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을 끊는 가장 쉬운 방법

by 나예스

욕설은 왜 하는 것일까. 자신이 하려는 말을 강조하거나 느끼는 감정을 강하게 전달하기 위해 쓴다. 상대를 낮잡아 본다는 걸 상대에게 인식시켜 위협하는 도구로도 사용되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도 많은 영상 콘텐츠에서 욕설이 난무하니 아이가 금방 배우게 된다. 음식이 그냥 맛있으면 되지, 꼭 ‘개’ 맛있어야 하고, 처음 맛본 순간에 감탄사로 “미쳤다!”라고 말해야 느낌이 사는가 보다. 숏폼이나 게임 중에 배운 말로는, 억울한 상황으로 느껴질 때 억지로 까인다는 줄임말로 '억까'라는 비속어를 썼다.


나도 ‘가축이 낳은 자식’을 지칭하는 욕설 이외의 욕을 처음 들었을 때는 충격이 컸었다. 국민(초등) 학교 2 학년 때였다. 친척들이 시골집인 우리 집에 이틀 정도 묵고 갔는데, 초등학교 3, 4 학년인 사촌오빠들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말끝마다 ‘이 지랄.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이었다.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심히 듣기 거북했고, 충격적이라 뇌리에 박혔다. 이상하게 나쁜 말버릇이 유행하는 것 같아 그들이 사는 ‘도시’에 대한 이미지는 더 나빠졌다. 친척들이 쓴 그 말, 너무 듣기 싫지 않냐며 동생과 말투를 곱씹고 입에 굴려본 것이 연습이 되어버렸다.


친척이 떠났다. 나와 동생만 남았을 때부터 이제는 더 그 욕설이 들리지 않는데도 한동안 동생 앞에서 그 욕설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고 말았다. 동생도 튀어나온 말에 놀란 내 반응이 재미있는지 따라 했다. 하지만 그 말버릇은 며칠 되지 않아 우리의 입술을 떠났다. 일단 우리 학교나 동네에서는 그런 말을 쓰는 친구나 또래가 없었고, 당장 듣기에 멋이 없었고, 그 말을 처음 듣는 친구에서 설명하기에 난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 중학교 때 우리는 별 의미 없는 욕설을 입에 달기 시작했다. ‘존나’라는 비속어였다. 이 말도 처음 들었을 때는 듣기 거북했지만, 반 아이들 반 이상이 무언가를 강조하거나 과장할 때 쓰고 있었다. 괜히 더 느낌이 사는 기분이 들었다. 중학교 때는 특히나 또래 문화나 또래 사이의 친밀감, 소속감이 중요한 때였다. 욕설하는 상황은 일진이거나, 기분이 나쁜 걸 극적으로 표출하고 싶거나 상대를 위협할 때라 생각해 왔는데, 우리 반에서, 복도에서 그 단어를 쓰는 친구들의 표정은 해맑았으며, 공부를 제일 잘하는 친구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얼른 그 문화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입에 착 달라붙었다.


아침은 엄마가 해 주시고 출근하셨다. 엄마는 밤늦게까지 일하셔야 했기에 저녁밥은 내가 차렸다. 그날도 아빠와 동생들과 밥상 앞에 둘러앉았다.

“와, 국 존나 뜨겁다. 조심 해래이.”

“맞나? 존나 ‘후’ 불어야겠노. 누나, 밥 존나 많이 줬네.”

“응, 존나 먹고 키 크라고.”

묵묵히 듣고 있던 아빠가 숟가락내려놓으셨다.

“너거, 말이 그게 뭐고?”

우린 잠시 멈칫했다. 아빠의 오해를 풀어드려야 했다.

“아, 아빠, 이건 나쁜 뜻으로 말하는 게 아니고요. 그냥…….”

“국어사전 가 온나.”

“예? 그건 왜요?”

“국어사전.”

나는 얼른 책장으로 가서 손바닥만 한 낡은 사전을 가지고 밥상 앞에 앉았다.

“니 방금 썼던 말 한번 찾아봐라.”

“예? 아빠 그런 건 사전에 안 나와요.”

“찾아봐라. ‘지읒’에 있나?”

‘조’ 밑에 받침이 있는 글자는 많지 않았다.

“아빠, 없는데요. ‘존’으로 시작되는 말은 ‘존경’,‘존엄’ 이런 말밖에 없어요. 뒤에는 좁쌀, 좇다, 좋다…. 어? 이건가……?”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좋은 말 대잔치 중에서 하나의 낯선 단어를 발견한 것이다.

"뭐라고 적혀 있노? 읽어 봐라."

"이건 좀... "

"뭐라고 적혔노 말이다."

"좆: 어른 남자의…. 성기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 이거예요?..."

"‘매우’, ‘아주’, 또 뭐 있노. ‘엄청나게’, ‘굉장히’ 어이? 알겠나? 좋은 말 써라이?"

"아, 진짜 몰랐어요…. 안 쓸게요…."

밥상머리 교육을 받은 우리는 더는 그 욕설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밥맛 떨어지는 끔찍한 욕설이었다. 사전의 뒤쪽으로는 ‘지랄’도 나와 있었다. 간질 증상을 두고 한 말이었다.


동생과 나의 중학교는 가는 길이 같았다. 담벼락 하나를 두고 (남자) 중학교와 여자 중학교였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엄마가 차려 주신 아침밥을 얼른 먹고 급히 가방을 챙기며 “늦었다, 지각이다!”를 외치며 현관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지각하면 큰일이었다. 나는 동생보다 2분 더 뛰어가야 하니 다급한 마음으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때 아파트 2 층 현관문을 열고 엄마가 복도에서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빨리 가라! 존나게 뛰어가라! 차 조심하고!”

“응? 엄마 방금 뭐라 했지?”

마주 보며 눈이 휘둥그레 해진 우리는 등굣길 20분 동안 미친 듯이 웃으며 달리다가 배가 당겨 허리를 접고 멈춰 꺽꺽 웃다가, 다시 시계를 보고 달렸다. 그렇게 오래 웃으며 뛴 건 오랜만이었다. 평생 비속어 근처도 안 가신 엄마가 우리의 세계로 들어왔다. 사춘기인 우리와 한층 가까워진 신세대 느낌이랄까.


우리는 밥상머리에서 숙연한 국어사전 찾기 시간을 가진 후 그 단어를 그날부로 를 끊었지만, 국어사전을 찾아보지 못한 엄마는 그러지 못하셨다. 우리가 웃으니 더 신나신 듯 보였다. 그 단어를 잊을 만할 때 한 번씩 ‘일이 힘들어서 고생했다’라는 의미로 쓰셨다. 다 큰 어른이 그게 뭐냐고 손주 배우겠다고 투덜 대도 그냥 웃어넘기시는 화통한 엄마였다. 다음에 친정 갈 때 국어사전을 챙겨야겠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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