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병원의 현실
시험관을 하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어디로 병원을 다녀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병원을 선택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에는 병원의 전문성과 시술 성공률, 의료진의 경력이나 태도, 기술 및 장비, 병원 접근성 등이 있다. 무엇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병원 선택은 달라진다. 저명한 의사를 만나기 위해 지방에서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분들도 있지만, 당시 나에게는 거리도 중요했다.
이전에 자연주기와 인공수정을 시행했던 병원은 유명한 원장님이 계셨지만, 심리적인 부담이 컸다. 퇴근 후 1시간을 운전해 도착해서도 2~3시간이 기본 대기였던 터라 몇 개월 만에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병원을 다닐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가 근무하던 지역에 난임병원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근무 지역에서 산전 검사를 위해 보건소 지정 산부인과를 찾았을 때, 작동하지 않는 엘리베이터와 어두침침한 대기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계세요?”라는 나의 외침이 있어서야 인기척에 놀란 간호사가 허둥지둥 대기실 불을 켰다. 그래서 이사를 온 뒤, 난임 병원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난임병원 선택을 위한 정보를 얻으려면 온라인에서 손품을 팔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손기술’이나 ‘삼신할배’라는 표현을 새롭게 알게 되기도 했다. 그 표현은 낯설고 비과학적으로 느껴졌지만, 나 역시 온라인에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내가 사는 지역의 ‘손기술’이 좋은 ‘삼신할배’ 원장님이 계신 병원을 선택했다.
처음엔 직장을 다니며 시도하고 싶었지만, 내가 선택한 병원의 원장님은 오전에만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셨다. 그래서 고민 끝에 6개월간 난임휴직을 쓰기로 했다. 초등교사라는 직업 특성상 휴직 없이 시험관을 병행하긴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갑작스럽게 대체 수업을 맡아야 할 동료 교사들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예고 없는 담임의 부재에 놀랄(혹은 날 뛸) 아이들과, 보호자 민원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난임휴직이라는 제도가 없었다면 아마도 시험관 시도는 빠르게 포기했을 것 같다. 시술을 진행하며 병원 방문일이 하루이틀 전에 정해지는 경우가 예상보다 많았다. 직장인으로서 갑작스러운 일정에 맞춰 연가를 내고, 대체 인력을 구하거나 업무 조정을 하며 병원에 다니는 것은 큰 부담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 없이 시험관을 진행하고 있을 고단한 모습들을 떠올리면 씁쓸했다.
만약 멀지 않은 곳에 또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휴일에도 운영되는 난임병원을 다녔으면 좋았을 것 같다. 서울·경기권에는 거의 휴일 없이 운영되는 병원도 많이 있는데, 휴일 진료 가능 여부는 생각보다 큰 이점이다. 설이나 추석처럼 연휴가 길게 이어지는 경우, 병원이 며칠씩 문을 닫으면 해당 주기에는 시술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한 달 한 달이 소중한 난임 과정에서 그런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쉬웠다. 인간이란 참 간사한 존재다. 직장인일 때 그토록 기다리던 황금연휴가 시험관 시술을 시작한 뒤로는 싫어질 줄이야.
생리를 시작하자 새로 다니기로 한 병원의 오픈 시간을 확인했다. 인터넷에 적힌 오픈 시간은 오전 8시 30분이었고, 나는 그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병원에 들어섰을 때, 원내 대기 의자에는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접수표를 내민 나에게 안내 직원은 "오늘 오전 진료는 접수가 마감됐는데, 오후 진료라도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물었다. 오후 진료까지는 5시간이 남아 있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나를 보며 직원은 "처음이시라 오후진료로 넣어드렸어요. 앞으로 시험관 하시려면 일찍 오셔야 해요."라고 덧붙였다. 그 뒤로 몇 차례 병원을 더 다니며, 난임병원의 오전 풍경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병원은 8시 30분이 오픈 시간이었지만, 시험관을 준비하려면 그보다 훨씬 이른 시간부터 병원에서의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난임센터로 올라가려면 7시 반부터 작동하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다. 그 앞에는 접이식 의자 하나가 놓여 있는데, 그 의자는 1등으로 온 사람에게만 허락된 금메달 같은 존재였다.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 뒤이어 온 사람들은 옆으로 차례차례 줄을 섰다.
병원에 여러 명의 원장님이 계셨지만, 결국 소문난 한 분께 몰리는 구조여서, 내가 줄을 선 순서가 거의 진료 순서와 비슷했다. 엘리베이터가 작동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 줄은 길게 이어져 복도를 가득 채웠고, 때로는 주차장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그 긴 줄이 나 또한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비슷한 시간대에 많은 사람이 몰리다 보니 주차도 만만치 않았다. 주차장은 넓었지만, 언제나 만석에 가까웠다. 특히나 사람이 많이 몰리는 주말에는 주차장을 오랫동안 맴돌아야 했다. 그럴 때면 조금이라도 대기 순번을 줄이고 싶어 내가 먼저 내려 줄을 서고, 남편은 주차 자리를 찾아 한참을 빙글빙글 돌았다.
시험관을 준비하다 보면 줄을 서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 긴 기다림을 버티는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간이 의자를 들고 와 앉아 있는 사람, 차에서 잠든 아내 대신 줄을 선 남편,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 출근한 남편과 연락하며 혼자 줄을 선 아내. 모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단한 새벽을 견디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긴 기다림 끝에는 병원에 들어가기 위한 무언의 규칙이 있었다.
띵-
7시 30분. 엘리베이터 작동시간이 되어 문이 열리면, 접이식 의자에 앉아있던 첫 번째 사람부터 엘리베이터에 타기 시작한다. 뱀이 또아리를 틀듯 순서가 섞이지 않게 안쪽 공간을 가득 채우고 나면, 엘리베이터는 만삭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난임센터 층으로 향했다.
띵-
다시 문이 열리면 가장 마지막에 탔던 사람은 또아리의 꼬리가 되어 한쪽으로 비켜선다. 순서가 틀어지지 않도록 첫 번째 사람부터 나가며 줄이 서서히 풀리면, 사람들은 각자 번호표를 뽑은 뒤 병원 의자 곳곳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면 다시 긴- 기다림은 시작된다. 그 적막하지만, 발 디딜 틈 없는 공간 속에 핸드폰을 뒤적이다가 ‘초저출산, 출산율 세계 최하위.’와 같은 뉴스 헤드라인을 볼 때면 이질감이 들었다.
'요새 누가 애 안 낳는대.'
정보: 아내 대신 남편이 줄을 서더라도, 접수는 본인 원칙으로 하는 병원의 경우 접수 순서가 되기 전 아내가 도착해서 접수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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