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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가져도 괜찮을 것 같다.

by 온 아무
"애 때문에 사는 거지, 뭐."


결혼식을 마친 뒤, 기혼자들과 결혼생활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을 때면 종종 이런 말을 듣곤 했다. 농담처럼 가볍게 던진 말이었겠지만, 그 길을 아직 걸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런 말에 진심으로 웃을 수 없었다. 대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아이를 가지면 언젠가 우리의 행복도 끝나게 될까?' 하는 생각이 떠올라 발걸음이 자꾸 무거워졌다.


나는 불안이 많은 사람이다. 삶은 끊임없이 흔들렸고, 그 흔들림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 애썼다. 행복하고 싶어서 결혼했는데, 아이 때문에 유지되는 결혼 생활이라면 정말 행복한 걸까. TV에서는 애를 낳은 부부 사이에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고, 커뮤니티에서는 '아이 낳으면 내 인생은 없다.'는 표현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내게 아이는, 우리 부부의 행복과 공존할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지곤 했다.


"여보, 아이를 갖게 되면 우리 사이가 멀어질까?"

"글쎄, 더 돈독해지지 않을까?"


남편의 대답에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나를 낳지 않으려 했었다고 했다. 아빠의 외도와 폭력에 지쳐, 나를 지우러 병원에 갔을 때가 임신 5개월 차였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가 너무 커 당일 수술이 불가하니, 약을 먹고 다시 오라고 했단다.


엄마는 약을 들고 돌아오던 길에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아이를 하나 더 낳으면 아빠에게도 (엄마와 아빠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개념이 생길 것 같았다고 했다. 그때 당시에는 4인 가족이 일반적인 가족 구성 인원이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엄마의 결혼 생활은 바람과는 달리 둘째인 나를 낳고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초저출산, 인구 절벽, 아이 키우기 겁나는 대한민국...


연일 뉴스 헤드라인이 이런 단어들로 장식될 때면 나는 '내가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에 대해 쉽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 한 생명을 낳아 양육한다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지만, 걸어보지 못한 길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다 보니 아이에 대한 마음의 문이 잠겨 있었다기보단 굳게 닫힌 상태였다. 그런 내 마음의 문은 결혼 생활을 하며 조금씩 열리게 되었다.


한 번은 꿈을 꿨다. 남편의 곁에 낯선 여자가 있었다. 말할 수 없는 배신감에 휩싸였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몸이 얼어붙은 듯했다. 분하고 눈물이 차올라 꿈에서 깼다. 꿈은 현실의 불안과 걱정을 반영한다고 하지 않던가. 왜 이런 꿈을 꾼 걸까. 생각을 거듭하다 잠들기 전 무심코 봤던 자극적인 예능 프로가 떠올랐다. 며칠 전 지인과 나눴던 대화도 떠올랐다. 곤히 잠들어 있던 남편이 원망스러워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내 울음소리에 놀란 남편이 졸린 눈을 비비며 물었다.


"여보, 무슨 일 있어?"


우습고 어처구니없었지만, 감정에 북받쳐 꿈 이야기를 했다. 영문도 모른 채 한참 내 얘기를 듣던 남편의 표정은 안도하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이내 나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등을 토닥이기도 했다. 허무맹랑한 꿈 이야기가 끝나자, 나는 민망함에 괜히 "결혼하면 남자들은 다 변한대."란 말도 덧붙였다. 그때 남편이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 생각이 뭐가 중요해. 내가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우리 행복하게 잘 살고 있잖아."


알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는 것은 다른 누구의 몫도 아닌 나와 남편의 몫이라는 것을.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말을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우리가 잘 해낼 수 있으면 되는 거였다. 남편은 결혼 이후에도 다정하고 변함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망설였고, 불안했다. 남편은 여전히 입을 삐죽인 채 눈물 자국이 남은 나를 안아주더니 말했다.


"내가 더 믿음직한 남편이 될게."


그 말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 말 안에 담겨 있는 위로와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고, 처음으로 '이 사람의 아이라면, 낳아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를 대하는 다정함에서 아이를 대하는 그의 다정한 모습을 그려 보기도 했던 것 같다. 그와 아이를 낳아 기른다고 해서, 정말 우리의 삶이 불행해질까?


그날 이후, 내 인생에도 아이를 통해 열릴지도 모를 '행복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두기로 했다. 반드시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마음은 아니었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에 가까웠다.


다른 한 번은 지인과의 대화 때문이었다. 당시 나와 비슷한 시기 결혼한 지인이 출산 예정 소식을 알렸다. 대학 시절부터 나를 잘 챙겨주시던 좋은 분이기도 했고, 결혼 시기가 비슷했던 터라 종종 교류하며 마음을 나눴던 언니였다. 그런데 축하 메시지의 온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언니의 남편은 차가운 도로에서 숨을 거뒀다. 언니의 출산이 고작 일주일 남아 있던 날이었다.


나는 감히 위로의 말조차 전할 수 없었다. 장례식장에 남편과 함께 들어갈 수도 없었고, 지쳐 쓰러져 있다는 언니 소식만 전해 듣고 조의를 표하고 나왔다. 허무하기도 했고, 언니의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나의 좁은 시야로는 형부가 언니에게 짐만 두고 갔다고 생각했다. 남겨진 양육의 무게를 혼자 감당해 나가야 하는 언니 삶의 모습과 함께, 어릴 적 아빠와 다투다 들었던 '너가 내 인생의 짐이다.'란 가시돋힌 말도 떠올랐다.


출산 예정일 이틀 전, 나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이 필요한 게 있는지 물었다. 장례를 막 마친 언니는 가족들이 와 있을 거라며 그 와중에도 날 안심시켰다. 그리고 걱정하던 나에게 너무도 덤덤하게 말했다.


"더 열심히 살 거야."


아이는 언니에게 열심히 살아가야 할 새로운 이유였다. 그 대답을 들은 뒤, 아이가 있는 나의 삶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소중한 존재가 하나 더 있는 삶.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없는 내 삶에 대해서도 상상해 보았다. 그 순간은 생각보다 이를 수도 있고, 내가 먼저일 수도 있으며, 언젠가는 맞이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그가 없는 삶에 우리가 낳은 아이가 있다면, 삶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이 될 것 같았다. 결혼 후에야 진정한 삶의 행복을 알았던 나에게, 또 다른 행복의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그리고 먼 훗날, 내가 알게 된 이 삶의 행복을 아이에게도 알려줄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을 것 같았다. 삶이란 게 언제나 행복할 순 없겠지만, 어딘가 행복은 있다는 것을. 엄마가 인생을 살며 오랫동안 보물 찾기를 하다 찾은 행복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너고, 다른 하나는 너의 아빠였다고.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흔들림의 길목에 선다. 그리고 그 길을 다 지나고 뒤돌아보아서야 비로소 무엇이 정답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 여정 전부를 함께한 유일한 존재는 나 자신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말에 흔들릴 필요는 없다. 내 삶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나 자신이니까.


하지만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첫 발걸음은 언제나 조심스럽고 무겁다. 나는 우리가 그런 발걸음을 주저 없이 내딛을 수 있도록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는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과거의 나처럼 막연한 두려움에 시작조차 못하는 이가 없었으면 한다.



그렇게 나는 아이를 가져도 괜찮겠다고 마음을 열었다. 하지만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처럼 적극적인 시도를 하게 되기까지는 다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계속-


[매주 목요일 업데이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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