하든지 결정해야 한다. 개인이 다방면의 경험을 얻기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고 직업은 평균적으로 하나만 선택한다.
물론 요즘 같은 시대는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 많이 갖고 있다한들 그 사람들 또한 자기 직업 외에 다른 직업의 공부와 경험을 할 수가 없다. 평생 일할 수도 없으며 물리적인 부분, 경제적인 부분, 제한적인 부분으로 한계에 부딪혀 얻지 못하는 많은 처세술들이 즐비하다.
3. 곱절의 곱절로 읽기만 하면 얻어질까?
나 또한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지만 생각만큼 만족할 만한 절대적인 가면은 얻지 못했다. 존재는 할까? 하면서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취업을 하고 내 집 마련의 좌절을 극복하고자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기 위해 신문으로 구독하던 중 책 소개를 받게 되었고,그 책들이 지금까지 살아서 경험한 처세술보다 훨씬 더 많이 가르쳐 주었으며 지금까지 얻은 성취는 대소 상관없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새로움이라는 지식의 바닷속에서 헤엄치게 하고 더 넓은 시야와 생각의 폭을 넓혀주며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어 세상의 풍파에 견딜 수 있는 힘을 길러 주었다.
좀 더 과거로 돌아가 인생에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 있다면 초중고 시험기간, 수행평가, 방황하던 사춘기, 어쩔 수 없이 책을 읽었던 것, 흥미가 가지 않는 책 외엔 독서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대학시절엔 술에 취해 매일 남들과 똑같은 얘기와 똑같은 신세한탄을 끊임없이 습관처럼 해왔던 시간들이다. 습관처럼 해온 시간을 책이라는 지식에 취해 배움을 실천했다면 어땠을까 한다. 그러면 책이라는 매체로 얻게 된 숨겨진 지식을 삶에 녹여 실천하여 지혜를 얻게 되면서 지금의 삶과 또 다른 삶을 살았겠지? 라며 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책에서 알려주듯 후회해봐야 지난 과거이고 내가 남겨온 발자취이다. 지금까지 무엇을 해온 것보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찾아봐야 한다.
가면은 어차피 쓰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쓰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가면 뒤에서 생각해야 하는 나 자신이 많은 지혜를 길러야 한다. 길러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이라기보다 답을 찾기 위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겠다. 앞서 말한 독서를 꾸준히 해 얻은 지식을 실천하는 것이다. 가면을 벗고 본연의 모습으로 상대를 마주할 수 있는 날이 오기까지 기대하며 오늘도 거울 앞에서 가면을 벗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또, 벗지않아도 내 자신을 잃지 않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