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도 괜찮아요

by 나예스

“봐라. 오늘도 이만치 살렸다.”

아빠의 손가락이 잘린 지 겨우 두 달째였다. 새벽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는 오른손을 두세 번 오므렸다가 펴 보였다. 손바닥을 펼칠 때마다 벌써 3분의 2 정도까지 펼쳐진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자랑스레 몸을 일으키며 파르르 떨고 있었다. 되게 아플 것 같은데, 분명 손가락은 뿌듯해하고 있었다.

“사람은 자고로 몸을 움직이야 된다. 심장부터 해가, 이 핏줄에 피 흐르제, 모든 오장육부가 다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사는 거다, 알긋나? 기계도 안 쓰면 녹슨다 아이가. 사람이 운동 안 하면 몸에도 녹슨다. 그거를 ‘산화’라 칸다. 걷고, 운동하고, 움직이면 살도록 설계가 되어 있다. 멈추면, 그날로 바로 죽는기라.”

평소에는 과묵하다가 이날은 낮은 목소리 톤으로 찬찬히 일장 연설하는 아빠의 눈가 잔주름이 파였다.

‘멈추면, 죽는다.’ 그것이 아빠의 쉼 없이 살아온 날을 대표하는 말이었다. 물론 술 한잔이 들어가면 못해도 한 달은 누워 술만 드셨다. 가장의 의무감이나 삶의 의지가 없었던 걸까? 아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놔 버리고 술고래가 되었을 때조차도 아빠는 도무지 쉬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살기 위한 일이라는 듯 꾸역꾸역 소주를 들이키며 괴로움에 찌들었다. 엄마는 더 괴로워했지만 일이 많아서 누워 있을 여유가 없었다. 속상할 때마다 태평하게 술이나 퍼마시면 자식은 누가 벌어먹이고 키우냐고 말해도 아빠의 귀에는 그 말이 닿지 않았다. 엄마는 쉴 새 없이 일해서 자식 셋을 키워냈다.


아빠가 양돈업을 접고 도시로 와서 처음 시작한 일은 흔히 말하는 ‘건설 노가다’였다. 한동안 파스 냄새가 풍겼고, 좀 더 지나니 기름 전 내도 났다. 용접공을 거쳐 어디서 돈 많이 주는 직업을 소개받았다며 정화조를 땅에 파묻고 오시기도 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거라!”

한 날에는 똥을 뒤집어쓴 건 아닌지, 오물 수거차 냄새를 풍기며 귀가하신 날도 있다. 아빠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코를 싸쥐었다. 그럴 때면 설마 저 옷을 내 교복과 같이 세탁기에 돌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가정환경조사서 아버지 직업란에 ‘토목업’이라 적는 것과 실제 아빠가 집에 오실 때 풍기는 냄새에는 차이가 있었다. 아빠가 그렇게 평생 막노동꾼으로만 일하실 줄 알았다.

어느 날, 명함을 보여준 아빠. 이름 앞에 붙은 ‘공장장’. 딸에게 건네는 첫 명함이었다. 그러나 몇 년 후 어느 날, 산업용 중장비를 만드는 공장에서 기계가 아빠의 가운뎃손가락을 삼켜버린 것은 순식간이었다고 했다. 오른손 목장갑의 실오라기 하나가 늘어져 있었는데 기계를 손보다가 그야말로 순식간에, “어, 어!” 한 사이 팔꿈치가 두 바퀴 돌려졌고, 다시는 가운뎃손가락 두 마디를 찾을 수 없었다. 병원에서 마디 중간인 채로 끝을 봉합해 준 의사에게 아빠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의사가 약지와 새끼손가락도 이미 신경과 제 기능을 잃었고, 너덜너덜해서 생활하기 불편할 거라며 그 둘마저도 자르라고 제안한 것이다.

“멀쩡히 붙어 있는 손가락을 미쳤다고 자르나! 니 손가락이라도 그리 말할 거가!”

삿대질을 퍼붓고 병원을 나왔다고 내게 들려줬다. 아빠는 내 앞에서 다짐했다.

“내 이 손가락 살리나, 안 살리나 두고 봐라.”

