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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는 일을 오래 들여다보지 않기

by 시골쥐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골목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무언가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가까이 가보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귀신이라도 지나갔나 싶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의 뇌는 의미 없는 것들 속에서도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습관이 있다. 천장 벽지 무늬에서 사람 얼굴을 발견하고, 커피 한 잔 내밀던 동료의 친절에 사랑의 가능성을 그려 넣는다. 그것을 아포페니아((apophenia)라고 부른다. 마음이 움츠러들수록 짙게 피어나는 환상이다.


출근해 마주한 팀장 표정이 심상치 않다. 데면데면한 눈빛, 마우스 클릭 소리마저 날카롭다. 내가 잘못한 게 있나? 어제 보고한 기획안이 마음에 들지 않나? 답을 알 수 없는 선택지들이 떠오른다. 팀원들에게 물어도 이유를 아는 사람이 없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넌지시 물었다.

“팀장님,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그가 의아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나? 아무 일 없는데. 월급쟁이가 매일 똑같지 뭐.”

정말 아무 일 없었다. 날짜를 세지 않으면 어제와 구분되지 않을 그저 밋밋한 하루. 그런 그의 하루를 별나게 본 건 나의 착각이었다. 의미 없는 표정에 의미를 부여한 나의 착각.


살면서 겪게 되는 걱정은 대부분은 가공의 산물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문제보다 머릿속에서 가공된 문제가 삶을 두렵게 만든다.

걱정은 번식력이 좋아서 또 다른 걱정을 만나 새로운 걱정을 낳는데, 번식을 거듭할수록 더 두렵고, 위협적인 것을 생산한다. 그래서 걱정을 이을수록 사는 게 두렵다.


‘Crisis(위기)’와 ‘Risk(위험)’는 비슷해 보이지만 시점상으로 전혀 다른 뜻을 담고 있다. Crisis는 일어난 사건이고, Risk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가능성이다.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건, 예측 가능한 가시적 미래와 기적적 확률이 따라야 일어날 미래를 포괄하는 말이다. 그중 후자의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의미 없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위험(Risk)이 위기(Crisis)처럼 느껴진다. 걱정은 상상을 실제인냥 착각하게 만드는 환각효과가 있다.

그러니까 의미 없는 일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자. 일어나지 않은 일에 덜컥 겁부터 먹지 말자. 걱정은 작은 실마리를 엮어 두려움이라는 옷을 지어내고, 아무 일도 아닌 것을 커다란 위기처럼 보이게 하니까.


교보문고 독자 평점 10점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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