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서 혼자 식당에 가야 할 땐 주로 국밥집을 찾는다. 워낙 국밥을 좋아하기도 하고, 혼자 먹기에 그만큼 든든한 식사도 없다. 맛이 좋으면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는 <국밥로드> 콘텐츠로 삼는다. 나름 엄선한 맛집만 올려서 카카오 메인에 여러 번 올랐다.
그날은 가고자 했던 식당이 임시휴업이라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이곳만 계획한 터라 딱히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샌드위치를 사서 숙소에 가려다가 밥은 꼭 챙겨 먹으라는 아내 말이 떠올라 분식집으로 경로를 변경했다. 김밥도 밥이니 아내의 당부를 어기는 것은 아니다.
열 평쯤 될 것 같은 홀에 2인용 식탁이 오밀조밀 놓여있는 가게에는 나처럼 한 끼를 때우려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여럿이 한 공간에 모였으나 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도시의 풍경이란 북적거리지만 고요하다.
참치깁밥 한 줄과 채소 김밥 한 줄을 시켰다. 파 몇 조각이 띄워진 맑은 국물과 단무지가 함께 나왔다. 혹시 김치를 받을 수 있는지 물으니, 김밥은 김치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조금 야박하다 싶었지만 김밥 두 줄을 홀에 앉아 먹는 내가 반가운 손님은 아닐 거란 생각에 단념했다.
김밥 한 개를 입에 넣고 단무지를 집으려는데 가지런히 놓인 무 사이로 고춧가루가 보였다. 밀집한 무를 좌우로 갈라보니 큰 고춧가루 몇 개와 약간의 김칫국물이 나타났다.
음식을 재활용한 것인지 확실치 않고, 큰 소리로 말하면 주변 사람 입맛도 떨어뜨릴 것 같아서 조용히 손을 들었다. 가까이 온 사장님께 접시를 가리키며 소근거렸다. 귓속말 수준이었다.
“사장님, 단무지 좀 바꿔주세요.”
고요한 실내 분위기를 지키려는 내 뜻과 다르게 사장님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삼촌이 먹다가 묻혔나 보네. 그래도 바꿔 드릴게.”
머쓱한 사장님의 아무 말인 걸까? 잘못을 친절로 둔갑하려는 권모술수인 걸까? 무엇보다 김치 한 접시 얻지 못한 내가 어떻게 고춧가루를 묻혔다는 건지.
사장님 대응을 보니 고춧가루가 실수로 묻은 게 아니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더 먹을 수가 없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계산대에 서서 또 한 번 공격을 받았다.
“찬 담다 보면 묻을 수도 있지, 깔끔떠는 편인가 봐?”
더 말 섞기 싫어 아무 말 않았지만, 기분이 상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상의할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럴 기분이 아니라 성의 있게 들어주지 못했다. 그러다 통화가 길어지며 결국 짜증을 냈다. 아내는 무고한 피해자가 됐다.
사람마다 총량이 다르겠지만 배려심의 자원은 누구에게나 유한하다. 샘물에서 물을 푸듯 베풀면 금세 바닥이 드러나 정작 써야할 곳에선 쓰지 못하게 된다.
배려란 한 방울씩 내려 모은 커피 한 잔을 대접하는 것처럼,상대에게 맞는 농도와 온도로 마음을 달여 건네는 일이다.
그만한 마음 씀이 필요해 적지 않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그러니 조금은 신중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매너는 갖추되 배려를 낭비하지 않는 태도로,
그것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쓰일 수 있도록.
5월의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