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함께 견딘 것과는 쉽게 헤어지지 못한다

by 시골쥐

침실 한편 붙박이장 가장 아래에는 낡은 이불 한 채가 있다. 시골 할머니 집에 있을 법한 촌스러운 무늬에 양면이 다 닳아 반들거리는 극세사. 미관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짐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내는 그것을 현관에 내놓는다. 이번엔 꼭 버리겠다는 선언이다.

그러면 나는 아무 말 않고 며칠 두었다가 조용히 다시 넣어 놓는다. 이제는 새 이불들에 밀려 자리까지 잃은 헌것을 꼼꼼히 눌러 접어 자리를 만들어 준다.


옥탑방 자취생 시절, 그곳은 안과 밖의 구분이 없었다. 한겨울이면 외벽과 맞닿은 방 안벽까지 차가웠다. 보일러도 마음껏 때지 못했다. 추위보다 난방비가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궁여지책으로 시장에서 앙탈을 부리며 값을 깎아 마련한 것이 그 이불이다. 드라이기로 이불 속에 온풍을 불어넣고 그 온기로 엄동설한의 긴 밤을 견뎠다. 행여 온기가 새어 나갈까 뒤척임도 없이 곤한 잠을 잤다.

버리려고 마음먹을 때마다 그날들이 따라온다. 허덕이고, 부족했고, 두렵고, 불안했던 시절,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한 보드랍고 포근한 감촉.


그래서 겨우내 한 번 꺼내지도 않는 이불을 쟁여 놓는다. 쓰지도 않을 이불에게 자리 한 칸을 내어준다.

힘든 시절을 함께 보낸 사이란, 이불 한 채조차 헤어지기가 어렵다.

함께 견뎌낸 시간이 자꾸만 마음을 붙잡는다.


30대를 위한 위로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754316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슬픔의 5단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