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발레일기
선생님으로부터 시험을 같이 들었던 동지들과 함께 시험이 끝난 뒤 중급반으로 업그레이드를 명 받았다. 앞으로의 발레 실력을 위해서 초급보다는 중급반 수업을 듣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아직은 멀었다 생각했던 승급이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져서 기쁜 마음으로 승급 준비물을 준비하러 갔다. 우리 학원 중급반에서는 매월 마지막 주엔 토슈즈 클래스를 하고 있어서 중급반을 듣고자 하면 토슈즈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본인의 의지에 따라 그냥 슈즈를 신고 토슈즈 클래스를 들어도 무방하다) 발레를 시작했다면 적어도 토슈즈 한번은 신어 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는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그 순간이 오게 됨에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걱정도 같이 있었지만.
나에게 토슈즈가 가진 이미지는 매끈한 핑크 공단 구두의 우아함과 그리고 도저히 춤을 멈출 수 없게 만들어 결국 발을 잘라내고 말았다는 빨간 구두의 어마무시한 공포감. 그 두 가지가 동시에 떠올랐다. (적어도 나에게는) 연습슈즈보다 훨씬 아름다운 자태일 때문일 거고, 이 신발을 신기 위해 그리고 신고 공연을 하기 위해 견뎌야 하는 적응의 시간, 연습의 시간이 동시에 떠오르기 때문일 거다. 아무튼 토슈즈는 적어도 1~2년 정도의 발레 경험이 필요하다. 딱딱한 나무 판 위에 발 끝으로 서야 하기 때문에 발목의 힘이 좋아야 업 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허벅지 안쪽부터 힘을 있는 그대로 끌어 올려 풀-업 상태를 유지해야 토슈즈를 신었을 때 고통이 적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발 사이즈와 발 볼 넓이에 맞춰 섬세하게 선택해야 한다. 그렇기 떄문에 처음 토슈즈를 구매하는 경우 오프라인에서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유튜브와 블로그를 통해 압구정에 있는 모 발레샵이 초보자에게도 친절하게 상담을 해준다는 것을 알아냈고, RAD 시험이 끝난 날 다같이 압구정으로 토슈즈를 사러 발걸음을 옮겼다.
피팅 예약한 누구라고 이름을 대니 토슈즈를 피팅 해 볼 수 있는 곳으로 안내 해주셨다. 그곳에 당도한 느낌은, 말 그대로 “우와” 해리포터에 나오는 올리밴더 지팡이 가게. 그곳에서 지팡이를 산다면 이런 느낌일까? 벽장 가득 담겨있는 각 브랜드들의 토슈즈들과 피팅 하고 슈즈를 체험해볼 수 있는 간이 발레 바 공간까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일단 신발부터 벗고 발 모양 좀 볼까요? 라는 말에 두근대는 마음으로 얼른 발을 꺼냈다. “아 이런 발이면 **브랜드, 발 볼 사이즈는 3X, 가져와 볼게요” 뭐라 말할 새도 없이 휙 사라지셨다가 토슈즈를 꺼내오셨다. ‘처음에 생각해본 브랜드 있냐고 물어보신 건 그냥 인사치레였던 거죠 선생님..?’
처음으로 피팅 해보는 토슈즈. 토씽(발 끝을 보호하기 위해 발에 끼는 보호대)를 끼고 라이즈 업- 엄청 아플 것 같았던 예상과는 달리 발이 슈즈에 쏙 감기는 느낌이 편안했고 바닥에서 반 뼘 정도 올라간 느낌이 설레었다. 내 발에 딱 맞는 토슈즈를 고르게 되면 연습 슈즈를 신는 것 처럼 발이 편안하다고 하던데, 느낌이 좋다. 발 사이즈에 딱 맞는 슈즈, 발 볼이 조금 더 여유 있는 슈즈, 몇 가지를 더 신어 보며 라이즈 업과 플리에를 반복하며 발에 딱 맞는 제품을 골랐다. 가장 처음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블락 유로피안 XXX. 이것이 내 첫 토슈즈가 되었다. 앞으로 토슈즈와 함께 해볼 새로운 발레 생활이 정말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