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인 소양을 겸비한 공대생? 오히려 좋아
보통 학부를 졸업한 공대생들의 진로는 특별히 다른 직업을 꿈꾸지 않는 한 사기업, 공기업, 공무원으로 귀결된다. 그것도 대부분 기술을 전문분야로 한 직무로.
특별한 꿈이 없었던 나는 나의 성격 상 공기업, 공무원은 나에게 맞지 않는 직업이라고 여겼으므로,
취업을 준비하며 사기업 연구개발직이나 기술이 메인인 직무를 꿈꿨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소위 말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모름지기 공대생이라면 연구개발을 해야 찐이고 멋있지! 공대생이 무슨 영업 마케팅이야~!'라며 연구개발이나 품질 같은 '공대스러운' 직무를 제외한 다른 업무는 거의 내지 않았다.
왠지 나의 소속을 부정하는 것 같고, 멋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내가 멋있다고 생각한 '공대스러운' 직무들은 모두 나를 선택해주지 않았다.
인성검사만 하면 연구개발이나 품질은 나와 적합하지 않다고 나왔고, 그래서 그런지 서류는 좀 붙는다 싶어도 인성검사나 적성검사만 하면 죄다 우르르 떨어졌다.
단 한 군데만 빼고.
그 한 군데는 '기술지원'이라는 직무였는데, 앞 글에서 이야기한 대로 심지어 원하지 않았던 '해외 기술지원'이라는 업무였다.
입사해보니 공대생이면 좋긴 하겠지만 타과생이어도 무난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직무.
기술을 배우며 익힌다기보단 기술을 자체를 잘 이해하고, 설계자-품질 담당자-영업-고객 간 coordinator 역할을 하며 해외 고객과 소통하고 각자의 입장을 잘 전달하는 직무.
어떻게 보면 그저 전달자 그 자체랄까.
동기들이 무슨 일을 하냐 물어봤을 때 설명하는 것조차 어려운 직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들은 죄다 개발, 설계, 공정기술, 테스팅과 같은 기술 쪽 메인 업무를 맡았는데, 나만 뜬금없이 해외 무슨 기술 지원을 한다고 하니 어떤 업무인지 감이 안 잡히는 것이다.
나도 감이 안 잡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기술 쪽 base를 키워나가는 사람이 되기를 꿈꿨는데, 갑자기 커뮤니케이션과 코디네이팅 실력을 키우라니? 심지어 갑자기 영어공부도 하라니?
하지만 생각을 조금 바꿔보니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기술적인 실력을 키워서 이 업무를 맡는다면 생각보다 잘할 수도 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세상은 인문학적 소양이 겸비된 공대생을 원하지 않는가?
내가 열심히 한다면 남들이 이 직무에서 원하는 단순한 '전달자'보다 뭔가 한 방울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만의 커리어를 쌓아나가 보자.
설계도 연구개발도 품질도 아닌 문과와 이과가 섞인 듯한 공대생의 진로가 어떤지 보여주자.
생각보다 이 일이 나에게 잘 맞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