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 시골에서 대구시로 이사를 갔다. 할아버지 댁이었다. 시골집과 몇백 평씩 되었던 논밭은 양돈 사업을 접고 나서 다시 밟을 수 없는 땅이 되었다. 사글셋방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세 달 동안 조부모 댁에 살 때 나는 막내고모와 한방을 썼다. 육 남매의 막내였던 고모는 이십 대 중반을 넘어 회사를 다니면서 번 돈으로 야간대학 다니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장녀라 해도 믿을 만큼 속이 깊고 마음씨가 넓고 틈틈이 점토 공예도 배우고 20대 후반 여자가 읽을 만한 에세이도 읽고 카세트 테이프로 클래식 음악도 듣는 모습이 나의 롤모델이 되기에 충분했다.
막내 고모의 모든 것을 닮고 싶어 했던 내 눈에는 고모의 갈색 뿔테 안경이 더없이 근사해 보였다. 다른 결혼한 친척 어른들에게는 느낄 수 없었던 치열함 속에 자기 계발과 취미생활이 조화로운 삶이 막내고모만 쓰는 그 '안경'에서 나오기라도 하는 듯이 신비롭게 비춰졌기 때문이다. 고모가 로션을 바를 때 청해서 안경을 써봤다.
"안경 쓰면 어지러울 긴데. 눈 나빠진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경고였다.
눈알이 뻐근해지면서 답답하게 흐려졌다. 멀미가 나는 듯도 했다. 안경 쓴 내 얼굴을 거울로 보고 싶은데, 아무리 거울 가까이 가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나의 밋밋한 얼굴이 안경 하나로 이미지 변신이 된 것 같았다. 흐린 거울 속 내가 좀 똑똑해 보이는 것도 같았다.
"고모, 안경 쓰려면 얼마나 눈이 나빠야 되는 거예요?"
고모의 시력은 '마이너스 6'이라 했다.
고모가 내 눈을 걱정하지 않게, 고모가 씻으러 갈 때마다 몇분간 안경을 썼다. 한 달 정도 그러고 나니 점점 나도 시력이 나빠지는 게 느껴졌다. 멀리 있는 간판의 글씨가 흐려지고, 칠판 글씨도 눈을 가늘게 떠야 보였다. 잭팟이었다.
"아빠! 저 안경 맞춰야 돼요. 칠판에 글씨가 안 보여요."
"눈이 안 보인다고? 얼마나?"
"딴 애들도 눈 안보여서 안경 쓰더라고요."
아빠와 안경점에 갔다. 시력검사 결과는 시력 한쪽은 0.5, 반대쪽은 0.6이었다. 보인다면 보이는 정도고 안 보인다면 안 보일 수 있는, 한마디로 애매했다. 척척박사 같은 안경에 알을 이리 지러 바꿔보고 걸어보라 했다.
"이제야 잘 보이네요."
"무신 소리고? 아빠가 0.3인데, 니 정도면 안 써도 된다."
안경은 팔고 싶지만 아빠 눈치를 보던 사장님도 애매하게 말했다.
"일상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는데 공부하는 학생은 멀리서 칠판이 잘 안 보일 수 있는 정돕니다."
나는 안경이 너무 쓰고 싶어서 칠판 글씨를 보려면 눈을 이렇게 가늘게 떠야 한다고 말하며 미간을 잔뜩 찌푸려 보였다. 안경점에서 나왔다. 들어올 때와 똑같은 종소리를 들으며 유리문을 닫았지만 분명 달라진 내가 있었다.
똑똑해 보인다고 믿는 나는 아빠의 지출이 보람 있도록 저 멀리 사거리 공중에 달려 있는 초록색 표지판을 한글공부하듯 소리 내어 읽었다. 없는 살림에 안경을 샀으니 분명 앞으로 공부도 잘해야 할 것이었다. 고모처럼 갈색 뿔테안경을 쓰고 싶었는데 자꾸 안경이 코 밑으로 흘러내려 권장받은 붉은 금속테가 내 첫 안경이었다. 안경을 쓰고 학교 가는 첫날의 어색하게 들뜬 기분이 떠오른다. 칠판 글씨가 잘 보였지만 그다지 잘 알아보진 못했다. 시력이 아니라 이해의 문제였다. 안경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은 달랐다. 아빠의 손 미싱 앞에 있던 안경집을 떠올리며 물었다.