소독할 때 보인 아빠의 손은 퉁퉁 부어 마치 헝겊 조각으로 만든 손가락 인형 같았다. 두 손가락 모두 다 반쯤 으깨진 채로 부어 꿰매져 있었고, 뼈가 어떻게 끊어진 건지 본디 접혀야 할 방향과 상관없이 거치적거려 보였다. 내가 봐도 의사가 어렵게 얘기한 수술방법이 차라리 살아가기에 더 나은 편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붕대를 풀자마자 아빠는 새벽에 사라졌다. 엄마가 아침밥을 차릴 때쯤에야 돌아왔다. 어디를 가는지 끝까지 함구하고 새벽마다 사라지는 게 반복되자 엄마는 아빠 뒤를 밟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빠는 동네 공원으로 갔다. 당연히 숨겨둔 여자는 없었다. 대신 철봉 매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왼쪽은 다섯 손가락으로 철봉을 잡고, 오른손은 으깨진 약지와 새끼손가락 단 두 개만 철봉에 걸고 괴로운 신음으로 버티었다.

“그래도 그렇지, 어디 가면 간다고 말을 해야 알지요. 엄마가 아빠 새벽 다섯 시마다 사라지니까 어데 여자 생긴 거 아닌가 싶어 뒤쫓아갔다는데요. 철봉 하는 거 보고 울고 왔다고.”

“말하믄? 따라올 거 아이가. 뭐 보기 좋은 경치라고 그걸 보여주노?”


산재 보상금이 들어올 통장을 따로 개설한 아빠는 ‘내 손가락 값’이라며 절대 통장을 내놓지 않겠다며 혼자만 간직했다. 공공연한 아빠의 비상금이었다. 고집대로 살 수 있는 아빠의 성격이 부럽기도 했고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여중 교복 살 돈이 없어서 엄마가 한숨 쉬던 차에 입학식 날 졸업반 학생이 벼룩시장에 중고로 내놓은 색 바랜 큰 교복과 체육복을 내가 기뻐하며 각각 300원에 사 왔던 형편이었다. 교복 치마는 큰 치수뿐이어서 허리춤을 두 번 말아 접어 입어야 겨우 무릎을 덮었고 치마 끝은 볼품없이 펑퍼짐했지만, 우리 가정 형편에 새 교복은 무슨. 그런 내가 자랑스러웠는데. 막내 고모에게 물려받은 복고 패턴의 낡은 책가방 바닥 모서리가 낡은 양말 뒤꿈치처럼 해져서 뒤에 걸어오던 친구가 가방 바닥을 손바닥으로 받치는 시늉을 하며 가방 사야겠다며 조언해 줄 때였는데도 아빠는 ‘손가락 값’은 내놓지 않았다. 다섯 식구 중에 네 사람은 모두 열 손가락이 있었기에 그런 아빠의 비장한 다짐을 존중하고 인정했다.


몇 달 뒤, 아빠는 그 손으로 특수용접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셨다. 그것도 실기점수 99점으로 합격하셨다고 나에게 두 번이나 자랑했다.

“십몇 년 일했다 카는 옆의 사람도 80점을 못 넘겼는데, 99점이라는 거는 그냥 마, 100점이란 소리다. 완벽하면 신이게? 심사위원이 지나가다가 내 기술 보디만 끔쩍 놀래고, 손가락 없이 하는 거 보고 2차로 놀래 뿌렀다 아이가.”


이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 과묵하기만 한 줄 알았던 아빠가 유독 나에게 아빠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은데, 인정받고 싶은데, 그 말을 맏딸인 내게 그나마 많이 하셨고 나는 그런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아빠의 딸이라면, 나도 무인도에 떨어져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빠처럼 그렇게 ‘봐라’ 정신으로 증명하고, ‘두고 봐라’라는 오기로 덤비면 못할 일이 없을 거 같았다. 전문가가 봐도 가망 없는 손가락을 집념으로 살려내는 근성, 그 피날레로 그냥 용접기능사도 아니고 ‘특수’ 용접기능사를 무려 99점에 취득했다니.


이런 식으로 아빠는 누군가가 ‘불가능’하다는 걸, 심지어 그 분야 전문가가 한 말조차도 자연의 이치에 어긋난다고 여겨지면 뚝심 있게 거절했고, 죽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새끼돼지든, 고장 난 기계든 화초든, 그게 아빠의 손가락이었든) 고집스럽게 고치고 살려내셨다. 엄마도, 아빠도 휴식다운 휴식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나 역시 온전한 쉼이라는 걸 배운 적 없었다.


