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머리

by 나예스

행복은 어쩌면 성적순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성적을 예상만큼 끌어올리지 못해 불행했던 기억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학습에 대한 잔소리를 거의 안 듣고 자랐다. 학교 갈 때마다 누구보다 학습 열의를 불태우며 무겁게 가방을 들고 갔지만, 수학과 영어만큼은 외계어로 들렸다. 집에서도 책상 앞에 나름대로 궁둥이는 붙이고 앉았다. 그러나 전등에 비친 글자만 보면 열심히 졸았고, 머릿속에 딴생각이 가득 차서 공부가 잘되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기말고사를 한 달 앞둔 때였다. 책상에서 남동생과 내가 장난을 치다가 결국 싸움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날따라 고뇌하던 아빠 심기가 몹시 불편하셨나 보다. “조용히 해라”라는 말씀을 들은 척 만 척한 대가로, 우린 나란히 안방으로 불려 갔다. 나부터였다.

“나예 중간고사 때 반에서 몇 등 했노?”

“24등이요.”

“니(동생)는?”

“37등이요.”

“뭐? 37등? 몇 명 중에?”

“39명 중에요.”

곧이어 우리 책상 위쪽 벽에 눈앞에 무시무시한 종이 한 장이 써 붙여졌다.

‘나예 24등 →15등, 동생 37등→25등. 기말고사 목표 등수’

“써 붙여 놓은 등수에서 한 등수만 더 떨어져도 쇠 파이프로 세 대, 등수 두 개 떨어지면 여섯 대다!”

그날부로 우리는 나란히 놓인 책상에 앉기만 하면 아빠의 목표등수를 쳐다보고 한숨을 쉬며 공부 시늉을 시작했다. 동생은 집중이 안 되는지 키우는 거북이 수조 물을 갈아 주었다가, 책상을 닦았다가, 상판 껍질을 커터로 파내기도 했다. 나는 쇠 파이프가 너무 무서워서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절망의 기말고사 성적표를 들고 왔다. 약속대로 아빠는 안테나보다 굵은 정도이지만 속이 꽉 차 있는 쇠 막대로 공중을 두 번 갈라 보더니 바닥에 내려놓으셨다. 설마 개 패듯 패겠나 싶었는지 엄마는 잠자코 나를 모른 척했다.

“나예 18등! 3 곱하기 3, 아홉 대네, 맞제?”

“아빠 잘못했어요! 다음엔 진짜 15등 할게요! 그래도 많이 올랐잖아요!”

반에서 중간 이상으로 등수가 올라간 게 처음이었는데도 이렇게 맞아야 한다니. 그때 아빠 심기를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공포로 절규하던 사춘기 소녀의 종아리에 쇠줄이 나고 살이 터져 부풀었다.

“그다음, 니는 뭐? 34등? 공부를 아예 안 했네이? 몇 대고? 계산해 봐라.”

계산할 수 없던 동생의 종아리에 네 대째 휙휙 소리를 내며 아빠의 매질이 가해질 때 엄마가 그만하라며 몸으로 막고 말렸다. 동생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아홉 대 맞을 때 뭐 하시고, 남동생은 초반부터 방어해 주신 건지. 동생보다 더 잘하고 더 맞았다는 생각에 억울함과 엄마에 대한 서운함으로 더 큰 소리의 울음이 터졌다.

맞은 다음 날부터 하복 치마 아래에 드러나는 붉고 푸른 멍 자국을 감추기 위해 종아리를 반쯤 덮을 수 있는 아빠의 '진회색 신사 양말'을 신고 학교에 갔다. 그런데 평소에 잘 통과했던 교문에서 복장 단속에 걸리고 말았다. 한쪽에 걸러진 학생들의 복장을 훑어봤다. 레이스 양말, 귀걸이, 파마, 춘추복까지. 누가 봐도 날라리 무리 속에 내가 꼈다. 레이스 양말이 아니라 신사 양말 때문에, 체벌 자국을 감추기 위해 신은 아빠 양말 때문에. 창피하고 비참했다. 귀를 잡고 오리걸음으로 운동장을 돌다가 쓰러졌다. ‘일어나’라는 학생주임 선생님의 소리를 듣고 다시 일어나서 땀 흘리며 우는 오리가 되어 운동장 테두리를 완주했었다.

