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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5단계

by 시골쥐

「부정 – 분노 – 협상 – 우울 – 수용」

슬픔은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연인과의 이별을 예로 들자면,

(부정)우리가 왜 헤어져?

(분노)너는 잘못한 거 없는 줄 아니?

(협상)내가 잘할게, 한 번만 용서해줘.

(우울)다시는 누굴 사랑하지 못할 것 같아.

(수용)나 헤어졌어. 소개팅 시켜줄래?’의 흐름이랄까.

복잡하고 지난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성숙해진다.


위태로운 연애 끝에 이별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이 팔, 다리가 절단되는 것과 맞먹는다’고. 그걸 알면 진작 잘하지 그랬니? 라고 면박을 주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며 쏘아댔다. 부정은 이미 지났고 분노의 단계를 겪고 있는 것 같았다.


그다음 만났을 땐, 싹싹 비는 중이었다. 자기가 다 잘못했다고, 다신 술 안 마시고 연락도 잘하겠으니 다시 시작하자고. 술에 취해서 받지도 않는 전화를 걸고 또 걸고, 답장 없는 메시지를 끝없이 보냈다. 보나 마나 첫 문장은 ‘자니?’였겠지.


그러다 지쳤는지 결국 폐인이 됐다. 혼이 나간 표정으로 척추가 지탱해 주지 못하는 사람처럼 축 늘어져 다녔다. 미련도 사랑도 다 빠져나가 버린 것 같았다.


그때쯤, 어느 영화에 나왔던 대사를 인용해 말해주었다.

“이제 받아들이자. 그 애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 거울 좀 봐. 네 얼굴이 어때? 아직도 이별한 날에 멈춰 있잖아. 표정도, 마음도 그날 그대로.

이별을 받아들이면 멈춰 있던 시간도 다시 흐를 거야. 그래야 네 마음도 조금씩 나아질 거고. 지금부터는 너의 시간을 살자. 더 이상 과거에 머무르지 말고.”


그 후로 점차 뜸하게 지내다가, 몇 년이 지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내 덕에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는 감사 인사와 함께 결혼 소식이 담겨있었다.

모바일 청첩장을 눌러보니 신부 이름이 익숙하다. 그 애다. 헤어졌던 그 애.

……, 이렇게 극복하는 방법도 있구나.


네가 행복하길 바랐지만, 이렇게 까지 행복하길 바란 건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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