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때부터 아내는 내가 요시모토 나라가 그리는 캐릭터를 닮았다고 했다. 동의하지 않았다. 나의 추구미는 수염 기른 차승원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체로 뾰로통한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우수에 찬 눈을 원했다.
아이가 태어났다. 어떤 사람은 거푸집에 찍어낸 것처럼 나를 닮았다 한다. 어떤 사람은 아내를 닮았다 한다. 대체로 전자가 많다. 내 아이는 내가 아이 때와 구분하기 힘들게 생겼다.
네 살쯤 되더니 머리숱이 제법 늘었다. 듬성등성하게 태어나더니 이제 빗질에 넘어가는 가닥이 많아졌다.
밤새 온 침대를 구르며 자고 일어나 떡진 머리로 딩동댕 유치원을 보고있다. 머리가, 눈이, 코가, 아내가 말하는 그 그림을 꼭 닮았다.
아이가 요시모토 나라 그림을 닮았다.
아이는 나를 닮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3단 논법에 따르면, 이 다음 올 문장은
'나는 요시모토 나라 그림을 닮았다'이다.
그동안 내가 나를 잘 몰랐던 것 같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건가.
아무튼 인정하고 보니 친밀감이 올라간다. 사과씨처럼 얼굴 한중간에 콕, 꼭 뚫린 콧구멍이 비슷한 것도 같다.
화면에 나오는 차승원을 찾아본다. 오래 노력했지만 점 하나도 닮지 않았다. 노력이 부족했나? 아니다.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노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며 그렇지 않던 것들을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지금부터는 무엇에게도 섣불리 싫다 말하지 말아야겠다.
또 언제, 무엇이 좋아질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