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함수를 공부하는 아빠

by 나예스

나는 수포자였다.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음악, 미술시간과 달리 수학시간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쳐져 있었다. 6학년이 되어서야 등록한 영. 수학원에 가서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몰라 답답함만 가중되었다. 그렇게 수학시간마다 기초가 부족해서 못 알아듣는 세월이 길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래도 대학교에 들어가려면 아예 수학을 포기해서는 안되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던가 무려 70점이나 맞은 적이 있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 '원의 성질' 파트만으로 중간고사를 치렀을 때였다. 기초가 없어도 벼락치기가 가능한 파트였다. '하면 된다'라는 희망 구호에 잠시 물들었던 나에게 고등학교 수학은 차원이 다른 세계였다. 수학시간만 되면 졸음이 쏟아졌다.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는 쭈글쭈글한 침 자국까지 생겼다. 머리를 휘날리며 눈동자를 뒤집어서 선생님을 곤혹스럽게 한 학생들 중 하나였다. 선생님은 회색 재생종이인 갱지에 빡빡하게 공부한 흔적을 쓴 '빡지 양면 3장 숙제'를 내는 것으로 복수를 하셨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하루는 퇴근 후 아빠가 물어보셨다.

"니 혹시 삼각함수 배우나?"

"삼각함수요?"

"싸인, 코싸인 같은 거 말이다."

"네, 배우긴 배웠는데..."

"그거 어떻게 푸는 건지 아빠 함 갈쳐 줘 봐라."

"그게요, 저도 작년에 배운 거라 교과서는 있는데 저도 잘 몰라서요."

갑자기 무슨 테스트를 하려고 그러시는 걸까. 성적 안 올린다고 맞아 죽는 건 아닐까.


"그라믄 교과서 니 안 쓰제? 그거라도 줘 봐라."

왜 느닷없이 삼각함수를 물어보시는지 의아했다. 아빠는 회사에서 풀고 싶은 문제가 있다고 하셨다.

"지금 회사가 크레인을 만드는 회사거든. 그런데 크레인이 평지에서 굴러갈 때는 수평이 잘 맞는데, 언덕에서 내려만 갔다 카면 바퀴 한쪽이 미세하게 자꾸 틀어지는 기라. 결국엔 빠져 뿔겠제. 내려갈 때 무게가 더 쏠려가 그런 거 같은데 그걸 알아내야겠는데."

내 침자국이 묻은 작년 교과서를 내밀었다. 다음날 아침 주말이라 아빠는 주무시고 계셨다. 안방 밥상 위에 여러 번 연필로 끄적인 흔적의 교과서와 지우개가루가 널브러져 있었다. 몇 시까지 공부하시고 주무셨을까. 왜 아빠는 농업 고등학교를 나와서 일하시면서 삼각함수를 푸느라 잠을 포기해야 하고, 나는 공부 하나만 해도 되는 학생인데 그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가. 내가 공부를 잘해서 아빠를 가르쳐드렸더라면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셨을 일인가. 공부 잘해보겠다고 우겨서 간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용꼬리가 된 내가 부끄러웠다.


한 이틀 공부 하시더니 아빠는 내 교과서를 돌려주셨다. 감히 문제는 잘 푸셨냐고 여쭙지 못했다. 아빠는 며칠 동안 큰 역기 모양의 괴상한 물건을 들고 퇴근하시더니 어느 날 기쁜 소식을 알리셨다.


"이게 뭔고 하니, 바퀴랑 실린더 샘플 아빠가 만든 건데, 인자 된다. 아빠가 공부해가 알아냈다. 언덕에서 굴려 봤거든! 일자로 자알 굴러 가는기라."

"제 교과서로 공부해서 그걸 발명했다고요?"

싸인, 코싸인, 탄젠트가 건설기계 회사에서 실제로 쓰이다니. 아빠 회사 윗사람이 이걸 어떻게 했냐고 놀라 자빠지더라는 셀프 영웅담을 호기롭게 들려주셨다. 그동안 학교 공부를 교양 교육으로 생각해왔는데 아빠는 '학교 교육의 목표' 또는 '교과서의 쓸모'에 대해 몸소 보여 주고 장광설이 추가되었다.

"서울대생 드간 사람들 붙잡고 물어봐라. '교과서 위주로 집에서 공부했십니더', 하지. 제일 중요한 게 다 들어 있는 게 교과서인 기라."


아빠가 중학생이었을 때 농업과 양돈업에 관심 가지지 않고 과학 기술 연구를 위해 공부했다면 인생의 방향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참으로 비운의 인재라고 생각했다. 평생 책 읽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은 아빠가 '독서해라', '위인전 읽어라' 하시며 싸구려 철제 독서대를 사 주셨을 때는 그저 듣기 싫은 잔소리였었다. 그런데 밥상 위에서 밤새 내 수학 교과서로 아빠 생업에 대한 공부를 하신 그 까만 연필자국과 흩어진 지우개 가루들이 있었던 그날 아침의 풍경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공부는 학생 때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평생 어느 때고 먹고사는 데 필요하면 찾아서 하게 되는 게 공부라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수포자였던 내가 홀서빙을 하다가 직업의 대 공사를 시작하고 둔한 머리로 한 번 더 점프하기 위해 서른 넘어서야 세무와 사무 관련 자격증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빠의 삼각함수 공부 흔적이 큰 힘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숫자공부는 생활이었고, 늦게라도 필요하면 '공부하게 된다'라는 것, 그리고 늦게라도 '하면 된다'라는 것. 아빠가 의도하셨든 하지 않으셨든 나에게 교육의 성과를 이루셨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