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t version of yourself
신학에 깊이가 있는 선배와 대화하던 중
그가 물었다.
“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나는 한자를 떠올렸다.
惡
분해해 내 식대로 해석해 보면,
위와 아래를 스스로 닫아
내 마음을 보지 못하는 상태.
꽉 막혀 있는 상태.
답답함.
고여 있는 상태.
나는 그것을 ‘나쁨’이라 정의해 본다.
고여 있을 때 우리는 변명한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 생각 없이,
내 의미 없이,
그저 주어진 대로만 일을 한 날에는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하라고 해서 했는데요.”
“원래 이렇게 했는데요.”
“전임자가 그렇게 해서…”
내가 아닌 타인의 잘못이라는
안쓰러운 변명.
그 말은 나를 보호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를 그 자리에 고여 있게 만든다.
만약
남 탓, 환경 탓이
단 한 번이라도 나를 성장시켰다면
나는 아마 그 변명을 써보라고 권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상황을, 나의 평판을 더 나쁜 상태를 만들기 쉽다.
그래서 묻는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이 말이
나에게 유익을 주는가?
미래의 나를 돕는가?
말하기 전,
행동하기 전,
충분히 해볼 만한 질문이다.
Worst Version of Yourself
영화 You've Got Mail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Do you ever feel you've become the worst version of yourself?
Someone provokes you, and instead of smiling and moving on, you zing them.
Hello, it’s Mr. Nasty.”
영어 공부를 한다는 이유로
수없이 반복해 본 영화다.
영어만 아닌 마음을 배우게 된 대사이다.
우리는 언제
나의 최악의 모습을 만나는가?
대개 혼자 있을 때보다
관계 안에서다.
툭 던진 한마디에
툭 쏘는 한마디로 되받아칠 때.
그 순간
나는 악으로 돌아간다.
닫힌 상태로.
나는 무엇을 닫고 있는가
그때 다시 질문해 보자.
나는 지금 무엇을 닫아버렸는가?
사방을 막아가며 지키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언제 듣지 않으려 하는가?
내가 나를 알아야
나쁜 사람이 되는 순간을,
나쁜 상황을 만드는 순간을
막을 수 있다.
악은 도덕적 흑백의 문제가 아니라
닫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공자께서는 네 가지를 끊으셨다.
억측하지 않으셨고,
반드시 이래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고,
고집을 세우지 않으셨고,
아집에 사로잡히지 않으셨다. (논어 자한 4장)
공자님도 하지 않는 것을
나는 무엇하러 붙잡고 있을 필요가 있는가.
#반드시 이래야 한다
#저래서는 안 된다
그 에고가
내 마음을 닫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ME Maker의 선택
내가 나를 세우는 사람이라면,
불편을 만났을 때
닫힌 문을 더 잠그는 대신
조용히 열어보자.
“나는 지금 무엇을 지키려는가?”
착한 사람은
항상 좋은 사람이 아니라
닫히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여러분은 언제,
나의 Worst Version을 만나시나요.
#성찰 #리더십 #관계 #MEMaker #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