"아빠. 근데 아빠는 0.3이라면서 왜 안경 안 써요?"
"지금은 0.3 아닐 거라. 안경 쓰면 계속 안경에 의지하니까 그렇지. 용접마스크 쓸 때 불편하다."
"그래도 글씨가 안보이잖아요."
"내가 글씨 볼 일 뭐 있노? 안 끼다 보니 눈이 다시 좋아지더라. 오히려 안경 끼니까 어지럽드만. 니도 학교서 쉬는 시간에 창밖을 자꾸 봐라. 멀리 봐야 눈 좋아진다."
"네."
"몽골인은 시력이 3.0이다. 왜 3.0이겠노? 저어- 끝도 없는 초원에 말 타고 가다가 사냥감이 딱 나타난 기라. 그걸 볼라 카면 눈이 얼마나 좋아야 되겠노?"
시력 검사도구 속에 초록색 초원, 중간에 있는 빨간 집을 떠올리다가 집이 표범으로 바뀌는 걸 상상했다. 몽골인이 어떻게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빠의 말씀을 듣고 보니 시력은 생존을 위해 중요한 요소였다. 당시에 나는 향수병을 앓고 있었다. 아무도 관심없는 나의 지병이었다. 시골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도시 2층집들이 감옥 같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십리 길을 걸어 학교 다니며 보았던 경치, 앞에 아무것도 가려지지 않은 뻥뷰를 살다가 멀리 볼 필요가 없었던 환경이 되었다. 그렇게 자유를 잃고 좌절한 나의 눈동자가 힘을 잃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안경을 쓰다 보면 안경에 의지하게 된다는 말씀은 강하게 수긍했다. 안경알은 6개월 단위로 점차 무거워지고 압축하고도 무거워져서 고등학교 때는 '무테' 안경이었는데도 실수로 밟아도 깨지지 않는 무적 알이 되어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안경은 안 끼는 게 제일 좋고, 껴야 한다면 얼굴을 덜 가리는 게 잘 어울렸다. 똑똑해 보이는 아이템이 아니라 거치적거리는 눈의 지팡이였다는 것을 처음 아빠와 안경점에 갔을 때는 몰랐다.
아침마다 안경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해 머리 맡을 더듬거렸어야 했던 눈뜬장님이 되고 나서야 막내 고모의 안경을 몰래 썼던 시간을 후회했다. 고등학생 때 시력은 처음 고모의 안경 도수와 같은 마이너스 6 디옵터였다. 가족 중 유일한 안경잡이였던 나는 렌즈 생활을 거쳐 라식수술로 1.5까지 맞추고도 몇 년 후 회귀해서 0.3에서 0.4 정도로 떨어졌다. 공교롭게도 아빠가 안경 안썼다는 시력이 되었다. 불편함을 느낄 때는 멀리서 누가 내게 인사할 때다. 공연 볼 때는 낀다. 운전을 하게되면 다시 써야할거다. 나머지 생활에는 아무 불편함이 없다.
아빠가 눈이 좋아졌다는 건 농담이었을까? 아니면 애초에 안경을 컨디션 나쁠 때 잘못 맞췄던 것일까? 아니면 특이한 눈을 가져서 어른인데도 시력이 변했던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안경을 안 쓰겠다는 불굴의 의지로 눈이 밝아진 걸까? 미궁에 빠진 물음표 끝에, 내가 그 시력이 되고 안경을 안 끼고 살면서 결론 지었다. 지금 나는 칠판 볼 일이 없다. 도시에서 몽골인의 자유로운 눈동자가 되는 비밀은 '흐린 눈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