매타작 이후 아빠로부터 피멍 든 여름의 종아리에 대한 사과는커녕, 그날 일에 대한 어떤 말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그 대신 그날 이후 공부하란 얘기도, 체벌도 없었다. 아빠의 말투도 한결 부드러웠다. 폭풍전야는 아닐까, 고요한 분위기가 두려워서 아빠 말을 더 잘 들었다.


아침마다 엄마가 “일어나라. 지각한다.”라며 15분 넘게 깨우셔도 도저히 못 일어났다. 그런데 아빠가 안방에서 내 방 쪽으로 걸어오시는 둥근 발소리가 거실 바닥의 진동으로 전해져 오면 심봉사가 심청이를 만날 때처럼 눈이 번쩍 뜨였다.

“피곤하나?”

말끝을 늘이며 나직이 말씀하시면 나의 몸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아까부터 일어나 있었는데요?”

말똥말똥 한 목소리로 답하는 동안 내 손은 태연하게 이불을 개고 있었다.

어느덧 고등학교 진로를 정할 때가 오자, 인문계와 실업계라는 선택지를 두고 아빠는 야멸차게 말씀하셨다.

“용꼬리 보단 뱀 머리다. ○○여상 가서 기술이나 배워라. 졸업하고 공장 들어가가, 공순이로 일하면 된다. 아빠도 초등학교 때는 전교 1, 2등 다투기도 했지만, 돼지 함 키워 볼라고 농고 들어갔다 아이가.”

딸한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화가 났다. 당시 ‘실업계’라고 불리던 특성화고를 간다면, 거기서 내신 점수를 상위권으로 유지하다가 수시입학으로 대학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빠의 ‘공순이’라는 비하 발언을 듣고 나서는 절대 아빠 생각대로 따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대학을 보내줄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지만, 보내줄 마음도 애초에 없는 것 같아 반발심이 생겼다.

“저 ○○여고나 ○○여고 가서 열심히 공부해 볼게요.”

내 바람대로 여고에 들어갔지만, 뱉은 말과 달리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다. 수학이 영어보다 조금 더 싫어서 문과를 택했고, 역시 수학, 영어 기초가 안 되어 점수는 너무 낮았다. 이른 포기를 하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직업 반 중에 ‘조리반’을 택했다. 학교가 아닌 시내에 있는 조리학원에 1년 동안 수능공부 대신 배우는 과정이었다. 조리사에 대한 꿈을 일찍 가졌다거나 요리를 잘해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하니 만들어 먹으면 맛있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고, 무엇보다 수학, 영어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나는 갑자기 만들어 낸 호텔 조리사의 꿈을 이제야 찾은 나의 적성이라고 아빠한테 홍보했다. 친구들보다 일찍 진로를 정한 것이 남들보다 한 발짝 앞선 거라고 말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고 수학, 영어 때문에 이미 가망 없는 수능 공부에 1년을 버리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아빠는 대답 없었다. 언제나 그는 골똘히 생각하신 뒤 내가 잊을 만하면 답변하셨으니까, 아빠는 내 진로에 있어서는 현실적인 사람이니까 내 주장이 먹힐 것도 같았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이 되어서야 나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니 생각이 정 그렇다면 열심히 한번 해 봐라.”


수학과 영어 과목이 없는 고등학교 3학년의 세상에서 나는 마음껏 1등 혹은 2등을 했고, 역시 ‘뱀의 머리’는 내 적성에 잘 맞았다. 행복은 성적순인 것 같았다. 공부에 뒤늦게 열의가 생기고 노력한 만큼 이루어 성취감도 느꼈다. 조리학원에서 식칼 다루는 솜씨도 자신만만해졌다. 차라리 아빠 말을 따랐다면 수월하게 좀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갔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밀려왔다.


아빠는 내가 인문계에서 학문을 배우기보다는 기술을 터득하는 쪽이 더 잘 맞는다는 걸 중학교 3학년 때 당사자인 나보다 먼저 알아보신 거 같다. 그땐 서운하고 억울했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 말이 꼭 틀리진 않았다. 방식은 거칠고 표현 못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 나름의 관찰과 판단이 있었던 거다. 진로를 결정하던 순간마다 매정할 정도로 현실적인 제안을 하던 아빠는, 결국 내 선택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정말이지 아빠는 언제나 내 뜻을 꺾지 않았다. '말없이 지켜봐 주는 것'이 아빠의 허락이자 응원이지 않았을까.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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