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나 없이 살 수 있어?"
매월 25일, 나는 월급의 목소리를 듣는다. 한 달 내내 나 같은 건 개의치 않는다는 듯 정떨어지는 모습만 보여주던 회사는, 한달에 딱 하루 월급을 건네며 내게 속삭인다. 회유인지 협박인지 모르겠다. 그럴때마다 매정하게 뿌리치며 사표를 던지고 싶지만 매번 못이기는 척 회사 곁에 남는다. 월급의 말이 맞다. 소박한 월급이라도 없으면 나는 한 달을 살아낼 수 없다. 아쉬운 사람이 참아야 한다.
가장 슬픈 연애가 무엇일까?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만남을 이어가는 연애다. 상대방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가 외로워지지 않기 위해 헤어지지 않는 관계. 마음에 드는 혹은 더 나은 조건의 사람이 나타난다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무미건조한 감정으로 의무적인 만남을 갖는 관계다.
회사와 나는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도 슬픈 연애를 하고 있다. 월급이 아쉬워지지 않으면 나는 회사를 떠날 것이고, 젊고 유능하고 소박한 월급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면 회사도 나를 버릴 것이다. 우리는 서로 아무 죄책감 없이 그렇게 할 수 있다.
월급이 무서운 이유는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월급은 매달 같은 날, 비슷한 금액을 넣어주며 삶을 단조로워지게 만든다. 다가올 미래에 얼마가 생길 거라는 실현성 높은 예측은 소비를 계획하게 한다. 그리고 그 계획에 맞춰 내 삶이 살아진다. 그렇게 몇 달, 몇 년을 살다보면 월급에 익숙해진다. 월급없이 살 수 없게 되고, 월급없이 할 줄 아는 게 없게 된다. 그래서 회사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도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안정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익숙해져서
월급 없는 삶이 막막하게 느껴져서
사랑하지도 않는 회사와 헤어지지 못하고 있다.