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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지 않아도, 아이 낳지 않아도 괜찮으면 좋겠다

프롤로그

by 온 아무

결혼한 지 몇 해가 지나면서, 사람들은 나에게 아이가 있는지 물었다. 아이가 없다고 하면 자연스레 “딩크구나? 요즘은 아이 안 가지는 부부도 많더라.”며 우리를 아이 계획이 전혀 없는 부부로 생각하곤 했다. 배려는 담겨 있었지만, 이해가 담긴 대화는 아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아이가 없다는 말에 그저 “그렇구나.” 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 없는 부부 = 딩크’라는 단순한 등식은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아이 없는 삶이 그들이 원한 선택인지, 그렇지 않은 상황인지는 당사자 외에는 모르는 일이니까.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그런 상처들이 조금이라도 덜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단지 딩크에 대해서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비혼, 동거, 한부모 가족, 모성애. 그리고 여기 다 기록하지 못한 수많은 삶의 모습들 역시 마찬가지다. 나이가 많아도 결혼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이는 있지만 배우자가 없을 수도 있고, 엄마가 되었지만 모성애로 충만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단어 하나로 삶을 재단하려는 시선은 누군가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만들고, 사람들의 시선을 현재에만 머물게 만든다. 그러나 각자의 삶에는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고유한 여정이 있다.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몸부림이 있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 누군가의 삶을 너무 쉽게 이름 짓는 일은,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살다 보면 나의 인생에 대해 책임지지 못할 조언이나 무례를 마주할 때가 있다. 나에게는 "결혼을 했는데, 애를 왜 안 낳아?"라든지 "아직? 낳을 거면 빨리 낳아야지."와 같은 말들이 그랬다. 그럴 때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이내 “뭘 모르네. 좋은 게 좋은 건데.” 라며 자신의 대답에 합리성을 부여하곤 했다.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듣다 보면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문득, 그 말을 건넨 사람의 삶을 찬찬히 살펴본다. 그들 역시 자라온 시대와 환경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며 당연하다고 여겨 온 것들을 되풀이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들을 원망하기보다는, 그 삶의 궤적을 가늠해 보려 노력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다른 길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기를 언제나 소망한다.



그 사람의 모카신을 신고 한 마일을 걸어보기 전에는 그를 판단하지 말라.
-아메리카 원주민 격언-


결혼 이후 나는 아주 사소한 일들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당연함’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는지를 깨달았다. 이를테면 우리 집 화장실 변기 시트처럼 말이다. 남편과 나는 각자 다른 화장실을 쓴다. 내 화장실 변기 시트는 항상 내려가 있고, 남편의 화장실 변기 시트는 대부분 올라가 있다. 서로의 화장실을 쓸 일이 생기면, 각 화장실 주인의 규칙을 지키면 그만이었다. 아이가 있어 성비가 달랐거나, 화장실이 하나였다면 다른 방식을 택했을 것이다.


그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합의를 보면 될 일이지, 관습처럼 내려온 '변기 시트는 내려가 있어야 한다.'는 방식이 정답일 필요는 없다. 나는 변기 시트에 대한 남편과의 간단한 합의 속에서 ‘배려’와 '이해'에 대해 배웠다. 누군가에게 너무 익숙한 방식이, 누군가에겐 불편함일 수 있다는 것. 모든 삶에 정해진 규칙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것들을 천천히, 살아가며 배워가는 중이다.



앞으로의 글은 내가 겪은 난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그런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프롤로그의 제목부터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 낳지 않아도 괜찮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 어쩌면 모순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은 사회가 가능해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결혼과 출산이라는 선택 역시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과 출산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더 이상 강요된 숙명이 아니다. 삶의 방식은 각자의 선택이며, 누구도 서로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그 모든 삶은 저마다의 의미가 있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아이를 낳지 않는 삶이 가볍게 평가되지 않고,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이들이 응원을 받는 그런 세상이다. 각자의 삶 앞에서 쉽사리 충고하거나 그 삶을 쉽게 재단하지 않으며, 누군가의 삶에 함부로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서로의 선택이 존중받는 사회. 나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만일 나에게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런 세상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안녕하세요.

이 시기를 잘 이겨내고자 용기 내어 난임에 대한 첫 글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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