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으로 걸어가고 있으며,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망각한다. 망각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하지만 망각이 있기에 아주 멀 수도 가까울 수도 있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현재에 충실히 살아가는 날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회라는 일상 상황 속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잠시 죽음에 대해 잊고 본능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런 본능 속에서 과로로 병들기도 하며, 예기치 못하는 사고, 외로움과 싸우다 지치는 등 뉴스에서는 연일 고독사 하는 1인 가구, 과로사하는 직장인, 병마와 싸우다 자연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늘어나며 초고령화 사회에 들어서 더욱 빨라지고 있는 데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지도 모른 채 잠을 자다가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다고 전해 줍니다. 점점 1인 가구가 늘어나게 되며 이웃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없어지게 되니 차갑게 식은 육체를 누군가 발견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러야 온기 있는 사람들의 손에 인도되기도 합니다.
사회의 비보 뉴스를 접하거나, 친인척, 지인들의 부고를 알리는 문자가 오면 안타까운 마음과 죽음이란 무엇이기에 이렇게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드는지 슬픔과 분노 공허함이 마음을 채우기도 하죠. 얼마 전 동네 근처에 사는 가까운 지인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조문을 아내랑 함께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으며 아무 말도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아직은 직접 겪지 않은 일이기에 그리고 나에겐 먼 일이라고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에 이 부고 소식이 망각한 죽음에 대해 일깨워줬습니다. 하지만 당시 머릿속은 백지상태가 되었으며, 위로의 단어 하나조차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지인이 말을 이어가길 평상시 지병이 있으셔서 마음의 준비를 어느 정도 했지만 막상 그런 시간이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오니 아무리 마음을 준비했어도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과 타들어가고 조여 오는 가슴의 아픔은 막을 수가 없었다고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렇게 지인의 모친상도 하늘이 떠나갈 정도로 슬프고, 아무리 좋은 위로의 말이라도 들리지 않을 텐데 정작 당사자가 된다면 상상조차 못 할 거 같습니다. 죽음을 보며 가진 것 없이 왔다가 똑같이 가진 것 없이 떠나며 삶의 경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 채 누군가의 기대와 부흥에 살기도 하며, 집이나 직장, 사회 등 각자의 위치에 있는 호칭으로 가면을 쓰고 어쩔 수 없이 살기도 하며, 더 많은 물욕을 채우기 위해,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이란 말속에서 직업의 귀천은 없으나, 차별은 존재하기에 누군가를 제치고 짓밟으며 올라가야 하는 피라미드 구조의 권력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어차피 모든 생명은 죽음으로 똑같이 걸어가고 있는데 말이죠.
아직 먼 일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언제나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 대비하기 위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죽음이란 존재 앞에서 조심히 생각해봅니다. 죽음이란 존재를 내 일이 아니듯 누군가의 일이라 생각하는 순간 일상이 영원할 것 같다는 많은 생각이 일상의 소중함을 영원할 것처럼 당연시하게 될 거 같습니다. 생명의 탄생은 죽음이란 존재 앞에 겸손해지고 숙연해지며, 죽음이란 존재는 또 다른 생명의 희생과 사랑으로 있기에 생명의 삶이 더욱 찬란한 게 아닐까요?
죽음에 가까워지니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말한 솔로몬 왕의 말이 생각나네요. 시대의 권력과 부를 다 가진 사람조차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하니 말이죠. 죽음 앞에선 아무것도 소용이 없으니 이런 말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의 지식과 지혜는 세대를 거쳐 계속해서 이어지고 타인의 삶 속에 그의 생각이 영향을 끼쳐 삶의 존재와 목적을 얻게 되어 살아갑니다. 이렇게 보니 삶의 의미를 타인이 받기도 주기도 하는 것 같네요. 저희 어머니께서도 한 번은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다.라고 말입니다.
조문을 다녀온 장례식장에서 돌아가신 지인의 어머니도 자식을 낳았기에 삶의 의미가 자식이지 않았을까라고 생각이 조심스럽게 들었습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사후엔 뭐가 있는지 저도 모르지만 조문을 갈 일이 어렸을 때 보다 많아져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 존재감이 점점 커지며 하루를 더욱 소중하게 생각을 하게 되게 됩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안부전화와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싶어 집니다.
앞서 말한 '선물(=망각)'로 잠시뿐일 수도 있습니다. 삶의 끝은 끝이 아니라 꿈일 수도 있으며, 또 다른 시작을 뜻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지만 확실한 게 없는 지금의 현재로서 저는 삶의 끝에 대해 겸손해지려고 노력하며, 늘 그렇듯 기억 속에서 잠시 잊어버렸다가 기억하며 또 잊어버리다가 기억하며 하루하루 사랑하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의미를 찾아가기보다 만들어가는 게 맞겠다 싶어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려 합니다. 선물(=망각)이 선물(=지금 이 순간)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