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늘 그런 식이였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지거나 수습하기보다는 상황을 회피하거나 짐짓 외면해 버리기 일쑤였다. 가끔 거짓말이라도 할 때면 얼마나 성의가 없는지 여중생이던 나에게 조차 금세 들켜버릴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 3남매를 버려두고 집을 나갈 때마저 엄마는 비겁하고 무책임했다. 차라리 솔직히 얘기해 줬더라면 이렇게까지 실망스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엄마를 졸라서 병아리 한 마리를 샀고, 정말 정성껏 보살폈다. 하지만 병아리는 점점 힘이 없어지고, 비실비실 거리기 시작했다.
중학생이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손으로 병아리를 닭이 될 때까지 키우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이다. 하지만 여느 다른 순수한 10대 소녀처럼 적어도 병아리가 죽으면 흙에 묻어주리라 다짐했었다.
그날은 유독 낮잠을 길게 자고 일어나 보니 창 밖은 벌써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무심코 나는 병아리를 찾아 밖에 나갔고, 현관문 옆에 버려진 쓰레기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는 다른 쓰레기들에 짓눌려 납작해진 병아리 시체가 들어 있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징그럽고 섬뜩해서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나는 그날 병아리를 쓰레기 취급한 엄마가 무식하고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충격에 빠진 나는 차마 엄마에게 왜 그랬느냐고 묻지도 못한 채 한참을 혼자서 슬퍼했다. 엄마는 아마도 울고 불고 난리를 치며 슬퍼할 나의 반응을 감당하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난에 찌들어 사춘기 소녀의 여린 감정 따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동심을 잃은 지 오래였고, 말길을 알아들을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나는 그저 충분히 슬퍼하고, 스스로 수습할 시간을 갖고 싶었을 뿐이다.
엄마의 무신경하고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나는 여전히 쓰레기봉투 속 터지기 일보직전에 병아리 시체를 잊지 못하고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동생들이 배고프다고 아우성이었다. 나는 부엌 싱크대 위에 놓인 지폐 몇 장과 동전으로 동네 슈퍼에서 반찬거리를 사 와 동생들과 허술한 저녁밥을 해 먹었다. 우리끼리 있으니 매일 먹고 싶은 소시지만 실컷 사 먹다가 돈이 부족해지면 김치찌개와 볶음밥으로 매 끼니를 해결하다시피 했다.
나와 동생들은 한동안 불편함도 모르고 간섭 없이 마음대로 생활하는 게 나름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도록 엄마가 집을 나간지도 모르고 지냈으니 말이다.
가끔씩 엄마가 집에 들러서 놓고 가는 쪽지와 용돈 그리고 매일 저녁 걸려오는 전화에 우리는 그저 엄마가 말하는 데로 금방 돌아오리라 믿고 그냥 그렇게 지냈다.
"매기야, 동생들 하고 밥은 먹었어?"
"응! 내가 김치찌개 끓였는데 엄청 맛있었어. 엄마, 근데 언제 와?"
"어... 엄마 지금 이모네 집에 있어. 볼일 끝나면 금방 갈게."
"(막내) 엄마... 보고 싶어."
"으응.. 그래. 엄마 좀 있다가 갈게. 둘째 누나도 잘 있지?"
"(둘째) 엄마, 나 잘 있어. 빨리 와. 알겠지?"
"어어... 그래 알겠어. 언니 바꿔봐"
"매기야, 아빠한테 전화 오면 엄마 잠깐 누구 만나러 갔다고 그래. 알겠지?"
"근데 누구냐고 물어보면 어떡해?"
"그냥 모른다고 해."
"알겠어. 근데 엄마 빨리 와... 나 힘들어."
"그래 알겠어. 동생들 잘 보고 있어. 엄마 금방 갈게."
나는 이유로 모른 채 매번 전화가 올 때마다 그렇게 아빠에게 거짓말을 했다. 본인 입으로 직접 변명도 설명도 없이 엄마는 그리도 비겁하게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 당시 막내동생은 고작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어찌 어미가 돼서 3명에 자식들을 아비에게 맡기기는커녕 그냥 집구석에 방치하고 떠나버렸는지 원망스러웠다.
성인이 되고,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기분이 들 때즈음에는 '그래, 엄마도 여자인데... 엄마 인생이 너무 가엽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어미가 되어보니 원망과 서러움이 분노가 되어 온몸을 감싸는 기분이 들었다. 내 아이가 클수록 엄마의 행동이 더욱이 모질고 가혹하게 느껴져서 심히 괴롭고 고통스러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