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영양제
병원에서의 기다림은 언제나 지루하다. 그중에서도 난임병원에서의 기다림이 유독 더 길게 느껴지는 이유는 왜일까. 생리를 시작하면 난포 개수나 크기의 경과를 보기 위해 2~3일에 한 번 꼴로 병원을 방문해야 했다. 새벽부터 줄을 서도, 진료실 앞 전광판의 이름들이 엔딩크래딧처럼 한참을 올라간 뒤에야 내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그 긴 기다림은 때로는 더욱 긴 기다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른 환자의 시술 일정이 중간에 끼어 있거나, "응급 환자요!"라는 다급한 간호사분의 외침에 원장님이 산과 층으로 뛰어가실 때 그랬다.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원내에 울릴 때면 내 심장도 그 발걸음에 맞춰 뛰었고, 얼굴조차 모르는 누군가의 아이가 무사하길 기도했다.
월, 금, 토요일에 병원을 방문할 때는 사람이 더 많았다. 사람이 몰리는 요일을 알았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난임병원 특성상 그저 내 생체시계에 맞춰 원장님이 오라고 하면 해당 요일에 맞게 올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가끔 내 생체시계가 한가한 요일에 방문하도록 정해주면 고마웠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것도 지칠 때쯤이면, 뻐근한 목을 부여잡고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앞에 놓인 테이블에는 "임신 성공을 위한 첫걸음"이나 "아이를 만나기 위한 여정"과 같은 제목의 책자가 놓여 있고, 나는 수차례 봤던 책을 다시 뒤적거리며 무료함을 달랬다.
어쩌다 책 뒷부분까지 보게 되었을 땐 집필진에 담당 원장님이 나와있는 걸 발견했을 때도 있었는데, 팬 사인회에 참석한 팬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원내에 놓인 TV에서도 원장님의 약력에 대한 소개와 방송 출연 영상이 반복되어 재생될 때면, '잘 선택한 병원이겠지?'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분주한 안내데스크 옆으로는 임신 관련 영양제들이 진열되어 있다. 병원을 다니기 전만 해도 엽산정도만 챙겨 먹으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임신 준비를 위해 챙겨 먹어야 할 영양제가 이렇게나 많다니. 나는 기다림이 지루할 때면 종종 쳇 GPT에게 말을 걸며 시간을 때웠다. 병원에 진열된 영양제를 살펴보며 이것저것 물어보던 날에는 나에게 더 챙겨 먹어야 할 영양제를 추천해주기도 했다.
GPT가 알려준 영양성분을 바탕으로 인터넷을 뒤적여 먹어야 할 영양제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홍수처럼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방향을 잃기 일쑤였다. 이게 좋다 아니다 유튜버마다 말이 다르기도 하고, 제품마다 중복되는 성분들이 있어 무엇을 어떻게 조합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면 '하, 옛날 사람들은 이런 거 없이 도대체 어떻게 임신이 된 거야.'싶어 진저리 치며 핸드폰을 내려놨다.
내가 다니는 난임센터는 진료실, 상담실, 주사실, 채혈실(소변 검사, 심전도 포함), 시술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손에 쥔 진료 순서지에 따라 어디를 들러야 하는지 확인하며 건강검진을 하듯 병원 곳곳을 누비곤 했다. 그리고 나는 첫 시험관 채취를 하기까지 시술실을 제외한 진료실, 상담실, 주사실, 채혈실만 4개월간 빙글빙글 돌았다.
각 실 앞에 비치되어 있는 의자에도 언제나 사람들이 가득했다. 연신 하품을 해대며 순서를 기다리거나, 모자를 눌러쓴 채 핸드폰을 하곤 했는데,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가끔 손을 꼭 잡고 도란도란 대화하는 부부의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남편이랑 같이 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현실은 둘 다 백수일 순 없으니 토요일에만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렇게 한참 동안 병원을 구경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진료실에서 내 이름을 호명했다.
"아무님, 들어오세요."하고.
-계속-
꿀Tip: 각 영양소별 임신 영양제 조합이 어려운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임신 올인원 영양제 제품도 온라인에 판매하고 있다.
[당분간 화, 목요일 업데이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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