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일 차:불안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끝이 없다. 예전보다 잘 살고 있는데도 불안하다. 최소한 돈이 없어서 생필품을 못 사진 않는다. 그래도 내가 꿈꾸는 부의 척도 중에 '한우 지수'가 있다. 정육점에서 호주산 미국산이 아닌 냉장 한우를 100g당 가격을 확인하지 않고 척척 집어 사고 싶다. 내가 과거의 나보다 좀 더 잘 사는 동안 남들도 점진적으로 잘 사는 것 같아서, 내가 잘 사는지 모르겠기에 잘못 살고 있나 싶어 불안하다.
미국, 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급 강하와 추락 위주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내 주식계좌가 불안하다. 지구 뒤편에서는 총알을 장전하고 있는데도 나는 어쩌면 기회일지 모르는 폭락장에 쓸 여분의 총알과 깡이 없다. 아득한 30년 만기의 집담보 대출을 없애서 월세 같지 않은 내 집에 살고 싶다. 생애 첫 중고차를 마련하고 싶고, 유류비와 차사고 가능성이 불안하고, AI에게 내 먹고 살 방도를 다 빼앗기는 건 아닌지, 건강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을지,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을지, 노후라는 때가 올지, 이른 아침 폐지 줍기 대신 등산이나 조깅을 할 수 있을지.
그러고 보니, 다 돈에 대한 불안이다.
걱정도 팔자다. 일어난 일에 대한 걱정,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염려로 플랜 A, 플랜 B를 떠올려 보다가 그 불안의 질퍽함에 짓눌려 계획을 그만둬버린다.
바다는 열심히만 노를 젓는 사람에게 도착지에 데려다주지 않는다. '제자리 젓기'가 될 수 있다. 풍랑을 만나면 치명적이다. 올바른 방향으로 잘 저어야 한다. 나룻배가 아니라 보트나 여객선이 더 안전하고 빨리 목적지에 가게 해 준다.
자신감은 통장 잔고에서 나온다는 걸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있었다. 십원, 오십 원, 백 원, 오백 원 소중하게 빈 우유팩으로 저금통을 만들어 모았다. 엄마가 "돈 없다, 돈 없다" 하셔도 살 궁리는 다 되어 있었다. 만기 예적금에 모아둔 끝전을 얹어 더 큰 예적금 풍차를 돌리느라 당장 쓸 돈이 빠듯했던 거다. 내가 갈수록 경제적 자신감이 없는 이유는 모으는 돈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현상유지만 하고 노후준비가 안되어 있어서 불안한 것이다. 돈을 좇지 마라는데 그게 말처럼 쉬우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또 막막했다. 불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초등 4학년 아들이 저녁에 귀신 나오는 어린이책을 재미있게 읽을 때 알아봤다. 자기 전에 분명 무섭다고 할 거면서 왜 읽냐고. 그럼 나는 왜 그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해 왔을까. 아들이 방학 때 굳어버린 휴대폰 게임만 하는 패턴보다는 다시 책을 집어 들게 하기 위한 처방이었다. 역시나 자기 전에 무섭다며 옆에 누워서 편안한 음악을 틀어달라 했다.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눈이 스르르 감겼다.
"안돼! 오늘의 글 제시어가 '불안'인데 이렇게 편안해지면 안 돼."
나의 졸음 섞인 칭얼거림에 아들이 낄낄 웃어댔다.
"엄마. 그거 글 안쓸 거예요? 그냥 오늘은 300자만 딱 채우고 끝내버려요."
그럴 수 없었다. 나 66일 글쓰기 챌린지 오늘 62일 차라 고지가 코앞이라고 자랑도 했단 말이다.
잠잘 때 듣는 수면음악 유튜브를 배경음악 삼아 아들이 짧은 내레이션을 했다.
"알고 보면 다 불안이에요. 잘 때 귀신 나오는 것도 불안이고, 엄마 12시까지 글 못 쓰고 잘 까봐도 불안이고, 나 게임 못하게 할까 봐도 불안이고..." 하다가 저 혼자 자버렸다. 아들의 불안을 재우기 위해 내가 잘뻔했다. 글감 제시어를 상담하다가 "알고 보면 다 불안"이라는 아들의 말에 영감을 받아 침대에 앉아서 이렇게 쓴다. 그리고 '마감이 영감'은 진리다. (마감 10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