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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Oct 10. 2024

독서의 재무상태표_독서는 부채다

20화_책을 읽다 보면 쓰고 싶어 진다

지혜는 플라워카페 사장이자 몇 권의 책을 낸 은선에게 책 읽는 이유를 물었다.

지혜의 물음에 은선은 또 다른 물음으로 답했다.

"지혜 씨가 지금 회사에서 회계업무 보신다고 했던가요?"

"아 네."

"그럼 재무제표 볼 줄 알겠네요?"

"갑자기 재무제표는 왜요?"

"카페 하나 하는데도 계속 이어가려면 손익을 봐야겠더라고요. 어릴 때는 재미로 책 읽다가 어느 순간부터 저도 지혜 씨처럼 잘살아보려고 경제 경영서나 자기 계발서를 읽기도 했던 것 같아요. 독서의 이유는 바뀔 수 있지, 안 그래요?"

지혜가 식어가는 커피를 마시면서 다음 대답을 기다렸다.     

"지금은... 빚을 갚으려고 읽어요. 세상에 갚을 빚."

"작가님 좀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재무제표랑 독서하는 이유가 연관이 있나요책이 작가가 아닌 사람들한테 돈이라도 벌어다 주나요?"

은선은 노트를 펴서 T자를 그렸다. 그리고 표를 간단하게 그렸다.

'갑자기??'

“간단히 그려보자고요. 이렇게, 맞나요?"

"아 네. 손익계산서에 매출액이랑 원가가 들어가야 하지만 간단히는.., 네."


"저는 책 읽는 재미가 붙고 나서 점점 많이 읽다 보니까 책을 쓰고 싶어 지더라고요."

라고 말하며 은선은 무언가를 더 썼다.


"책이 처음에 재미있었어요. 안다는 것에 대한 기쁨, 그리고 그동안 읽은 책들이 새로운 책을 만났을 때 서로 시너지를 내서 더 넓은 이해로 다가오는 것이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저는 서너 권의 책을 비슷한 기간 안에 함께 읽거든요. 병렬독서라고 하죠."

은선이 여러 책을 함께 읽는다는 부분에 지혜는 이의를 제기했다.

"저... 그러면 내용이 뒤죽박죽 섞여서 어느 것도 이해를 온전히 할 수 없지 않을까요?"


"그럴 것 같죠? 그런데 저에겐 그렇지 않았어요. 각기 다른 분야의 그 책들이 서로 연결되어서 머리에 들어온다는 느낌을 받기도 해요. 그리고 책의 완독률이 올라가요. 감질나게 조금씩 나누어 읽으니까 매번 재미있어져요. 단, 처음 한 40쪽 정도는 읽어주다가 다른 책으로 가야 다시 그 책을 잡았을 때 앞의 이야기나 구성과 말하려는 점에 적응할 수 있더라고요."


지혜가 완독률이 올라간다는 말에 반응을 보였다.

"아.. 완독률! 저번에 책 읽다가 지루해지고 더 관심 가는 책이 생각나서 덮어버리고 다른 것 읽었거든요. 그러니까 덜 읽은 책에 미련이 생기고  완독 못 할 책을 읽은 시간이 아깝기까지 했었어요."


"그럴 수 있죠. 꼭 책을 완독해야 무언가를 얻어가는 것이 아니지만 독서 습관을 잡을 때 몇 권을 읽었다는 것에 성취감을 얻고 더욱 독서활동에 동기부여를 할 수도 있어요. 책의 중요해 보이는 챕터만 골라 읽고 핵심을 추려보는 활동이 필요할 때가 분명 있죠. 예를 들면 분야를 깊이 파고들 저자들이 말하는 핵심내용을 파악하고 공통된 주장과 다른 주장을 분류해 볼 때 그렇게 해요. 그리고 저는 책을 쓰기 위해서 그 분야의 책을 20권 정도 사서 중요해 보이는 본론 챕터를 보고 나서 나머지 부분을 빠르게 훑어요."


"아.. 빠르게 읽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속독법을 배우신 거예요?"

"속독법이라... 눈으로 빠르게 읽는다고 그게 뇌에 바로 입력되는 건 아니죠. 뇌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보이고 기억하는 것이니까요."

"속독법에 대한 책들도 많이 있던데요."

"지혜 씨가 책 읽다 딴생각할 때 없어요? 눈은 분명히 한 페이지를 모두 읽었는데 하나도 기억 안 난다던가..."

"아.. 책 읽다가 남편이 말 걸어서 대꾸하고 있을 때?  어제 그랬어요. 역시 저는 한 번에 두 가지는 못하나 봐요. 병렬독서도 못하겠어요. 횡단보도 건너면서 껌 씹기 정도는 할 수 있지만요."


지혜의 말에 은선이 웃으며 대답했다.

"빨리 읽어서 이해하려면 배경 지식이 있어야 돼요. 비슷한 주제의 책을 여러 권 읽으면 그 분야의 배경 지식이 생겨서 더 중요해 보이는 부분과 빠르게 넘어가도 되는 부분이 자연스럽게 걸러지거든요. 선택적으로 보는 거예요. 인터넷 기사를 볼 때처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서 좀 더 시간을 쓰고 나머지는 스크롤을 내리듯이. 많이 읽어서 배경지식이 쌓여야 빠르게 훑어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거죠."


"그러니까 작가님 말씀은 눈으로 빠르게 읽는 것은 할 수 있지만 그 방면으로 많이 읽어야 속독했을 때도 이해하는 속도가 올라간다는 말씀인가요?"

"네. 그 말이에요."

"저도 책 읽는 게 재미있어졌어요. 이제 누가 물어봐도 취미는 독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혜 씨가 처음 왔을 때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 했던 거 기억나요?"

"정확히 기억나죠. '1년에 책을 1권도 안 읽는 사람들도 있다니 놀랍지 않아요?'라고 하셨잖아요. 그땐 작가님인 줄도 모르고 웬 카페주인이 고리타분한 얘기 꺼낸다고 의아해했거든요. 그런데 결국 책 읽는 습관이 그 말 한마디 덕분에 생긴 것 같아요. 은인이세요, 정말~."


"저도 처음엔 읽을수록 파고들수록 독서가 재미있어졌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나도 책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모든 작가님들을 동경하게 되기도 했었고요. 특히 세월이 지나도 녹슬지 않는 스테디셀러 쓴 작가님들요. 그러다 어느 순간엔 '나도 책 쓸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찾아오더라고요."

"그런 순간이... 찾아올까요?"

지혜가 머뭇거리며 물었고 은선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작가가 될 기량이 충분한 사람도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지 않는다면 책은 나올 수 없죠.

기회는 준비된 사람보다 꿈을 꾸는 사람에게 먼저 찾아오더라고요. 꿈을 꾸면 그때부터 꿈에 맞는 기량이 길러지는 거예요. 멈추지만 마요. 저에겐 독서는 부채예요. 아웃풋 하지 못한 인풋이죠.

책에서 얻은 것을 다시 내 속에 있는 재료로 반죽해서 세상에 갚는 것. 그게 제가 지금 책 읽는 이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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