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차: 배움
학생(學生)은 배움을 업으로 삼아 사는 사람이다. 글자를 깨칠 때부터 경제활동을 업으로 삼기 전까지의 기나긴 세월을 학생이란 신분으로 살았다.
수업시간에 몸뚱이는 성실하게 자리를 채웠으나 마음은 콩밭에 가 있을 때가 많았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갈 때 교과서 귀퉁이 낙서나 딴생각으로 시간을 채웠다. 방과 후에는 취미동아리활동을 했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야 나중에 좋은 대학 가서 좋은 회사 들어가거나 좋은 사업을 하겠지만, 내가 그런 사람이 될 거라는 상상력이 없었다. 왜 그렇게 일찍 가능성을 포기했을까.
공부를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생각했고, 내 적성이 몸을 활발히 움직이는 기술이나 다른 사람을 위하는 서비스 쪽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아니었다. 그것밖에 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은 완성된 성인의 전단계였다. 웬만한 어른만큼 알 거 다 알고, 바로 일해도 일꾼으로 손색없는 사람. 바로 써먹어야 할 배움이 무엇인지 몰랐고, 대충 보아왔던 일, 아르바이트로 체험해 본 일을 기반으로 미래 직업을 정했던 거였다. 번화가에서는 번화한 날에 쉬기는커녕 더 바쁘게 일해야 하는 직업군밖에 보이지 않았다. 식당, 카페, 백화점, 옷가게, 화장품가게, 미용실, 영화관.
4년제를 졸업하고 나서 시작하는 일이 뭘까 생각해 보니 막연하게 생각했던 직업군 몇 개가 떠올랐었다. 의사, 판사, 교사, 통역사, 화가, 과학자, 연구원, 공무원, 회사원. 2~3년제 졸업 후에 유추할 수 있는 직업은 간호사, 조리사, 제빵사, 영양사, 조향사, 피부관리사, 미용사, 어린이집 선생님, 제품 디자이너, 경호원 등이었다. 내가 그때 결론 내린 바로는 공부 잘해서 4년제 대학교에 들어가면 머리가 고되지만 공식적으로 주말에 쉴 수 있는 직업을 갖게 되고, 공부 못 해서 2년제 대학에 들어가면 대체로 주말이 없고 손과 몸이 고된 직업을 갖게 된다고 생각했다. 공부할걸, 할 때 할걸, 이라고 할 때 할걸... 이젠 너무 늦었다고.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을 텐데, 몇 개의 과를 두고 길을 급히 골라야 했다. 배스킨에 가서 파인트 통에 평생 한 가지 맛만 퍼 담아라 하는 것만큼이나 억지스럽고 답답한 일이었다. 8살부터 19살까지 그렇게 오랜 세월 학생으로 살았는데, 결국 '공부하는 게 맞던지' 적성평가 혹은 기회를 주는 긴 과정이었다. '앞으로 머리 쓸래, 몸 쓸래?' 하는.
30대 때는 자격증 공부에 집착했다. 필요한 기술을 배우고 연마해서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뿌듯하고 재미있었다. 일 하면서 여가 시간을 공부로 채우다 보니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학생이란 신분이 부러웠다. '학생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도 갔겠네'와 같은 헤픈 후회를 하면서 배움의 때를 뒤늦게 아쉬워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그렇게 열심히 배우고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왜냐 하면 학생 때의 배움은 내게 의무였지, 목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배움의 때가 나에겐 30살 이후에 왔다. 나의 필요에 의해 순수한 배움을 원했던 때였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했다.
배움에는 때가 있다. 하지만 그때는 모두 다르다. 배움의 즐거움, 앎에 대한 희열, 깨달음에서 오는 성찰, 이 모든 것이 자발적인 배움에서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의 스승인 J 삼촌이 놀러 올 때마다 반복해서 들려주던 말이 생각난다.
"저는 그림이랑 달리기는 잘하는데 공부는 쫌... 못 해요."
"그런 공부만 공부가 아니야. 배우는 건 다 공부야. 미술도, 운동도 다 공부야. 넌 미술공부랑 달리기 공부를 잘하지."
다 공부다. 자신이 잘해보려고 계속 연구하고 시도하는 건 다 공부다. 자신이 주어진 환경과 상관없이 어떤 대상에게도 배울 자세가 되어 무언가를 시도했을 때가 배움의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공부에는 때가 있다. 그 '때'는 다 다르다. 이 글을 보고, 구독하는 것도 공부다. 지금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