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려고 그랬나 보다. 며칠 전부터 유난히 짜증이 심해지고 기분이 우울했다. 내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이 다 나를 날카롭게 만들었다.
유치원에 가지 않고 하루종일 나를 괴롭히는 아이.
무언가 집중만 하려고 하면 울려대는 전화벨소리.
항상 전화를 걸어오는 건 아이 아빠다.
나와 아이의 안부를 묻는 다정한 말투에도 짜증이 난다.
하루종일 집구석에 있는 거 알잖아... 어디 갈 수도 없는 거 알면서... 왜? 자꾸 뭐가 그리 궁금한지... 괜스레 화가 난다.
글쎄... 다시 그놈에 병이 도졌나 보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만인걸 보니 내가 우울한 모양이다.
사실 나는 밖에 나가고 싶다.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풍경을 감상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람들과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현재 나는 만날 사람도 없고, 아무나 만나서 허비할 시간도 돈도 없다. 나의 역할은 외벌이로 고생하는 남편의 월급을 최대한 알뜰살뜰 아껴서 살림하고, 적은 돈이라도 착실히 모아서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내가 처한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남편은 외벌이
나는 독박육아
팍팍한 살림살이에도 맞벌이조차 시도할 수 없는 사정을 잘 알면서 매번 신세한탄을 하게 된다.
왜 나는 도움을 받을 친정식구도 시댁식구도 없는 걸까... 가난은 대물림된다는데... 나는 왜 부모를 잘못 만났을까... 내 아이도 나처럼 부모를 원망하게 되면 어쩌지... 나는 왜 불행한 과거를 이겨내고 성공한 인생을 살지 못했을까...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평소에는 금방 멈출 잡생각들이 유난히 길게 이어진다.
뭐라도 해볼까 하는 심정으로 시작한 브런치 글쓰기는 점점 내 일상에 녹아들면서 분명히 긍정적인 변화를 주고 있다. 그중에 하나는 생활 속 크고 작은 이벤트 들은 모두 나의 글쓰기 소재가 되었고,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일도 글로 적다 보면 그 안에서 유의미한 가르침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뭔가 뚜렷한 결과물도 없는 글쓰기를 꾸준히 이어간다는 것은 엄청난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신선함은 금세 사그러 들었고, 기대감으로 가득했던 의욕도 잦아들었다. 벌써부터 지루하고 귀찮아지기 시작하고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라는 생각과 함께 팍팍하고 괴로운 현실을 마주하며 브런치북 2개를 삭제해 버렸다.
결국 하나 남은 브런치북 마저 무슨 말들로 채워 나가야 할지 망막하다.
글쓰기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에게는 무언가 한 가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그게 글쓰기가 되었든 일이 되었든 취미가 되었든 어떤 심오한 목표가 되었든지 간에 오래가지 못한다는 게 항상 문제다.
요 며칠 동안 고민이 참 많았다.
실은 요새 계속 고민에 빠져있다. 내년이면 내 나이 앞자리가 바뀌는 시기.
30대가 40대로 변하는 절체절명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내 머릿속은 전쟁이 난 것처럼 요란하기만 하고, 정작 나의 생활은 적막감이 흐른다.
뭐라도 해야 될 것만 같은 불안함과 초조함이 몰려오는 동시에 도대체 무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이제 와서 내가 뭘 할 수 있겠어?라는 자포자기한 심정과 지금이라도 도전해 보자는 열정이 일었다가 식기를 하루에도 수백 번 반복한다.
왜 아직까지도 나는 내 길을 찾지 못한 걸까? 이런 자책이나 고민을 할 시간도 사실 아깝다. 여태까지 뭐 하고 나는 여전히 이런 고민들로 항상 괴로워하는가? 하지만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평생의 고민이자 인생의 최종 목표라고 할 만큼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그래... 나는 4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내가 정말로 무얼 하고 싶은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조차 결정을 하지 못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는커녕 아직 출발점에서 발조차 떼지 못한 셈이다.
그나마 그동안 고민과 생각을 거듭해서 얻은 인생의 진리 하나는 바로 '고민할 시간에 뭐라도 해봐라!'라는 것이다. 간단하지만 실천하기 힘든 너무 당연한 진실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그냥 여전히 나는 고민만 할 뿐이다.
오늘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핑곗거리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