작년에 나는 7개월 일을 쉬었다. 어반스케치라는 그림 그리기나 필라테스 운동 등 새로운 걸 배우거나 안 해본 것에 도전하느라 여전히 바빴지만. 진짜 쉼을 누려보겠다고 다짐하며 여행도 가고 베란다 정원에 공을 들였다. 봄날에 심은 튤립이 나의 베란다 정원에서 봉우리를 틔울 때 커피 한잔을 들고 바라보는 그 잠깐이 뭐라고, 잘 사는 느낌을 받았다. 쉬는 게 이렇게 좋은 거였다니!


필라테스도 두 달간 했다. 어른 되고 나서 20년간 운동다운 운동을 해보지 않아서 그런지 최근에 체력이 너무 떨어졌었다. 한약으로 기운을 보충하는 것만으로는 체력을 끌어올리지는 못했다. 밥맛만 더 좋아졌다. ‘매트 필라테스’ 수업에 등록하고 처음 수업 몇 번은 도망치고 싶었다. 필라테스에서 ‘내가 제일 못 나가’였다. 거울로 보이는 몸매가 비교되었고, 나만 균형을 못 잡고 있었다. 수업에 참여하는 당일 아침까지도 며칠 전 수업에서 붙은 알이 풀리지 않았다. 강사님의 동작을 따라 할 수 없어 나만 그런지 곁눈질로 옆 사람 눈치를 보는 창피하고 절망스러운 두 달을 보내던 어느 날, 약간 할 만해진 날이 왔다. 나도 이제 운동의 효과가 나기 시작하는 걸까. 그런데 강사님이 돌아다니면서 자세를 잡아주다가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 이 동작을 할 때 허벅지 옆과 옆구리가 엄청나게 당겨야 해요. ‘내가 지금 동작이 좀 편안하다, 또는 좀 할 만하다’라는 건 뭔가 자세가 잘못되었다는 거예요.”

동작을 따라 하느라 숨 막히고 얼굴이 달아오를 때 필라테스 강사님의 얘기가 들렸다. 그때 아빠의 ‘사람은 멈추면 죽는다’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인생이 정말 그런 걸까. 뭔가 현재가 편안한 상태라면 일이 잘못되고 있는 걸까? 멈춘 건 뒤처진 거라고. 남들은 달리고 있으니까, 내가 정답을 향해 가려면 아파서 근육이 땅겨지고 조금 찢어지더라도 이겨내야만 하는 걸까.


직장을 쉬면서 처음 열흘가량 안절부절못했다. 아침마다 퇴사한 것이 후회스러웠고, 통장을 들여다봤다. 내 나이 마흔에 그전보다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두려웠지만 2주일이 지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비로소 내가 보이고, 내가 배우고 싶었는데 한가한 시간이 없어서 못 했던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멈추자, 또 다른 무엇이, 꼭 필요했던 활동이 시작되었다. 하던 것을 멈춘다고 내가 죽는 건 아니었다. 몸에서 심장이나 폐 같은 장기는 멈추는 날이 곧 죽음을 맞이하는 날이다. 하지만 쉼이 꼭 필요한 기관, 멈춰줘야 할 부위는 따로 있다. 몸의 근육, 눈 근육은 멈춰줘야 살 수 있다. 그러라고 잠이 오는 거고 자연의 섭리다. 하루를 끝내고 자면서 꿈이 시작되듯이 그동안 너무 지쳤던 나에게 7개월은 달콤한 단잠이었다. 좋은 꿈을 꾼 듯 즐거웠고, 누적된 마음의 피로가 풀렸다.


내가 이때쯤 반년가량 쉬지 않고 아등바등 생활비만 벌어왔다면 지금쯤 더 큰 병이 왔을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쉬어가야 할 때가 있는 것 같다. 한숨 자고 일어나서 다음 날을 살아갈 힘을 얻듯, 몸과 마음을 이렇게 쉰 힘으로 또 잘 살아가고 있다. 아빠와는 다른 주장의 뚝심으로 말하면서.

“봐라, 그때 내가 쉬길 잘했지.”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