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아들의 곤충사랑은 유아기부터였습니다. 만 2세 때 물려받은 곤충도감에서 시작되었지요.
거기에 나온 사진들과 생김새를 관찰하더니 유튜브로 곤충 배틀 영상을 보면서 흥미를 돋우던 아이였어요.
아들의 오랜 곤충사랑은 엄마로서 부담이었어요.
7살 때 사슴벌레를 사준 발단은 이러했어요.
황제전갈과 타란튤라를 키우고 싶다고 전갈과 거미를 사달라고 몇 달을 조르는데 도저히 그런 건 키울 엄두가 안 났어요. 아이들의 호기심에 들여온 생명체는 결국 부모의 몫이 되고 말잖아요?
2년전 구매인증 2022.05.30
정 안되면 사슴벌레를 키우자고 2주 정도 시달리던 끝에 쿠팡에서 분양받았었지요.
넓적사슴벌레 성충 수컷 1마리 (6~6.9cm)와 암컷 2마리(3.4~3.7cm)입니다.
수컷이 원래 암컷보다 큽니다. 암컷은 꼭 집게가 작아서 바퀴벌레 같은 비주얼입니다.
수컷이 먹성이 좋았고 암컷들은 숨기 바빴어요.
밥먹을 때 조차 채집통을 들고 와서 관찰을 계속했던 2022.06.04
암컷들은 젤리는 적게 먹고 어느 순간부터 산란목(썩은 나무둥치)에 계속 갉아 알 낳을 구멍을 만들었어요.
자기 몸통이 반쯤 들어갈 만큼요.
첫 달에 채집통 속 여기저기를 기어 다니는 불그스레하고 미세한 진드기가 발효톱밥에 섞여 들어왔었는지 어쩌다 생겼는지 방충시트를 덮었지만 자꾸 생겨서 바닥재 톱밥을 갈아주었습니다.
그러다 진드기가 보이지 않고 나서는 톱밥을 갈지 않았죠.
암컷 두 마리는 가엽게도 채집통에서 약 3개월 전후로 살다가 흙이 되었던 것 같아요.
아이가 직접 땅을 파서 암컷을 정성스럽게 묻어주었었죠.
수컷 한마리 방생 시켜준 2022.09.23 밤
이제는 수컷이 외로워 보여서 또 암컷 두 마리를 사달라고 하더군요.
그건 안된다고 했어요. 또 사서 가두어 죽이느니 수컷에게 자유를 주자고요.
아이는 방생에 동의해 주었습니다.
마음이 바뀌기 전에 지금 나가자고 하더라고요.
초가을 밤, 굳이 그 밤에 방생시켜 주러 나갔지요.
"잘 가~! 행복하게 살아야 해! 엄마 잠깐만요.. 사진 찍어 주세요...!"
아이는 어두운 사진으로 성이 안 찼는지 굳이 잘 숨어 들어가고 있는 풀 앞까지 들춰 플래시까지 키고 사진을 여러 차례 찍어달라고 하더군요. 사슴벌레는 피곤하겠지만 그래, 이제 안녕이다 싶었어요. 속이 후련했어요.
이제 산란목이었던 썩은 나무둥치로 손으로 바스라 뜨려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했어요. 쉽게 부숴지더군요.
그런데...
리 스타트. 유충이 있었던 겁니다.
사슴벌레 2세들
아이는 서운한 눈물은 기쁨의 눈물로 변신했습니다.
쪼그려 앉았던 몸을 솟구치며 신나게 채집통을 안고 집으로 왔지요.
나무속에 3마리나 자녀들 발견,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지요.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윤회인가.
2022.09.23 산란목 속에 있던 3마리의 녀석들
암컷들.. 죽을힘을 다해서 나무에 구멍 파더니 할 일 하고 갔구나..
뭉클하고 가여웠습니다. 혹시 톱밥에도 있을지 몰라 일단 톱밥이 담긴 통도 버리지 않고 있었는데 2주일 뒤 밤에 끽끽 통 긁는 소리가 나서 살펴보니 저 작은 녀석들이 채집통을 긁는 소리였어요.
2022.10.03 유충들 3마리 추가 발견
녀석들을 1마리당 1통을 차지하며 발효톱밥을 부지런히 먹어치웠습니다.
어느새 몇 달이 흐르고 어른 손가락 굵기로 자란 녀석들.
2023.05.19 허물을 벗고 나온 첫째 왕왕이
제일 처음 알을 깨고 나온 '왕왕이'는 수컷이었습니다.
2023.05.23 애 벌이는 암컷, 번데기에서 갑충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2023.06.25 째끔이도 암컷
2023.06.25 깰끔이도 암컷
수컷 1마리, 암컷 3마리가 태어나자 아들은 수컷 뿔싸움을 보고 싶은데 배틀 상대가 없다고 아쉽다 하더군요.
2024.08.02 사슴벌레 3세 손주가 태어남
2학년이 된 아들이 한 날은 속상한 목소리로 말하더군요.
"엄마.. 저 어떡해요?... 사슴벌레들이.. 죽었어요ㅠㅠ"
"몇 마리?"
"큰 턱이랑 암컷이 죽고.. 힝ㅠ 며칠 전에 태어난 왕턱이는 살아 있어요."
"아이고야.. 그러니 잘 살펴주라고 했잖아.. "
"큰 턱이(수컷)는 집게를 X(엑스) 자로 하지도 않고 뒤집힌 채로 죽었고.. 암컷은 머리가 아예 떨어져 나가서 부서져 있어요.. 묻어 줄게요.."
아들의 설명에 의하면 수컷 사슴벌레가 죽을 때는 벌린 집게를 오므려 교차한 채로 죽는다고 합니다.
안방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 묻어준 걸 들킨 적이 있던 아들에게 저는 경고했어요.
"너 또 엄마 화단에 묻지 마~!"
경고는 했으나 뒷 일을 추궁하진 않았습니다.
2024.11.01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사슴벌레 3세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밤에 특히 뽀득쁘드득 통 갉는 소리가 한 번씩 들려옵니다.
♡남턱이♡는 가장 먼저 발견한 넓적사슴벌레 3세인데 아들의 소망을 듬뿍 담아 이름에도 수컷향기가 느껴집니다. 태어난 지 3개월이 되었는데 같이 발견된 세 마리 중 가장 크네요. 왼쪽 병의 이름 없는 녀석과 사이즈가 2배 차이 나네요. 크기가 2배 차이 나면 수컷 확정이라 점쳐 봅니다. 혹시 모르죠. 2세 때 5개월 후 태어난 막내가 가장 큰 수컷이었던 걸 생각해 보면 모를 일입니다.
이 녀석들은 야생의 순리를 거르고 사람에 의해 판매된 1세대 녀석들의 손자입니다. 따뜻한 방 안에서 발효톱밥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한 번도 바깥세상을 구경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을 향한 갈망, 욕구 같은 것을 느낄까요? 아니면 그런 세상이 있는 줄 모르니 그냥 살아가는 걸까요?
답답하다는 것만은 사실일 것 같습니다.
성충은 길면 2년을 산다고 하는데 저희가 경험하기에는 약 1년가량 살아주었던 것 같아요. 산란할 장소를 위해 계속 나무에 구멍을 파는 암컷들은 힘들어서 잏 낳고 죽거나 알 낳기 전에도 죽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