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내 모습은 어제의 선택

33일 차 : 선택

by 나예스

'오늘의 내 선택이 미래의 나를 만든다.'

오늘 내 선택에 따라 미래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는 얼마나 희망적인가. 삶은 어찌 보면 간단하다. 수많은 선택이 만든 결과가 현재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지금 내가 하게 될 작은 선택들에 의미 부여를 하게 된다. 습관적으로 해오던 의미 없는 일들을 멈칫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나쁜 선택 대신 좋은 선택을 더 많이 하다 보면 어제 보다 좀 더 나은 내가 되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내겐 삶이 간단하지 않다.

'오늘의 내 모습은 어제의 선택이 만든 결과다.'

현재로 시작하지 않고, 현재로 끝나기만 하는 똑같은 말인데도 어쩐지 못마땅하다. 네가 만든 일이니 네가 책임져라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뭐, 습관 정도는 그럴 수 있다. 졸린 것도 아닌데 차 대신 커피를 선택하고, 습관적으로 편의점에 들러 1+1 행사하는 초콜릿이 없는지 기웃거릴 때 나는 미래의 나에게 미안해진다. 현재의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들 때, 그러다가 어떤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를 마주할 때, 심지어 절망스러울 때 남 탓 대신 벌 받는 심정이 된다. 그때 그랬다면, 혹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땠을까, 하는 후회 말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병이 찾아와 나를 괴롭힐 때, 천재지변으로 재난을 당했을 때, 감당하기 힘든 결과 앞에서 나는 '선택의 결과'라는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 세상에는 담배를 하루 한 갑씩 피워도 건강한 사람이 있고, 착하게만 살아왔는데 대중교통을 타고 가다가 죽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잘못 없이도 집이 망하거나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잘못이 생각이 안 나면 이제 현실 너머의 잘못까지 동원된다. 조상 탓이라던가 전생의 업보라던가, 신이 주는 시험이라던가.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그 말이 달콤한가 보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 말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한 마디라고 한다. 사람의 선택에 따라서 나온 결괏값이 아니라 일어날 일은 네가 아니었더라도 일어난다고. 운명적이고 필연적이었다는 이해의 말은 지나친 책임의 굴레로부터 자유롭게 다시 살아 볼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남편이 가끔 나의 크고 작은 비난을 응수할 때 "왜 남 탓을 해?"라고 묻는다. 여기서 '남'은 남편을 뜻한다. 모두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하면 된다는 거다. 그러기엔 내 원형탈모가 더 심해질 것 같아서 싫다.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원인을 찾다 보면 내 결혼이란 선택이라던가 내가 출생할 수 있게 된 부모님의 선택 같은 것까지 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만 나는 자기변호에 열을 올리고 남탓할 대상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피치 못했던 상황을 이해받으려 하고, 누군가의 탓이 되어야 내 탓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인가 보다.

어제 어떤 작가님의 글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쓰지 말아야 할 일은 쓰지 않은 점이 브런치를 하는동안 가장 잘 해온 일'이라 했다. 많은 사람이 후회할 일을 자발적으로 만든다. 내가 그러고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선택한 일인데도, 아버지에 대한 에세이를 계속 쓰기가 어려워졌다.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좋은 것은 내 안에서 의미 부여가 과하게 된 추억이며, 나쁜 것은 남 탓을 통해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다. 좋은 것만 써야 할까? 아무것도 안 쓰면 되지 않을까? 나는 왜 세상에다가 나한테 덕 될 것도 없는 일을 긁어 부스럼 만들고 있는 걸까. 처음이 찜찜했다면 계속 쓰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두렵다. 선택에 대해 비난받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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