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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모르는 산부인과 이야기 feat. 난임병원

진료 과정

by 온 아무


산부인과나 난임병원 진찰실은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원장님과 대화를 하는 '진료실'과 초음파로 진찰을 하는 '내진실'. 진료실에 들어가면 일반 병원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 원장님 앞에 놓여있는 의자 개수다. 의자는 2개. 하나는 아내를 위한 의자이고, 다른 하나는 남편을 위한 의자이다.


간단한 인사 뒤, 남편이 동행한 경우 남편은 의자에 앉아 있고, 아내는 비밀의 공간(?)인 내진실로 향한다. 내진실은 다시 탈의실과 내진의자가 놓여있는 두 공간으로 나뉜다. 탈의실에서 속옷을 포함한 하의를 전부 탈의한 뒤, 내진용 치마를 입고 내진의자가 있는 곳으로 나오게 된다.


내진용 치마는 꼭 5학년 학생이 실과 시간에 만든 통짜 치마 같았다. 그 엉성함도 엉성함이지만, 아래에 아무것도 입지 않다 보니 허전하기도 했다. 첫 산부인과 진료 때는 속옷까지 탈의해야 하는지 몰라 탈의실을 다시 들어갔다 오기도 했다.


치마를 입고 나오면 내진의자에 올라서야 한다. 간단해 보이지만, 난임병원 특성상 보통 생리 2~3일 차부터 방문을 시작하는 터라 여간 거추장스러운 게 아니다. 생리혈이 흐르지 않도록 탈의실에 비치된 휴지로 막은 채 어기적어기적 내진의자를 향해 걸어가다 보면 현타가 오기도 했다.


의자에도 생리혈이 묻지 않도록 핸드타월이 놓여있다. 그 위로 엉덩이를 안착시키며 오른 뒤 양쪽 허벅지 거치대에 두 다리를 올릴 때면, ‘혹시 내 자세가 생닭처럼 보이진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민망함이 몰려왔다. 내진의자를 '굴욕의자'라고 부르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다행히 나 같은 환자를 배려하기 위해, 원장님과 나 사이에는 작은 커튼이 놓여 있다.


그 작은 커튼 조각을 사이에 두고 간호사분이 "준비되셨습니다."라고 하면, 원장님께서 들어오셔서 내진을 시작하셨다. 원장님이 질 초음파 프로브**로 내진을 하며 "난포가 잘 자라고 있네요, 몇 개 정도 자랐어요." 등으로 말을 건네시지만, 휘적거릴 때마다 이따금씩 느껴지는 통증에 집중을 하기 어려웠다.

질 초음파 프로브**
질 내부에 삽입하는 막대형 초음파 기기로, 난포 크기·자궁 내막·배란 시점 등을 정밀하게 확인함. 복부 초
음파보다 선명하고, 난임 진료에 기본적으로 사용됨.


잠시 난포의 개수를 세실 때나, 난포의 크기를 측정하느라 프로브의 움직임을 멈추어서야 초음파 화면을 보며 '저게 난포인가?' '저건 뭐지?' 하고 헤매다 보면 내진은 끝난다. 의자에서 내려와 다시 어기적어기적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면 진료실 의자에 앉게 된다.


원장님의 설명을 듣고 나서 바로 수납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보통은 상담실을 한 번 더 거치는 것이 예사다. 그렇게 상담실 앞에서 또 한참을 기다려 들어가게 되면 준비해야 할 서류나, 이번 기간에 맞아야 할 주사 등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듣게 된다.


상담실에 들어서면, 간호사분의 한쪽으로는 서류 더미가 빼곡히 쌓여 있다. 다른 한쪽에는 냉장고가 있는데, 거기에는 아이스팩과 시험관 시술 시 맞아야 할 다양한 종류의 자가주사들이 들어 있다. 제출한 서류를 재차 확인하시거나, 달력에 일수를 세어가며 투여해야 할 주사의 용량과 날짜를 꼼꼼히 기입해주시곤 했다. 그럴 때면 맞춤형 1대 1 과외를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신뢰가 갔다.


상담실에서는 주사를 놓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시며 직접 해보게 하시는 경우가 많다. 미리 해봐야 혼자 집에서 맞아야 할 때 당황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래도 헤매는 건 마찬가지였다. 주사제가 담긴 바이알**에서 약물을 1초 만에 빼시던 간호사분과 달리, 나는 집에서 바이알을 요리조리 굴려가며 주사제를 남지 않고 빼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럴 때면 학교 수업시간에 종종 내 설명이 끝나자마자 "선생님, 어떻게 하는 거예요?" 하고 포르르 달려와 묻던 아이들이 이해가 됐다.

바이알(vial)**
주사제나 약물을 담기 위한 작은 유리병 또는 플라스틱 병
보통 고무마개로 밀봉되어 있고, 주사기로 그 고무마개를 뚫어 액체를 뽑아 쓰는 형태


자가주사에 사용되는 주사기는 형태도, 바늘 두께와 길이도 다양했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주사 모양도 있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주사기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펜형식으로 되어 있는 주사는 주사한 뒤 버튼을 누른 채로 빼지 않으면 망가져서 비싸게 구입해야 한다고 해서 겁부터 났다.


상담실에서는 새로운 주사로 바뀔 때마다 직접 주사를 놔주시며 배우도록 하셨다. 주사 부위를 확인하거나 놓는 방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평소처럼 눈을 질끈 감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덜덜 떨며 주사를 맞으면 잘 참았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고, "엄마 되면 힘든 일 더 많을 텐데 어쩌려고 그래~"라며 걱정 어린 핀잔을 듣기도 했다.


상담 도중 다른 간호사분들과 서류를 주고받으며 잠시 대화를 하실 때면, 책상에 붙어 있는 '올바른 주사 분류 방법 설명서'를 정독하거나, 내 주사가방에 차곡차곡 담겨 있는 주사들을 살펴보기도 했다. 주사가방은 보냉 기능이 있는 가방이라 주사제, 주사기, 교체용 주삿바늘, 알코올 스왑과 함께 아이스팩이 들어갔다.


그렇게 주사가 한가득 들어 있는 주사 가방을 받아 들고 병원을 나올 때면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했지만, 같은 가방을 들고 가는 누군가를 보면서 종종 위로를 받았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겠지?' 하고.


-계속-


[당분간 월, 목요일 업데이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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